여린 마음, 따뜻한 인간애, 섬세한 관찰력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위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그런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홀든 콜필드, 거짓과 위선으로 포장한 어른들을 싫어하고 순수한 아이를 통해 행복을 느끼는 사람.
이것 하나만으로 내겐 충분히 마음이 가고 마음에 드는 인물이었다.
정말로 이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끔찍했던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우리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와 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식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알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난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지가 않다.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도 괜스레 미사여구 늘어놓으며 그럴듯하게 시작하는 여타 소설과 달리 진솔하게 다가와서 좋았다. 자소서라고 한다면 이 인물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다음 페이지를 얼른 넘기고 싶게 만드는 그런 끌림 말이다.
주인공 홀든은 자신의 학교 광고에 나온 '우리는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진 훌륭한 젊은이들을 양성해 내고 있습니다'라는 그럴듯하게 포장되고 부풀려진 문구들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느낀다. 세상의 위선과 허위를 역겹다고 솔직하게 느끼고 표현하는 것에 속 시원함을 느꼈다.
이제까지 나는 떠난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한 채로 여러 학교들을 떠나왔다. 그런 것이 싫었다. 슬픈 작별이든, 기분이 좋지 않은 이별이든 간에, 내가 그곳을 떠난다는 사실은 알고 싶었다. (p13)
홀든은 '지금'을 살고 있다. 지금 느끼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 감정에 따라 움직이고 열심히 고뇌하며 후회하기도 하고 금세 행복해지기도 한다.
204번 국도를 가로질러 달려가기 시작하다 문득 자신이 왜 달리고 있는지 생각한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달리는 것이 좋다고 느꼈던 것 같다는 홀든. 어느 날은 도서관 사람이 엉뚱한 책을 내준 줄도 모르고 빌려와 읽는 홀든. 형편없는 책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 아주 좋은 책이라고 느낀다. 마음 흘러가는 대로 살지만, 그저 좋은 건 좋다고 발견하고 느낄 줄 아는 사람.
작별인사를 하러 찾은 스펜서 선생님의 계속 이어지는 '듣기 좋은 말'을 한 귀로 흘려듣고 머릿속으로는 줄곧 딴생각을 하지만 병상에 누워있는 선생님께 작별인사를 하러 간 그 마음에서 그는 따뜻한 사람이다. 연못에 사는 오리가 추운 겨울 날씨에 혹시 얼어 죽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 기숙사 친구들의 맘에 들지 않는 모습들을 싫어하면서도 챙겨주고 생각해주는 마음, 사랑하는 여동생 피비에 대한 극진한 마음, 죽은 남동생 앨리를 그리워하는 모습 등을 통해 겉으로는 투덜대며 삐딱하게 세상을 바라보지만 사실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여린 마음을 가진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곁에서 묵묵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연민을 느꼈다.
옳은 말 바른말보다 공감해 줬더라면
정혜신 박사가 말하기를, 우리는 누군가의 험담과 욕설로 상처 받기보다는 누군가의 옳은 말, 바른말에 상처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타인에 대한 충고, 조언, 평가, 판단보다는 그저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내 경험에 비추어 봐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호수가 얼면 오리는 어디로 가나요?
언뜻 황당한 소리처럼 들릴 수 있는 홀든의 질문에 귀 기울여주고 공감해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누군가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있다'는 느낌만으로 충분히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마음은 공허하고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은데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던 기억, 누구나 한두 번쯤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된 후에도 홀든 콜필드가 느꼈을 공허함, 불안함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자아 정체성과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단순히 중고등학생이 겪는 한 차례 성장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평생을 걸쳐 때때로 우리가 겪게 될 일이 아닐까.
샐린저와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들을 먼저 접했던 나에게 <호밀밭의 파수꾼>은 마치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문체며 주인공 성향이 비슷했다. 영어권에서 <노르웨이의 숲>은 '하루키판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불린다고 한다. 실제로 샐린저의 팬이기도 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2003년에 일본어로 번역한 <호밀밭의 파수꾼>을 2014년 새롭게 번역해 출간했다.
인상 깊었던 구절
인생은 시합이지. 맞아, 인생이란 규칙에 따라야 하는 운동경기와 같단다. (중략) 시합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시합은 무슨. 만약 잘난 놈들 측에 끼어 있게 된다면 그때는 시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측에 끼게 된다면, 잘난 놈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편에 서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시합이 되겠는가? 아니. 그런 시합은 있을 수 없다. (2장)
정말로 나를 황홀하게 만드는 책은,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작가와 친한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 자기가 받은 느낌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3장)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전혀 반갑지도 않은 사람에게 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같은 인사말을 해야 한다는 건 말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그런 말들을 해야만 한다. (12장)
박물관에서 가장 좋은 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제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자기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중략)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유일하게 달라지는 게 있다면 우리들일 것이다. 나이를 더 먹는다거나 그래서는 아니다. 정확하게 그건 아니다. 그저 우리는 늘 변해간다. 이번에는 코트를 입고 왔다든지, 지난번에 왔을 때 짝꿍이었던 아이가 홍역에 걸려 다른 여자아이와 짝이 되어 있다든지 하는 것처럼. (16장)
날씨가 좋을 때면 아버지와 엄마는 앨리의 무덤으로 가서 그위에 꽃다발을 얹어놓곤 하셨다. 나도 몇 번 같이 갔었지만, 얼마 못 가 그만두고 말았다. 우선은 무엇보다도 앨리를 그런 곳에서 만나고 싶지 않았다. 죽은 자들과 비석에 둘러싸인 그런 곳은 싫었다. (중략) 사람들은 저렇게 자동차 안으로 들어가서 라디오를 틀고는, 좋은 곳으로 저녁식사를 하러들 갈 것이었다. 앨리를 저렇게 내버려 두고. 그 사실이 나로서는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 (20장)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24장)
현재 네가 겪고 있는 것처럼, 윤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민했던 사람은 수없이 많아. 다행히 몇몇 사람들은 기록을 남기기도 했지.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거야. 나중에는 네가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줄 수 있게 될지도 몰라. 그러면 네가 그 사람들에게 배웠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너한테서 뭔가를 배우게 되는 거야. 이건 정말 아름다운 상호 간의 원조인 셈이지. 이건 교육이 아니야. 역사이며, 시인 셈이지. (24장)
어딘가를 떠나는 사람에게 '행운을 빌어요' 같은 말을 하는 건 정말 싫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우울해지고 만다. (25장)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2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