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쿠다 미쓰요(角田光代) / 번역 레이리
-1화의 등장인물 텟타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저기요"
학생식당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와 고개를 들자 사만사가 서 있었다. 신도텟타는 너무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사레가 들릴 뻔했다.
"무슨 일이시죠?"라고 묻자
"매트 선생님 영어수업 들으시죠?"라고 물으며 몸을 앞으로 숙이는 사만사의 V넥 스웨터 속 가슴골이 살짝 들여다보인다. 텟타는 다시금 숨 막힐 듯한 기분이 든다.
"듣는데요"
"아 그렇죠. 다행이다. 지금 어디까지 나갔어요? 제가 한 달간 수업 못 나가서요. 아는 사람도 한 명도 없어요. 그런데 지금 보니까 같이 수업 듣는 사람인 거 같아서요. 다행이다. 잘못 본 게 아니라서.. 아, 지금 어디까지 진도 나갔어요?"
사만사는 숨도 쉬지 않고 말하며 텟타의 맞은편에 앉는다. 이렇게 사만사와 친한 사이처럼 말을 하는 것은 처음이나 그녀의 모습이 예상했던 이미지와 너무나 똑같아 왠지 묘한 기분마저 들었다. 사만사는 터질 듯한 토트백에서 교과서로 사용하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란 책을 꺼내 식탁에 펼치려고 하는데 간장이 떨어져 있는 걸 발견하고 티슈를 꺼내 식탁을 닦은 후 텟타 쪽으로 책을 펼쳐 보인다.
사만사는 물론 그녀의 본명이 아니다. 다나카 카즈요라는 평범한 이름으로 기억한다. 텟타와 같은 제2 문학부 국문학과 3학년으로 그녀는 전혀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꽤 눈에 띄는 존재이다. 사회인 특별전형으로 입학했다는 그녀는 아마 마흔 살도 더 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나이가 다른 이들보다 눈에 띄는 이유는 아니다. 사회인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이들은 그녀 외에도 많이 있다. 사만사는 뭐라 그럴까 대학과는 전혀 매치가 안 되는 너무나 동떨어진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너무나도 유치한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은 물론 내용이 이해될 때까지 줄기차게 질문을 해댄다. 게다가 교수의 재미없는 농담에 배꼽을 잡고 웃는 등 한 마디로 사만사에게는 거리낌이 없다. 사만사는 왠지 항상 파나 무잎 가지가 보이는 장바구니를 들고 활보할 것과 같은 그런 이미지다. 사만사라는 명칭은 텟타와 같은 반 친구가 붙인 별명이다. 예전에 그런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나오는 해외 드라마가 있었다고 한다.
"저기 그게 저녁이야?"
교과서 대용의 교본에서 고개를 들며 사만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텟타가 든 쟁반을 살짝 본다. 덩달아 텟타도 자신이 든 쟁반 위 우동덮밥을 내려다본다.
"나물무침 같은 것도 먹지 그래. 그것만 먹으면 비타민 하고 칼슘 부족돼. 내가 사줄게요. 고마움의 표시로"
"아니요.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괜찮아 지금 사 갖고 올게요"
사만사는 지갑만 가지고 식당권 자동판매기로 향한다. 텟타는 멍하니 사만사의 뒷모습을 본다. 좋으신 분이구나 사만사..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텟타는 놀란다. '내가 사만사를 좋게 생각하고 있구나'
사만사가 시금치 무침과 찐 호박이 담긴 그릇을 가지고 와 앉는다. 텟타의 앞에 그 반찬들을 놓으며 다시 교본으로 눈을 돌리며 중얼중얼 혼잣말을 한다. "아.. 여기까지 나갔구나. 숙제는 있어요? 다음 수업엔 누구 차례예요?"라고 고개를 들며 질문한다.
뭐랄까 이 사람에겐 망설임이 없구나 사만사의 질문에 답하며 텟타는 분석해 본다. 그런데 나는 늘 망설이기만 하고.. 그래서 사만사를 보면 좋다고 느끼는 거구나.. 마치 변명을 하듯 스스로에게 말해 본다.
"정말 고마워요. 도움됐어요. 요 한 달간 어머니가 말이에요 시어머니가 삐끗하셔서 입원하셨지 아이는 갑자기 알레르기가 나서 정말 정신없었어요. 남편은 연말 결산 시즌이라고 바쁘고. 뭐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한 건 나였으니까 싫은 소리 낼 수도 없지만 말이에요. 그래도 무사히 여기까지 잘 와서 다행이에요. 오늘부터 다시 수업에 나갈 거니까 잘 부탁해요"
사만사는 여기저기에 메모를 한 교본을 가방에 집어넣고서 일어났다.
"저기요.." 텟타는 자기도 모르게 사만사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몰라 당황스러워한다. "어떻게 대학에 오게 되셨어요?"라고 일단 머릿속에 생각난 질문을 물어본다.
사만사는 눈썹을 치켜뜨며 몇 초간 텟타를 보더니
"앞으로 영화 번역을 하고 싶어서요. 그래서 대학에서 공부하면 그런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라며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러고 나서 살짝 웃으며 "그러니까 함께 열심히 공부해요. 그럼 그거 꼭 다 먹어야 돼요." 작은 접시를 가리킨 후 뒤돌아선 사만사가 총총걸음으로 바쁜 듯 학식을 벗어난다. 마치 특별 세일로 향하는 듯한 걸음걸이로 나가는 두룩하게 살이 잡힌 그녀의 등을 텟타는 가만히 지켜본다.
미래라는 건 스무 살을 갓 지난 우리들을 위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텟타는 생각한다. 막연한 것 치고는 어딘지 묵직하게 느껴지는, 밝은 여운을 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강요하는 듯한 미래라는 말과 마주할 땐 텟타는 언제나 도망치고 싶어 졌다. A를 선택하면 B를 잃을 것 같고 B로 눈을 돌리면 C가 보이지 않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미 보이지 않는 사만사의 뒷모습을 그려보면서 텟타는 가만히 웃는다. 사만사는 분명 지금까지 살면서 15살 때, 나와 같은 20살 때 30살 때 분명 여러 미래를 그렸을 것이다. 원하던 것을 전부 얻지 못했을 것이며 그때마다 실망하거나 질리거나 했을 것이다. A를 선택해 B를 잃거나 B를 보느라 C를 놓치거나 이런 일을 반복해 왔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는 미래라고 말한다. 미래는 결코 고갈되지 않는 석유와 같은 것이라고 그녀는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손목시계를 보니 다음 영어 수업까지 5분도 남지 않았다. 빠지려고 생각했었는데 텟타는 얼른 남은 우동을 들이키며 찐 호박과 나물무침을 얼른 다 먹어치우고선 사람들이 얼마 없는 학식의 자리에서 일어선다.
학식을 나와 이미 어둑어둑해진 교내를 달린다. 반짝이는 학교 건물 창가 빛이 마치 밤에 내려온 우주선처럼 보인다. 예쁘다..라고 텟타는 처음으로 생각한다. 그 순간, 자신의 앞에 펼쳐진 막연한 미래가 사만사와 같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망설임 없이 단순하고 곧장 달려 나가는 절대 마르지 않는 확신에 넘치는 것..
오늘은 사만사의 옆자리에 앉아볼까...라고 생각하며 텟타는 밤하늘 아래 반짝이는 학교 건물 사이를 빠르게 달려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