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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리 Jun 18. 2021

중학생 안네와 비로소 마주하다

<안네의 일기>를 읽고

<안네의 일기> 나치 독일 시대, 유대인 소녀가 숨어 지내며 남긴 안타까운 기록, 정도로만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었다. 이번에 독서 모임 책이 아니었다면 다시 펼치진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지금껏 나치 독일의 끔찍한 만행, 핍박받았던 유대인의 피해상은 영화, 책 등의 콘텐츠를 통해 수없이 보고 접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식상하게마저 느껴지는 (새로울 것이 없는) 그 시대의 슬픈 일이라 굳이 다시 펼쳐 읽을 마음은 없었을 것이다. 독서 모임 책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만 나이로 12살, 13살 이렇게 서술되기에 어렴풋이 초등학생 고학년의 이미지가 있었는데 한국 나이로는 14살부터 16살까지의 기록이니 엄연히 중학생 안네인 것이다. '만 나이'라는 것이 생일이 안 지나면 한국 나이에서 2살 어려지니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 온도차가 확연히 다르다.


아무튼 지금, 제대로 다시 <안네의 일기>를 다 읽고 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다시 읽길 너무나 잘했다.


그녀의 필력, 통찰력, 무엇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끔찍하고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담담히, 때론 유머러스하게 상황을 마주하던 그녀를 새롭게 보았고 그런 그녀를 통해 인생의 자세를 배웠다.


1929년생 안네, 나의 할아버지, 오드리 헵번, 에릭 칼과 동갑내기


1929년생 안네는 한국 나이로 다섯 살이 되던 1933년,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다. 그러나 나치가 네덜란드까지 점령하면서 안네가 14살이 되던 1942년부터 은신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2년 만인 1944년 8월 4일 누군가의 밀고로 은신처가 발각되어 체포됐다. 그 후 수용소로 끌려간 뒤 1945년 3월, 장티푸스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여전히 정정하신 29년생 나의 친할아버지와 동갑(93세)이라 충분히 지금까지 살아계실 수 있는 나이인데 그녀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마음이 휑뎅그레해진다.


안네 프랑크에 대해 기록을 찾아보다 '오드리 헵번'도 안네 프랑크와 동갑인 1929년생이고 안네와 비슷한 시기에 네덜란드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알았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동갑내기 둘. 나중에 안네의 일기를 읽으며 오드리 헵번은 자신만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다고 한다. 후에 유니세프의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인류를 위해 봉사하던 그녀의 행보도 어찌 보면 안네의 영향이기도 했을 것이다.    

(사족이지만, 구봉서 선생님이 26년생, 송해 선생님이 27년생이라고 하니 그리 먼 시대 사람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타계한 에릭 칼도 29년생 안네와 동갑내기다.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안네도 노년까지 왕성하게 활동했을 것 같은데 참 안타깝다.


감수성 풍부하고 밝았던 사춘기 소녀


한국 나이로 하면 14-16살 한창 감수성 풍부한 중학생인데, 다른 가족과 함께 총 8명이 그 좁은 공간에서 만 2년을 보냈던 안네 프랑크. 언제 어떻게 잡혀 끌려가 죽을지 모르는 공포, 그 생활은 마치 목에 칼을 대고 있는 것 같은 생활이라고 일기장에 적은 안네의 마음을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은둔 생활을 하러 급하게 떠날 짐을 싸면서 '추억이 옷가지들보다 더 소중하다'며 추억의 물건들을 챙겼던 안네. 비록 숨어 사는 생활일망정 햇빛이 가득 흘러드는 다락방에 캠프용 침대를 놓고 드러누워 슬프고 암담했던 그 처지에서도 좀 더 밝고 즐겁게 지내려 애쓴다는 안네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고스란히 느껴져 울컥했다.


생활할수록 우리의 처지가 너무 슬프고 암담했던 거야.

특히 밤에 울리는 종소리는 정다운 친구의 속삭임같이 들려.


이런 곳에서나마 아무런 박해 없이 살 수 있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몰라! 우리가 도울 수 없는 사람들의 신상을 염려하는 것 이외에는 이 같은 불행을 우리의 것처럼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



때론 그 상황에서도 다이어트를 원하는 이들에겐 최적의 숙소이며 이 은신처에서는 모든 문명국의 언어를 허락하기에 독일어 사용은 금지한다는 내용이라든지 유머러스한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 방세는 무료. 체중을 줄이는 특별 다이어트를 제공함

- 언어-모든 문명국의 언어를 허락함. 따라서 독일어 사용을 금함.

- 애완용 동물- 우대함. 단 빈대 따위는 사절함.




모순 덩어리 어른들에 대한 비판


안네가 일기에 썼듯이, 판 단 아주머니를 통해 인간은 모순적인 존재라는 것도 다시금 느껴본다. 본인도 야채를 잘 먹지 않으면서 안네에게 야채 먹기를 강요한다든지 생과 사는 하늘에 달린 것이라고 운명론자를 자처하면서도 총소리가 들릴 때마다 제일 겁내는 사람. 안네의 눈에 비친 모순 덩어리 어른들의 특징을 기록한 부분이 너무나도 공감되었다.


가만히 있으면 우습다고 놀려대고, 말대답을 하면 건방지다고 해.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능청맞은 거고, 피곤하다면 게으르다고 하지. 조금만 더 먹으면 욕심쟁이고.


사람은 싸우고 법석을 떨 때 상대방의 거짓 없는 성격을 볼 수 있다는 거야.


모두 성격이 다르고 기호가 다르기 때문에, 저마다 적당한 장소를 골라 목욕을 하고 있어.




중학생 소녀 안네의 눈에 비친 못마땅한 엄마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아주 사소한 문제조차 안네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는, 마치 이방인과 같은 존재라고 표현한 안네. 진심으로 자신을 이해해 줄 엄마다운 엄마가 없어 너무 쓸쓸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이 엄마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적는다. 그리고 아이들을 절대적으로 만족시켜 줄 수 있는 부모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건지 묻는다.



훌륭한 작가와 언론인이 되기를 꿈꾸던 소녀 안네


엄마나 판 단 아주머니나 그 밖의 평범한 여자들처럼 집안일이나 할 뿐 얼마 지나면 남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는 그러한 인생은 견딜 수 없어.


남편이나 어린아이들 이외에 온몸을 바쳐서 할 일을 가지고 싶어. 내가 죽은 뒤에도 영원히 살아 있을 그러한 일을. 이런 의미에서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글을 쓰고 내 마음을 표현하고 나를 발전시켜 나가는 재능을 주신 것을 감사드리고 있어.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모를 거야. 지금은 적어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한층 더 행복을 느끼고 있어. 비록 책이나 신문 기사를 쓸 만한 재능은 없다 하더라도 나 자신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쓸 수 있어.


나는 글을 쓰는 동안에는 모든 것을 잊어버려. 슬픔은 사라지고 용기가 솟아올라. 그러나-이것이 큰 의문인데-난 훌륭한 글을 쓸 수 있게 될까? 신문 기자나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정말로 나의 생각, 나의 이상, 나의 환상을 모두 포착할 수 있는 글을 쓰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



사람이란 아무리 여러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아도 고독할 때가 있는 법이야.

그 사람이 누구에게도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이 못 되기 때문이야.

1943년 12월 29일(수)


사람을 분석하고 상황을 바라보는 통찰력,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떤 것을 하고픈지 어쩌면 그렇게 야무지게 생각하고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했는지.


시대적인 상황에 의해 개인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끝내 처참하게 삶이 끝나버린 안네, 비단 안네뿐일까.


그 시대의 잔인함을 그대로 겪었던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사람들. 그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조심하며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고 속상해하지만 적어도 쫓기는 신세는 아니기에 내 집안에서 자유로이 맘 편히 지낼 수 있음에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청년은 노인보다 더 쓸쓸하다.

1944년 7월 15일



1944년 8월 4일 아침 10시에서 10시 반 사이에 안네의 은신처는 발각되고 숨어 지내던 8명과 이들에게 도움을 준 클라레르 씨와 코프하이스 씨가 체포되었다고 후에 기록이 나온다.  3일 전 8월 1일에 남긴 일기가 그녀의 마지막 기록이 된 것이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 그 마지막 일기가 더 아프게 다가온다.


두렵고 불안했던 마음


내 신경은 극도로 피로해 있어. 특히 일요일에는 견딜 수 없는 우울함에 빠져들어. 주위의 분위기가 너무 딱딱하고 단순하고 납덩이처럼 무겁기만 해. 밖에서는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죽음과 같은 정적만이 감돌아, 마치 지옥에라도 끌려가는 듯한 기분이구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다시 예전처럼 정상적인 평화가 찾아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우리 은신처의 여덟 명은 검은 비구름에 쫓기는 비둘기 떼와 같단다. 우리가 모여 있는, 뚜렷이 구분된 이 밀폐된 장소는 아직은 안전해. 그러나 우리를 향해 밀려오는 검은 구름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줄 벽은 점점 얇아져가고 있어. 지금 우리는 빈틈없이 에워싼 위험과 암흑 속에서 안주할 구멍을 찾아 발버둥 치고 있는 거야.


1944년 2월 12일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그리움과 욕망이 은근히 가슴에 스며든다. 나는 지금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한 태도를 취할 수가 없어. 텅 빈 듯이 허전하고 뒤죽박죽이 되어서 무엇을 읽고 무엇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어. 다만 나는 내가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애타는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뿐이야.


1944년 7월 15일

이상도, 꿈도, 동경도, 냉정한 현실을 마주하면 곧 깨어져 버려. 이런 시대에 사는 우리의 괴로움이지.


그럼에도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



우리는 우리가 숨어 살고, 한 자리에 쇠사슬로 묶여 있는 유대 사람이며, 수없는 의무만이 있고 권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신세라는 것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꼈어. (중략)


누가 이런 괴로움을 우리에게 주었을까? 누가 우리 유대 사람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게 했을까? 또 누가 오늘날까지 우리를 이러한 곤경 속에 빠뜨린 채 내버려 두었을까?


우리는 웃고 떠들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우리를 향해 밀려오는 공포, 불안, 위기, 절망을 대하게 되는 거야. 하수관이 막혀서 물이 흘러내리지 않고 똑똑 떨어지고 화장실에 가면 오수가 항아리에 담겨 있고.. 종말이 아무리 괴로운 것이라도 어서 와 주었으면... 그러면 적어도 승리인지 패배인지는 알게 되겠지..


그러나 아직 우리는 살고 싶고, 자연이 속삭이는 소리를 잊지 않았고, 그리고 모든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망상은 지워버리고 말아.


우리가 우울한 기분에 빠져 있다고 해서 이로울 것도 없고, 불안에 처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내가 어떤 처지에 있건 타인들의 불행만 염려하고 있어야 하겠어? 웃고 싶어도 곧 자책하고 자신이 유쾌하다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할까? 그럼 종일 울고 있어야 옳을까? 아니, 나는 절대로 그럴 수 없어.


1943년 12월 24일

인생의 길은 천당인가, 지옥인가? 하는 괴테의 시구를 실감하게 되는구나. 다른 유대인들에 비하면 이곳에 있는 우리는 천당에 있는 편이고...


젊은 날을 즐기고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것이 내가 동경하고 있는 거야. 유대인이고 아니고 그 이전에 그저 명랑한 분위기와 찬란한 햇빛이 필요한 한 소녀에 지나지 않아요. 사실 운다는 것은 때론 크나큰 구원이 되기도 해.


1944년 2월 3일

살면 다행이고 죽게 되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니?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지구는 계속해서 돌고, 세월은 흘러가겠지. 모든 것이 나와는 관계없이 이루어져가고 있어. 운명에 저항한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모든 것을 신에게 맡기고 잘 되기를 빌면서 공부만 할 뿐이야.



나 자신이 인생이란 항로의 항해사인 셈이고, 어디에 가서 안착하게 될 것인지는 후에 알게 되겠지.

나는 누구의 도움이나 충고도 없이 나 자신의 노력만으로 완전한 한 사람의 성인이 되어야 해.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꿋꿋하고 개성이 강한 사람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눈물을 삼키고 내 생활의 길을 스스로 발견하리라는 것을 너에게 약속하겠어. 나는 다만 자신의 노력이 결정을 보고 나를 사랑해주고, 누군가로부터 진심에 찬 격려를 받고 싶을 뿐이야.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안네의 일기는 그 후에도 살아남았던 그녀 아버지가 성적인 부분이라든지 그녀 가족의 치부 등이 적힌 부분을 삭제해 내놓은 것이라는 걸 알았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무삭제 완전판>을 읽을 수 있지만 해당 출판사의 도서는 전자책이 안 나와 나는 편집되고 삭제된 기존의 안네의 일기로 읽었다.


한 줄기 빛과도 같았을 사랑, 페터


페터와 안네 (출처:  위키피디아)


함께 은신처에 숨어 지내던 3살 위 소년 페터와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때론 신체적 접촉을 하며 한껏 부풀어올랐던 소녀의 감수성, 여자로서의 행복감 등 중학생 안네의 솔직함마저 사랑스러웠다.


페터와 안네, 그 숨막히는 좁은 공간에서 서로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큰 구원이며 위로가 되었을까. 정말 다행이다. 그런 사랑의 감정을 서로 느낄 수 있어 그나마 하루하루 버틸 수 있었으리라.




안네는 말한다. 페터는 가슴속에 가라앉은, 질식할 듯한 공기를 말끔히 씻어준다고. 한 공간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아무 말 없이 있는 그 시간. 둘 만의 아늑한 시간을 말로 깨뜨리고 싶지 않아 오랫동안 그대로 침묵 속에 머물러 있었다는 안네.



밖을 내려다보고 자연과 신의 참뜻을 엿보았을 때

나는 행복했다. 진정 행복했다.

그리고 내겐 페터가 있다.

여기서 이런 행복을 지니고,

또 자연에 대한 기쁨이나

건강에 의한 즐거움을 가지고 있는 한

언제나 행복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이다.


재물은 잃을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의 행복은

비록 베일에 싸여 있다 하더라도

살아 있는 한 어느 때든지 다시 소생하는 것이다.

두려움 없이 하늘을 우러러볼 수 있고

마음이 순결하다고 자각하는 한

행복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1944년 2월 23일




페터는 온통 나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어.

밤이나 낮이나 그의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서 나는 비참해.

떨릴 정도로. 그와 같이 있을 때면 눈물을 감추고,

레몬 펀치에 대해 떠들고 웃곤 하지만

혼자가 된 바로 그 순간

소리 지르며 울고 싶은 고독감에 휩싸이는구나.

활짝 열어젖힌 창가에 앉아

자연을 바라보고 새소리를 듣고,

두 볼에 따뜻한 태양을 느끼며,

사랑하는 소년의 팔에 안겨 있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있을까?

그의 팔이 내 몸에 느껴지고 말은 없어도

그가 곁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면

부드럽고 행복한 기분에 잠기는구나.

이와 같은 침묵은 정말 값진 거야.

오오, 이 고요함이 다시는 깨지지 말기를!

1944년 4월 19일


그리고 여지없이 슬펐다.

그 감수성 많은 나이에, 첫사랑 페터 앞에서 잘 보이고 싶을 나이인데 같은 공간에서 제대로 씻을 수도 없는 제한된 공간에서

그녀가 느꼈을 처참한 마음은 어떠했을 것이며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14살이라는 나이에 다른 가족과 그 좁은 공간에서 기한 없이 갇혀 지내야 하는 생활을 시작하면서 보통이라면 그 처참하고 암담한 생활에

풀 죽어 있거나 무기력하게 하루하루 비관하며 살았을 텐데 안네는 그렇지 않았다.

일상을 기록하며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았다. 그 2년의 시간 동안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글로 풀어내며 고난 속에서도 인생의 의미를 찾고

희망을 갖고 꿈꾸며 아름다운 사랑의 감정도 느끼며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살았다. 그런 안네의 삶의 태도가 전 세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을 것이다.  


마지막은 '행복'에 대한 안네의 생각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우울할 때면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셔.

"세상의 모든 불행을 생각하고 자신이

그런 불행 속에 던져지지 않았다는 것을

감사하라."


그러나 나는 달라.

"밖으로 나가서 들판을 걸으세요.

자연과 햇빛을 만끽하고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는 행복을

다시 한번 끌어내세요.

당신 마음속과 주변에 아직 남아 있는

모든 아름다움을 생각하세요.

그러면 행복해질 거예요."


엄마의 생각과 반대로

나는 어떤 불행 속에서도

항상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려고 해.

아름다움을 찾을 생각만 있다면

바로 그 생각만큼의 행복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어.

그리고 행복한 사람은 언제나

다른 사람까지도 행복하게 만드는 법이야.

그만한 용기와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은

결코 불행에 짓눌리지 않아.



다른 이의 불행을 통해 행복과 감사를 찾기보다는 주체적으로 행복을 발견하려는 안네의 자세가 돋보인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언제든 찾아낼 수 있다는 안네의 말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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