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본책방

제5화 해질 무렵의 티라노사우루스

가쿠다 미쓰요(角田光代) / 번역 레이리

by 레이리

제5화 사나다 하루카의 이야기


우주비행사가 되어 있어야 했다. 그게 힘들다면 피아니스트가 되어 있어야 했다. 그것도 어렵다면 제과제빵사가 되어 있어야 했을 것이다. 이 또한 아니라면 로마에 살면서 일본인 가이드를 하고 있어야 했다. 이 역시 무리라면 도서관 사서가 되어 있어야 했다. 이것도 힘들다면 만화 편집자가 되어 베스트셀러 만화를 그려나가는 일을 하고 있어야 했다.

위에 언급한 것들은 순서대로 유치원, 초등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2학년, 고등학교 1학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사나다 하루카가 그렸던 자신의 장래희망이었다.

그녀가 꿈꾼 마지막 장래희망인 만화 편집자가 되기 위해 사립대 문학부에 들어갔고 지금쯤 만화 편집자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도대체 난 지금 왜 음식 가게에서 반찬을 옮기고 있는 것일까'라고 문득 의아해질 때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다. 딱히 불만스러운 건 없다. 후회스러운 것도 아니다. 취직활동을 하지 않는 것도 학부 때부터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전부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는 걸 하루카는 잘 알고 있다.

단지, 의아할 뿐이다. 그렇게 많은 장래희망이 있었음에도 그중 어느 하나도 지금 내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 물론 지금은 우주비행사도 제과제빵사도 만화 편집자도 되고 싶지 않지만 도대체 언제 나는 내가 꿈꿨던 그 미래를 전부 놓치며 살아온 것일까 라는 의구심이 들뿐이다.

하루카가 일하는 토와다에는 오전과 오후 타임이 있는데 하루카는 거의 대부분 오전 타임을 희망한다. 가게에는 오전 6시까지 가야 하지만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에 일이 끝난다. 오전보다도 오후에 시간을 더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은 "왜"의 날이었다. 왜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일까. 왜 나는 그중 어느 것 하나도 되지 못했나.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왜 나는 그 해답을 찾지 못하는 걸까. 계속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도 주문은 제대로 받고 있고 거스름도 제대로 치르고 있다. ‘감사합니다’ 라며 미소까지 짓는다. 이런 것도 이상할 뿐이다.

가게에서 나오는 점심을 먹고 1시가 조금 못 돼 토와다를 나와 하루카는 전철을 갈아타고 우에노로 향한다. 우에노역 공원 입구 개찰구를 나와 곧장 박물관으로 향한다. 미술관에는 늘 줄이 늘어서 있는데 평일 낮 박물관이 붐빈 적은 없다. 하루카는 고민 없이 지하로 내려간다.

지하 1층에는 공룡들이 쥐 죽은 듯 늘어서 있다. ‘왜’가 마음속에 똬리를 뜬 날, 하루카는 어김없이 이 곳에 온다. 말도 안 되게 커서 어딘지 모르게 웃기기까지 한 공룡의 골격을, 질리지도 않고 바라보며 둘러본다.

멍청해 보이는 시조새, 약해 빠져 보이는 아파토사우루스, 울 듯한 표정의 히파크로사우루스. 하루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입을 크게 벌린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다. 이 녀석, 6톤이나 되는 무게를 어떻게 옮겨 왔을까. 하루카는 티라노사우루스를 올려다보며 생각한다. 싫진 않았을까. 넓은 층은 쥐 죽은 듯 조용하고 공룡들은 멈춘 시간 속에서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정신 차려보니 2시간 가까이나 공룡들을 보고 있었다. 하루카는 아쉬운 듯 티라노사우루스를 뒤돌아보며 그 층을 나왔다. 지구관을 나왔을 때 이와모토 노조무와 딱 마주쳤다.

“앗 또 온 거야?”
이와모토 노조무는 미소를 띠었다.

“안녕하세요”
하루카도 웃어 보이려 했지만 그만 무뚝뚝하게 말이 나왔다.

“돌아가는 길이야?”

“네. 이와모토 씨는 아직 안 끝났어요?”

“온 지 얼마 안 돼서 좀 더 걸려”

“그렇구나 수고하세요. 그럼 먼저 가 볼게요”
하루카는 손을 흔들었다.

“응 잘 가”
노란 후드티 제복을 입은 이와모토 노조무도 손을 흔들어주며 뒤돌아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하루카는 출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이와모토 노조무는 이 박물관에서 교육 봉사를 하고 있다. 박물관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얼굴을 익혔고 대화도 나누게 되었다. 몇 번쯤 함께 저녁식사를 먹으러 간 적이 있다. 하루카보다 5살 많은 이와모토 노조무의 본업은 이자카야의 종업원이다. 오가와 동네에 있는 부모님 가게를 돕고 있다고 했다.

“근데 그것만으론 뭐랄까 채워지지 않아서”

언제쯤이었나, 박물관 봉사를 시작했다며 함께 갔던 호프집에서 들었다. 어린이들의 박물관 투어를 인솔하거나 안내인이 되어 사람들 앞에 섰고 그 밖의 여러 잡무를 하는 것이 봉사하는 사람들의 주요 일이다.

그걸 시작하니 ‘뭔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은 없어졌냐고 하루카가 물으니 “응. 사라졌어”라고 노조무는 바로 대답했다. 봉사라는 일이 좋다라기보다 “어쨌든 쉬고 있지 않은 게 좋은 거 같아”라고 노조무가 덧붙이며 웃었다.

밖으로 나오자 아직 낮처럼 환했다. 기온이 꽤 따뜻해졌다. 조만간 꽃봉오리가 일제히 피겠지, 벚꽃나무를 올려다보며 하루카는 생각했다. 동물원 폐관 시간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이와모토 노조무는 하루카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뭔가 큰 것을 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직함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돈도 그다지 여유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자신의 방식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노조무의 모습은, 뭐가 하고 싶은지 아직 잘 모르는 하루카에게 어린 시절 봤던 TV 속 영웅처럼 멋지게 느껴졌다.

토와다 식당에 자주 오는 택시 운전가 노자키 요스케도 하루카에겐 비슷한 존재였다. 왠지 모르게 멋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하루카는 이상했다. 피아니스트나 제과제빵사를 동경하던 시절에는 그들이 영웅으로 느껴지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화려하지도 않고 눈에 띄지도 않으며 특별한 것을 하는 것도 아닌 사람을 멋지다고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우에노 역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티켓 발매기에 줄을 서며 하루카는 잔돈을 준비한다. 아파트에서 가장 가까운 역까지 표를 사서 자동 개찰구로 향했다. 개찰구를 나와 무심코 뒤돌아보니 조금 전보다도 해는 더 기울고 거리는 엷은 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화려하지도 않고 눈에 띄지도 않는, 그저 자신의 일상을 자신의 두 발로 걷는 사람을, 멋지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 만큼 내가 성장했구나. 하루카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횡단보도 맞은편에 서 있는 앙상한 벚꽃나무가 일제히 꽃을 피우고 저 너머 티라노사우루스가 한 발 한 발 귀찮다는 듯 거구를 들어 올려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는, 그런 광경이 살포시 하루카 눈에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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