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 현실로!
멕시코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 영화 ‘시카고’를 봤다. 마음에 쏙 들었다. 속 시원하게 내지르는 노래가 듣기 좋았고, 주인공들이 춤추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찾아보니 뮤지컬이 원조라 해서 언젠가는 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시카고를 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드디어! 상상이 현실이 됐다. 이번 뉴욕 여행에서 항공편과 숙소를 제외하고 한국에서 예약한 활동은 딱 두가지다. 뮤지컬 시카고 예약과 스냅샷 촬영. 스냅샷 촬영은 추후에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뮤지컬은 뉴욕 출장이 확정되고 나서부터 바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평일 저녁에는 공연이 늦게 끝나면 숙소까지 돌아가는 길이 걱정됐다. 그래서 주말 낮 시간 공연을 찾아봤다. 좋은 좌석은 이미 자리가 꽉 차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어떤 자리에서든 시카고를 본다는 게 중요했다.
오전에 모마에서 시간을 보내고 극장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모마에 오래 있어서 밥 먹을 시간이 마땅치 않았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도 극장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기다리는 내내 분위기는 유쾌했다. 혼자 시카고 간판이 보이게 셀카를 찍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인심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말을 건넸다. “찍어줄까?” 덕분에 사진도 잘 찍었다. (이 아주머니는 조금 이따 다시 등장한다.) 입장을 앞두고는 직원이 마스크를 쓰라고 안내했다. 여기서 조금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사람들 중 일부가 마스크가 없다고 하니 직원이 웃으면서 마스크를 가져다 줬다. 한국은 마스크를 써야 할 공간에 마스크를 가져오지 않으면 그 당사자에게 잘못이 있다는 분위기다. 그런데 뉴욕에선 달랐다. 마스크를 안 쓰는 게 일반적이니 마스크를 쓰라고 요구하는 곳에서 조금 더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뮤지컬 예약을 하고 이메일로 받은 QR코드를 종이로 뽑아갔는데 현장에서 인식이 안 됐다. 당황했지만 창구에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보여주니 티켓이 무사히 발급됐다. 극장은 컸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아까 사진을 찍어주셨던 아주머니 일행이 바로 내 옆자리였다. 스쳐가는 인연이었지만 반가웠다.
기다리는 동안 직원이 돌아다니며 물과 와인을 팔았다. 와인을 커피 컵 같은 일회용 컵에 담아 팔았다. 물과 와인 한 잔을 합치면 약 50달러(?)였던 걸로 기억한다. 여기에 팁까지 포함하면 터무니 없는 가격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경험이 중요하니 사버렸다. 와인 종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시카고에는 레드와인이 어울릴 것 같았다.
그렇게 와인을 홀짝이다 보니 막이 올랐다.
솔직한 감상평을 남기자면 이렇다. 시카고 뮤지컬이 감동적인건지 내가 시카고 뮤지컬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감동적인건지 구분이 잘 안 됐다. 첫사랑이 그리운건지 첫사랑을 하던 그 시절의 내가 그리운건지 구분이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후자에 가깝단 생각이 든다. 살짝 취기가 올랐고 신이 났다. 배우들은 관객과 호흡하며 공연을 이어 나갔다. 1막이 끝나고 중간에 잠깐 쉬는 시간을 가진 뒤 2막이 시작됐다. 마지막에는 관객 앞 줄에서부터 기립박수를 쳤던 걸로 기억한다. 나도 같이 따라 일어서 환호했다.
공연이 끝나고 나가는 길도 기분이 좋았다. 차례 대로 극장에서 나가는데 처음 보는 여자 외국인이 내게 말을 걸었다. “I love your outfit!” 뜻밖의 칭찬에 들떴다. 이 일로 나는 평소라면 하지 않을 짓을 타임스퀘어에서 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