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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예리 Sep 09. 2022

[뉴욕기] 8. 여행의 이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

인도 배낭여행을   사진 때문에 화났던 적이  차례 있다. 내가 여행을  때는 2012년도였는데, 당시만 해도 인도인에게 동양인 여자는 신기한 존재였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어딜 가든 시선 집중이었고 길거리에서 사진도 찍혔다. 짐을 최소화하기 위해  2~3벌로 35일을 버텼는데, 대체  몰골(?)  찍는지 이해가   됐다. 사진을 몰래 찍으면 소리쳤고, 사진을 찍자는 제안은 거절했다.


그래서 사진에는 꽤 민감한데 타임스퀘어에서 넘어가버렸다. 극장에서 숙소를 가려면 타임스퀘어를 지나야 했다. 사람이 붐비는구나 하며 걷고 있던 찰나 엘사 옷차림을 한 여자가 나를 보더니 눈을 번뜩였다. 갑자기 엘사 탈을 쓰더니 사진을 찍자고 하는 것이다. 나는 조금 전 옷이 예쁘다는 칭찬을 들은 상태였다. 와인도 한 잔해서 기분이 좋았다. 내가 예뻐서 사진 찍자는 줄 알고 흔쾌히 응했다. 그러자 다양한 코스프레 차림 친구들이 모여 들었다. 그래 찍어라 하면서 활짝 웃었는데 사진을 찍고나니 이들이 돌변했다.

타임스퀘어는 갈 때마다 사람이 많았다.

돈을 달라고 했다. 한 명 당 20달러씩 3명에게 각자 달라고 했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현금이 없다고 했다. 예전에 미드에서 비슷한 에피소드를 보긴 했는데 실제로도 그럴 줄 몰랐다. 당황하는 동안 무리 중 한 명이 내 가방이 열린 틈으로 100달러 짜리 지폐를 본 모양이다. 이제는 100달러를 달라고 하며 거스름돈도 걸러 줄 수 있다고  했다. 못 알아듣는 척하며 갖고 있던 1달러 짜리 지폐 몇 장을 다 주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10달러 짜리 지폐가 없던 게 다행이다. 나중에 들으니 다른 한국인들도 비슷한 수법으로 당했다고 했다.


평소라면 여행지에서 낯선 이와 사진 찍지 않았을 텐데. 코스프레 친구들과 사진 찍고 싶단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텐데.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인 걸 어쩌겠나. 다음부터 안 그러면 되는 거다.


마냥 들떴던 기분이 조금 다운됐다. 점심도 걸렀기에 저녁을 먹어야 했다. 호텔과 가까운 일본 라멘 집에 갔다. 뮤지컬의 감동도, 방금 있었던 타임스퀘어 건도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며 풀고 싶었다. 울적해졌다. 사람이 그리워졌다.

울적했지만 라멘은 맛있었다. 혼밥을 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좋은 사람과 먹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꼈다.

씩씩하게 잘 돌아녔는데 문득 허전했다. 여행의 이유는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란 생각이 들었다. 이날은 일찍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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