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이 선사한 우연의 연속
MBTI 검사를 하면 네 번째 알파벳은 J와 P가 번갈아 나온다. 계획은 세우지만 여백을 남겨둔다.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은 갑갑하다. 나무들 사이로 오솔길이 나 있으면 한결 여유롭다. 계획이 나무라면 여백은 오솔길 같은 존재다.
뉴욕에서 취재 셋째 날도 그랬다. 이날은 여백이 선사한 우연의 연속이었다.
아침에는 곧바로 매리어트 호텔로 가서 여권을 찾았다. 여권은 NFT.NYC 사무국에 보관돼 있었다. 또 잃어버리지 않도록 숙소에 여권을 갖다 놓고 다시 나왔다. 그러고 라디오 시티 뮤직홀로 향했다. 듣고 싶은 발표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새로운 장소에 도장을 찍고 싶었다. 이곳에서도 베이글과 커피, 과일, 쿠키 등 아침이 마련돼 있었다. 원하는 만큼 가져다 먹을 수 있었다.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곧 발표자가 “호!” 소리를 지르면서 나왔는데 당황스러웠다. 텐션이 높았다. 노트북으로 스케쥴표를 보며 다음 일정을 대강 짰다. 한국에 와서 들었지만 여기서 나를 알아본 사람이 있었다. 며칠 전 한국인 모임에서 만난 분이었다. 당시에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어디서든 바르게(?) 살아야 한다.
점심 때는 대학교 학회 선후배를 만났다. 선배가 뉴욕에 사시는 줄 몰랐는데, 내 SNS 포스팅을 보고 먼저 연락을 주셨다. 덕분에 새로운 선후배도 알게 됐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쉑쉑버거를 먹었다. 선배가 쉑쉑버거 말고 제안하신 또 다른 식당은 내가 이틀 전 갔던 식당이었다.
쉑쉑버거를 먹으며 나눈 대화는 줄곧 내 머릿 속을 맴돌았다. 나는 뉴욕에 온 이유, 준비하고 있는 기획 등을 이야기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제출한 기획안 주제는 ‘한국이 크립토 산업의 메카가 되려면’이었다. (언론진흥재단 기획보도 사업 선정돼 해외 취재를 다녀왔다.) 선배는 내게 왜 한국이 크립토 산업의 메카가 돼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라 논리적 답변이 떠오르지 않았다. 규제 일변도 정책으로 국내 기업이 해외로 빠져 나가고, 세수도 해외에서 걷어가는 게 문제라고 둘러댔다. 아쉬운 답변이었다. ‘한국에서 크립토 산업이 성장해야 한다’는 입증할 필요가 없는 문장이라고 여겼고, 이를 이루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만 고민해왔던 게 사실이다. 선배 질문은 허를 찔렀다. 논리를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일이란 점을 나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서다.
한국에 돌아와 업계 분들과 관련해 대화를 나눴다. 국내에서 암호화폐, 블록체인 관련 제도가 미흡한 배경을 추측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크립토 산업이 발전해야 한다’는 문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데 대다수 국민이 동의하듯 이 분야를 키워야 한다는 데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관련 생각을 요약 정리해 한국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전문가 필진 기고문으로 냈다. 기고문은 11월 중으로 올라갈 예정이다. 뉴욕 취재를 온 까닭을 설명하다 받은 우연한 질문 하나가 내게 유익한 고민을 하는 기회로 작용했다.
점심을 마치고 다시 매리어트 호텔로 향했다. 타임스퀘어 부근에서 길을 건너려고 기다리는데 건너 편으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금세 그가 누군지 알아챘다. 뉴욕에 오기 전 링크드인으로 많은 사람에게 미팅 요청을 했다. 그 역시 내가 연락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내게 회신을 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는데, 만남이 성사되진 않았다. 그런데 타임스퀘어 한복판에서 그를 마주친 것이다. 나는 그를 알지만 그는 나를 모르는 눈치였다. 신기했다. 그를 빠르게 지나치며 혼자 피식했다.
조우는 이어졌다. 행사장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오후 5시에 맞춰 타임스퀘어 에디션 호텔로 갔다. 호텔 로비에서 인터뷰가 잡혀 있었다. 이때 나는 꽤 피곤했다. 호텔 로비라 해서, 1층으로 갔는데 아무리 봐도 로비같아 보이지 않았다. 우선 앉아서 상황을 지켜보고자 했다. 조금 지쳤고, 막막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딴 하고 열리더니 아까 점심 때 봤던 학회 후배가 내렸다. 서로 약속한 것도 아닌데 그 순간에 딱 마주쳤다. 후배는 방금 전까지 호텔 로비에 있다 왔다며 몇 층으로 가라고 알려줬다. 그리고 이렇게 만난 것도 기념이라며 셀카를 찍자고 했다(셀카를 아직 못받았는데 보내 달라고 해야겠다). 만날 사람은 어디서든 만난다더니 옛 말이 틀리지 않았다.
덕분에 제 시간에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쯤 되니 영어 인터뷰가 부담스럽지 않았다. 일대일로 궁금한 건 다 물어보고 왔다.
그러고 나서 예정에 없던 스트라디바리우스 연주회에 가기로 했다. 당일에 초대 받았는데, 흔쾌히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비가 내렸다.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을 감명깊게 본 나로서는 뉴요커는 비 맞고 다니는 게 일상인 줄(?) 알았다. 진정한 뉴요커의 삶을 체험하겠다며 한국에서부터 우산을 안 들고 갔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뉴요커도 우산은 썼다. 어이가 없어서 자꾸 웃음이 났다. 덕분에 뉴욕에서 비도 맞아 봤다.
축축히 젖은 채로 연주회 장소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멀끔하게 차려입은 분들이 가득했다. 클래식한 분위기였다.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적응했다. 스트라디바리우스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음악을 감상했다. 바이올린을 켤 때도 호흡이 중요했다. 필라테스나 헬스나 연주나 일상이나 내 호흡을 가다듬는 게 먼저다. 연주자 분과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는데, 십여 년 전 알고 지내던 지인이 오랜만에 댓글을 달았다. 연주자는 지인의 사촌동생이었다. 생각보다 세상은 좁았다.
그리고 연주회에서 처음 만난 분들과 계획에 없던 저녁 식사를 하고, NFT 홀더 파티에 따라갔다. 이날 경험은 기사의 주요한 소재로 쓰였다. 나중에 PD님이 홀더 파티에는 어떻게 갔냐고 물어서 처음 본 분들 따라갔다고 했더니 “역시 인싸!”라고 했다. 내가 인싸라기 보다는 이분들이 나를 편하게 대해줬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이분들과는 한국에서도 좋은 연을 이어가고 있다.
우연이 겹친 하루였다. 빽빽히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오솔길 따라 걷다 보니 재밌는 일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