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나를 살게 한 시간들

by 린꽃

육아를 하다 보면 하루가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나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다.
아기가 울면 달래고, 기저귀를 갈고, 젖병을 씻고, 잠깐 눈을 붙였다 싶으면 또 수유 시간이 온다.
매일매일이 다음 근무자가 없는 야간근무를 하는 기분이다.
더불어 sns 속 예쁜 곳을 놀러 다니는 지인들의 사진을 보다 보면 부러운 마음도 들고 끝없는 무력감에 사로잡힌다.
아기를 낳은 후로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고, 나라는 사람도 잠시 멈춘 것 같은 나날들에 꽤 자주 우울했다.
그래도 그 속에서 아기의 웃음 한 번, 작게 쥔 손 하나가 나를 버티게 했다.



지친 날들이 이어지던 얼마 전엔 문 앞에 낯선 포장봉투가 걸려 있었다.
다름 아닌 이웃 친구가 두고 간 과일이었다.
뒤이어 확인한 핸드폰에는 비타민 충전하고 힘내라는 응원의 메시지가 와있었다.
짧은 메시지에 담긴 마음이, 이상하게도 울컥하게 만들었다.
친구는 이후에도 도시의 카페에 갔다가 내 생각이 났다며 케이크를 사다 주거나 종종 먹고 싶은 게 있냐며 먼저 물어주었다.
지치던 와중에 누군가 내 지침을 알아주고, 다정히 손 내밀어 준다는 게 이렇게 따뜻한 일이었구나 싶었다.



며칠 전엔 모처럼 와수리에도 다녀왔다.
한동안 텅 빈 눈으로 우울해하는 나를 본 남편은 퇴근 이후에 아기를 보고 있을 테니 좋아하던 카페에 다녀오라고 했다.
순간 망설였다.
'나 없이 남편 혼자 괜찮을까? 혹시 아기가 울면 어쩌지?'
곧 있을 아기의 수유시간도 신경 쓰이고 미처 하지 못한 집안일도 눈에 밟혔지만 남편의 단단한 말투에 이끌려, 정말 오랜만에 혼자 외출을 했다.
와수리까지 운전을 하면서 평소엔 운전하기 힘들어하던 수피령을 넘는 것도, 구불구불한 산길을 운전하는 것도 자유로운 느낌을 만끽하며 행복했다.



비록 와수리에 도착했을 땐 늦은 시간이었지만,
해 질 녘에 찾은 기와물결은 여전히 예뻤다.



읽고 싶었던 책도 읽고,
계절과일을 곁들인 디저트와 함께 늘 먹는 바닐라밀크도 마시고 왔다.
책을 읽다가 잠깐 고개를 들었을 때 카페 안에 따뜻한 불빛들이 가득한 것도 행복했고,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트였다.



이날의 내가 느낀 해방감.
집이 신경 쓰여 홈캠을 수시로 보면서도 좋아하는 카페에서 보내는 이 순간이 내겐 캄캄한 밤하늘 아래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느낌이었다.



잠시 머물고 돌아오면서 다시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거란 걸 알았기 때문에 케이크와 디저트도 잔뜩 사 왔다. 이날의 행복감은 며칠간 디저트를 다 먹을 때까지 긴 여운으로 남았다.



긴 연휴가 시작되기 전의 어느 저녁엔 이웃 친구와도 밥을 먹었다.
몇 달 만에 내가 좋아하던 솥뚜껑삼겹살 집도 찾고, 카페도 찾았다.
남편들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아기를 맡기고 나온 서로의 눈빛에는 묵은 피로가 담겨 있었지만, 그 속엔 같은 위로가 있었다.
아기를 두고 나왔어도 만나던 내내 여전히 아이 얘기를 하는 우리였지만 묘한 해방감에 내내 웃었다.
세 시간 남짓 보냈던 그 시간이 내 안의 무게를 조금씩 덜어줬다.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캄캄한 밤하늘에 뜬 반달이 참 예뻤다.
바람이 살짝 불어 머리카락이 흩날릴 때, 마음속에서도 묵은 먼지가 조금은 날아가는 것 같았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온 그 순간, 나는 다시 나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자,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로 남편 품에 안긴 아기가 나를 보고 웃었다.
그 웃음 하나에 모든 게 녹아내렸다.
방금 전까지 요란하게 울던 아기가 울음을 그친걸 보니 엄마를 찾았나 보다고 얘기하며 지친 표정을 하던 남편은 친구와 재미있게 놀았냐며, 더 놀고 오지 그랬냐며 뭘 하고 놀았는지 묻는다.
신이 나서는 조잘거리며 친구와 무슨 얘기도 했고, 어딜 가고 뭘 먹었다며 얘기를 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짧은 ‘쉼’들이, 나를 다시 살게 한 시간들이었다는 걸.



오늘로 아기는 벌써 50일이 되었다.
매일같이 버겁고도 눈부신 하루들을 견디며, 아기와 함께 나도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아기의 숨소리, 미소, 작고 따뜻한 체온이 내 하루의 의미가 되어준다.
그리고 그 곁에서, 내 삶을 지탱해 주는 사람들과 순간들이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지쳐도 괜찮다고, 잠시 쉬어도 된다고, 걱정 가득한 마음으로 응원해 주는 마음들이 모여 위로가 되어주고 있다.
그렇게 나를 살게 한 시간들 덕분에
오늘도 나는, 다시 미소 지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