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마저 위로가 되는 집

일상의 마지막 온기

by 린꽃

방음이 되지 않는 낡은 아파트는 누군가 계단을 오르는 소리, 문 열리는 소리, 물 내리는 소리나 강아지가 짖는 소리, 하다못해 대화하는 소리도 고스란히 들린다.
한때는 이곳의 다양한 층간 소음에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때도 있었는데, 이젠 같은 라인에 살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난 뒤, 그런 소리마저도 오래전부터 들리지 않고 있다.
그러다 최근, 오랜만에 누군가의 인기척이 이 조용한 집에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아홉 시쯤, 현관 앞 수유 의자에서 아기의 마지막 수유를 하던 중에 1층 공동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계단을 오르는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분명 남편이 오는 날도 아니고, 이 시간에 이곳에 들어올 사람은 더더욱 없는데 누구지?라는 생각을 하며,
점점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어떤 두려움이 느껴졌다.
내가 고작 사람의 발소리에 두려움을 느낀 이유는,
지금 같은 라인에 살기 위해 남아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혹시나 남편이 내게 말을 하지 않고 집에 온 걸까 일말의 기대도 품은 채 긴장하며 귀를 기울이다가, 발소리가 우리 집을 지나 윗집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한 달 전, 마지막으로 같은 라인에 남아 있던 이웃 친구가 이사를 가며 윗집도 곧 이사를 갈 예정이라 들었다고 이야기를 하고선 이제 정말 이곳에 나 혼자 남겠다며 내 걱정을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 그즈음부터 윗집은 긴 시간 텅 비어 있었고,
윗집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이사를 간 건 아닐까 싶을 만큼 고요하던 와중에 들려온 사람의 인기척은 너무 반가웠다.
그 후 며칠 동안 윗집에서는 부지런히 짐을 정리하는 듯한 소리나 바쁘게 움직이는 발걸음 소리가 간간이 이어지고 있다.



몇 달 전만 해도 시도 때도 없는 윗집의 쿵쿵거리는 발망치 소리에 지쳐 층간 소음 슬리퍼도 따로 사두고 쪽지를 쓸까, 어떻게 전해야 하나 고민했던 나였는데,
정작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자 집이 너무 고요해 오히려 불안해졌었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 다시 들려온 위층의 발소리가 그렇게 반가웠다.
낮 동안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누군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묘하게 안정시켰다.



그러다 일순간, 또 다른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이곳에서 2년을 지내고 나니 사람들의 움직임의 패턴을 어느 정도 읽게 된다.
그중 가장 익숙한 건, 가족 없이 남편만 빈집으로 돌아와 며칠간 머문다는 건 곧 이사를 준비한다는 신호라는 거다.
한동안 분주한 윗집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혹시 내일 아침엔 창밖에 이삿짐 트럭이 서 있는 건 아닐까? 싶은 마음과 함께
조금만 더, 며칠만 더 윗집이 이곳에 머물러주면 좋겠다고 매일 바라게 되었다.
윗집까지 떠나버리면, 이 조용한 집엔 다시 나와 아기만 남게 될 테니까.
긴 겨울을 인근에 사람도 없이 덩그러니 혼자 보낼 생각에 막막함이 앞섰다.



오늘도 아침부터 들려오는 요란한 윗집의 발소리를 들으며,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층간 소음이 내가 세상과 이어져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한다.
조용한 시골집에서 아기와 단둘이 지내는 요즘, 이런 미세한 소음들은 나를 현실로 붙잡고 있는 마지막 끈처럼 느껴진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그 인기척들이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해 준다.
이곳에서의 층간 소음은 불편함이 아니라, 혼자 남겨진 내 곁을 지켜주는 일상의 마지막 온기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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