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내리던 날, 아기를 안고

by 린꽃


드디어 올해도 화천에 이른 첫눈이 내렸고,
벌써 화천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겨울이 찾아왔다.
작년 이맘때쯤 첫눈이 내리던 날엔 어김없이 바쁜 남편 덕에 혼자서 그저 하얗게 쌓여가는 눈을 바라보고, 눈을 밟으러 한밤중에 밖을 나섰었다.
아무도 없는 산골 마당에 조용히 내려앉던 눈송이들은 잠시 위로 같다가도, 다시 더 깊은 적막 속으로 나를 밀어 넣곤 했다.
작년의 첫눈은 내겐 반가움은커녕 그저 외로움과 고립의 신호일뿐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내 품에는 갓 백일이 된 아기가 있고, 그 작은 아기와 함께 처음 맞이하는 눈이었다.
첫눈이 오던 날, 베란다 창문으로 아기를 안고 비가 눈으로 바뀌며 금세 함박눈으로 내리는 눈을 구경했다. 유난히 굵고 포근한 강원도 산지의 눈이 세상을 금세 순백으로 바꾸는 걸 보며 나도 모르게 마음이 들떠 '아가야, 첫눈이야. 이게 뭐지? 너무 예쁘지?' 하고 속삭였다. 아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내 품에서 눈을 열심히 굴리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발이 점점 굵어지는 걸 보고 잠시 후엔 겉싸개에 아기를 싸서 조심스레 아이를 꼭 안고 밖으로 나갔다.
사람이 찾지 않는 집 앞의 작은 놀이터에 조용히 쌓여가는 눈은, 마치 우리 둘만을 위한 무대처럼 조용하고 넓었다.
아기의 볼에 닿을 듯 말 듯 내려앉는 눈송이를 보며 순간 마음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한동안 동네를 돌아다니며 점점 쌓여가는 눈을 밟으며 걷다 이내 다시 현실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이곳에서의 눈은 설렘만을 뜻하지 않는다.
눈이 쌓일수록 사람의 발길은 끊기고, 나 혼자 아이를 돌보는 날들은 길어진다.
간혹 눈 때문에 남편조차 오지 못하는 날도 있으니 완벽한 고립의 계절이 시작된다는 걸 안 순간,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첫눈이 펑펑 내리는 이 풍경이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두려운 이유였다.
다만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첫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아기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어떤 용기도 생겼다.
시골의 외로운 겨울을 향해 걸어가고 있어도, 이번엔 내가 지켜내야 할 내 품에 기대 숨 쉬는 작은 존재가 있었다.



가만히 내 품에 안긴 아기의 얼굴을 보다 다시 눈을 올려다보았다.
하얗게 내려오는 눈발 사이로, 아기와 내가 서 있었다.
작년에 혼자서 바라보던 눈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외로움과 따뜻함, 두려움과 용기, 고립과 연결이 한꺼번에 밀려왔다가 곧 다시 천천히 가라앉았다.
올해도 화천의 겨울은 분명 길 것이다.
눈길은 더 쌓이고, 집 안에 갇히는 날도 늘겠지.
하지만 오늘 아기와 함께 맞은 첫눈을 통해 알게 됐다.
이 긴 겨울을 지나가는 발걸음 위에 내게 기대고 있는 작은 생명이 함께한다는 사실을.
다시 눈발을 뚫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아기를 더 따뜻하게 안으며 주문처럼 올해 겨울은 너무 길겠다고, 우리 둘이 긴 겨울을 함께 잘 견뎌보자고 계속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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