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끝자락 산골의 겨울은 다른 곳보다 시작이 빠르다. 11월 말에 제일 먼저 첫눈도 내렸고, 첫눈이 온 이후로 세상은 온통 꽁꽁 얼어붙어있다.
아침 공기에서 서늘한 기미가 느껴질 때마다, 눈이 펑펑 쏟아져 고립되는 한겨울이 금방이라도 들이닥칠 것만 같다. 그전에 꼭 한 번은 꼭 나의 고향인 제천에 내려가고 싶었다. 아기와 단둘이 살고 있는 이 외로운 산골에서, 고향이 항상 너무 그리웠다.
우리 집에서 제천까지는 편도 세 시간. 화천에서도 조금 더 돌아 들어오는 구불거리는 길은 겨울철에 특히 험하고, 눈이 오기라도 하면 폭설에 고립되어 돌아올 수 있을지조차 걱정되는 그런 거리다. 그래도 가고 싶었다. 아니, 가야 할 것만 같았다. 작은 방 안에서 아기 울음과 내 숨소리만 들리는 나날들 속에서, 고향이 내게 손짓하는 것 같았다.
매일 찾던 넓고 푸른 의림지의 풍경부터, 집 근처의 내가 종종 찾던 카페들, 친구들과 가족들 모두 그리웠다.
그래서 무턱대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최소한으로 꼭 필요한 짐만 챙기려고 했는데 아기에게 필요한 것들이 끝도 없이 나왔다. 기저귀, 분유, 젖병, 아기옷, 손수건, 젖병소독기, 분유포트, 휴대용 분유포트와 유축기와 유축기 부품들, 모유저장팩 등등.. 아직도 혼합수유를 하고 있으니 더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짐은 자꾸만 늘어나는데, 내 마음은 그만큼 작아졌다. '이걸 다 챙기고 아기를 데리고 어떻게 혼자 운전해서 가지?' '혹시 길에서 눈이라도 오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들과 함께 어느새 산처럼 쌓인 짐 앞에서 결국 손을 놓고 말았다.
그 순간, 마음이 툭 하고 꺼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결국 짐을 다시 풀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가만히 주저앉고 말았다.
가고 싶다는 마음보다 두려움이 조금 더 컸던 날.
그래도 갈 수 있을 것만 같아 끝내 포기하지 못하고 애꿎은 서랍을 열었다 닫는 소리만 가득한 방 안에서, 눈물이 한 줄기 흘렀다.
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을 거라 굳이 믿어보고 싶었는데.
고향은 그렇게 멀어졌다.
오늘도 나는 고향에 가지 못하는구나, 그 사실이 괜히 마음을 쓰렸다.
한참을 짐을 싸다 보니 어느덧 아기 수유시간이고 유축도 해야 할 시간이라 결국 출발하지 못하고 짐을 싸며 어수선한 집에서 또다시 아기와 단 둘이 남은 하루를 보냈다.
다시 짐을 제자리로 정리하면서도 곧 다시 집에 내려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현관 앞에 여분 손수건이나 기저귀, 옷들을 쌓아놓은 짐들은 풀지 않았다.
그날 밤, 오래된 고향 친구가 꿈에 찾아왔다. 고향집 근처의 익숙한 장소에서 호탕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친구의 말투, 어릴 때처럼 별 걱정 없이 이야기하던 우리의 모습.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 꿈이었다.
다시 눈을 뜬 새벽엔 꿈이라는 걸 깨닫고 조금은 슬펐지만 마음 한편은 오히려 개운했다.
고향은 못 갔어도 고향이 먼저 나에게 찾아온 것만 같았다.
아마도 요즘의 나는 그저 누군가의 괜찮냐는 한마디,
내 마음이 놓일 수 있는 한 자리,
그런 위로들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겨울은 곧 오겠지만 그전에 마음의 길 하나쯤은 고향에 닿았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