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백일이 될 때까지, 읍내의 보건소와 백일사진을 찍으러 간 사진관을 제외하면 어디에도 제대로 나가본 적이 없었다.
시골이라 근처에 특별히 갈 만한 카페나 문화시설도 없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아기가 혹시라도 울기라도 하면 누군가에게 민폐가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집 앞에만 나가도 울고, 보건소나 사진관에서도 계속 울었기에 외출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아기의 칭얼거림이나 작은 울음조차 조용한 공간을 가득 채울 것만 같아서 외출은 언제나 신중했다. 마음먹고 근처 카페에 가보려다가도, 마지막 순간에 혹여나 아기가 울까 망설이다 발길을 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보건소나 사진관에서도 내 품에서 계속 우는 아기를 보다못한 직원분들이 아기를 안아 달래주시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죄송한 마음에 자꾸 종종거리며 안절부절못했다.
우렁차게 우는 아기에게 “여기서 울면 안 된다”고 달래도, 아기는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그런 아기를 달래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질때면 움츠러들며 마음이 무거웠다.
아기가 백일쯤 된 무렵, 하루는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고 인근 도시로 나가 출산 후 처음으로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외출해 사람 많은 공간에 앉아 있으니 몸이 낯설었고, 눈은 자꾸 주변을 살폈다.
한참 친구와 이야기하던 중에 아직 돌이 안 돼 보이는 아기를 안은 젊은 부부가 카페에 들어왔다.
처음엔 아기가 비교적 얌전했지만, 이내 곧 칭얼대기 시작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긴장하며 아기를 안은 부모와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혹시 나처럼 부모님들이 허둥대진 않을까,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하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달리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은 한 번씩 아이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아기가 계속 칭얼대니 부모님들은 마지못해 급히 짐을 챙겨 나갔지만, 나가는 순간까지도 카페 사장님은 따뜻한 미소로 인사했고 다른 손님들도 여전히 부드럽게 아기와 부모를 바라보며 크게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그동안 가슴 깊이 자리 잡았던 걱정들이 조금씩 흐려지는 걸 느꼈다.
‘아기가 조금 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왜 나는 그렇게 두려워했을까.’
순간, 내 안에 단단하게 굳어 있던 벽이 서서히 금이 가며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평소처럼 겉싸개에 아기를 안고 집 근처를 산책하던 어느 저녁엔 막 퇴근해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던 동네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조용히 담뱃불을 껐다.
그 행동은 아주 짧고 소박했지만, 그 안에 담긴 배려가 깊었다.
누군가가 나와 아기를 향해 건넨 순수한 마음이 느껴졌고, 그 순간 묵직한 고마움이 밀려왔다.
도시에서는 미소로, 시골에서는 담뱃불을 끄는 손짓으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이 처음인 작은 아기를 세상의 일원으로 받아주고 있었다.
나는 아직 나가보지 않은 세상이 마냥 차갑다고만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그 안에도 따뜻함이 숨어 있었다.
단지 내가 지레 겁먹고 너무 두려워하고 있었던 거였다.
작은 순간들이 쌓여, 나는 조금씩 용기를 배우고 있었다.
이제는, 밖으로 나가는 일도, 사람들 속에 아기와 함께 서 있는 일도, 예전보다 덜 무섭다.
세상은 생각보다 다정하고,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이 겨울을 지나며 서서히 깨닫고 있다.
언젠가 나도 어떤 아기와 엄마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괜찮다는 눈빛 하나, 조용히 길을 비켜주는 몸짓 하나로,
그들의 하루를 조금 덜 외롭게 해주는 사람이.
조용한 시골에서도, 복잡한 도시에서도,
따뜻함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
아기와 함께 걷는 이 길 위에서 나는 매일 조금씩 그 사실을 배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