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60일이 되던 날부터 매일같이 아기를 안고 집 앞이라도 나선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잠깐이라도 나가지 않으면 숨이 막힐 것 같아서, 아기띠만 하면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어떻게든 달래 계단만 내려갔다가 공동현관 앞에서 돌아오거나, 집 앞을 몇 걸음 걷고 오기를 반복했다.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우는 통에 아기도 나도 산책시간이 점점 두려운 시간이 되어가던 끝에 요즘엔 울음을 더 줄여보려고 겉싸개에 아기를 꽁꽁 싸서 안고 나간다.
낮잠과 밤잠을 재우기 위해 집에서도 늘 이렇게 안고 돌아다녔던 터라, 아기도 겉싸개에 싸여 안기는 게 오히려 편한 모양이다.
바깥에서도 더 이상 울지 않고 내 품에 착 안겨 조용히 얼굴만 바라보다가 금세 잠이 든다.
물론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를 안고 걷다 보면 팔도 무겁고 어깨도 쑤시지만, 그래도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몸의 고통보다 늘 앞섰다.
내가 사는 곳은 사창리 번화가에서도 한참 떨어진, 시골길 끝자락에 가까운 세 동짜리 작은 아파트 단지다.
‘이런 곳에 아파트가 있다고?’, ‘정말 사람이 사는 곳이 맞나?’ 싶은 위치에, 들어오는 사람보다 나가는 사람이 더 많은 곳.
사방을 돌아봐도 텅 빈 집들이 많아, 더더욱 적막함이 깊게 내려앉아 있다.
인근에 민가도 없고 가장 가까운 편의점이나 PX도 차로 십 분, 걸어서는 사십 분은 족히 걸린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답답할 때마다 그 길을 한 시간 반을 걸어 편의점에 다녀오곤 했지만, 이제는 그조차 쉽지 않아 번화가까지 이어지는 길의 반쯤만 걸었다가 돌아오곤 한다.
그래도 집을 나서 이십분쯤 비포장도로의 개울을 따라 걷다 보면, 언제나처럼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계절마다 새 꽃이 피던 그 길에는 이제 은빛 억새가 가득하다.
품에 아기를 안고서도 이 풍경을 남기고 싶어 한 손으로 조심스레 사진을 찍었다.
시골에 사는 나에게 이곳은 작은 관광지이자, 가장 가까운 식물원 같은 곳이다.
곧 겨울이 찾아와 모든 것이 얼어붙기 전, 눈에 담을 수 있는 만큼 담아두며 잠든 아기의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이곳에 살기 시작한 뒤로 단풍구경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길가에 덩그러니 마른 단풍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기를 품에 안고 서서, 누군가는 산책 삼아 오가는 길일 이 먼 길을 나는 오늘도 ‘세상까지 닿기 위해’ 걸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조금 더 걸어가면 편의점도 나오고 카페도 나오겠지만 다시 돌아가는 길도 그만큼 멀어져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가며 내내 등 뒤의 세상에 미련이 자꾸만 남았다.
세상은 여전히 멀고 먼 거리지만, 그 길 위에서 잠든 아이의 체온과 바람의 냄새, 계절의 변화가 내 하루를 버티게 해준다.
아마도 언젠가 이 외진 길도, 끝없이 멀어 보이던 세상도 조금 덜 낯설게 느껴지는 날이 오겠지.
나와 아기가 조금 더 세상에 가까워질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