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머무는 자리

by 린꽃


처음 이사 왔을 때부터 작은 아파트 단지 중앙에 놓여 있던 흔들의자에는 그동안 수많은 엄마들이 머물다 갔다.
바깥공기를 쐬며 잠시라도 숨을 돌리러 나온 엄마들,
울음을 멈추지 않는 아이를 토닥이며 버티듯 앉아 있던 엄마들, 겨울의 칼바람 속에서도 잠깐의 휴식을 찾으러 나온 엄마들까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웃의 친구도 이사를 가기 전까지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아기를 꼭 품에 안고 그 자리에 앉아 있곤 했다.
그 흔들의자는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를 안은 엄마들이
시골의 외로움을 견디며 한 번쯤 머물다 가는 자리였다.
서로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말을 섞어본 적도 없지만
흔들의자에 머무는 그 짧은 순간만큼은 묵묵히 서로의 하루를 위로하던 작은 공동체였다.



출산을 하기 전까지는 나는 종종 베란다에서 창밖을 구경하며 그 흔들의자에 앉아 있던 많은 엄마들의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그들의 품 안에서 울고 웃던 작은 아기들과, 지금의 나와도 닮아 있는 어딘가 외롭고도 단단한 엄마들의 하루를.
밖으로 나서도 인근에 편의점이나 카페 하나 없는 외진 마을에서 그곳은 모두에게 유일한 안식처 같은 자리였다.



계절이 한 번, 두 번 바뀌는 동안 사람들은 하나둘 이사를 떠났고 흔들의자에는 어느 순간 발걸음이 끊겼다.
더는 이곳에 새 생명의 울음도, 누군가의 한숨 섞인 숨소리도, 심지어 사람의 인기척조차 들리지 않는다.
남편마저 타지로 떠나고 이곳에 머물던 사람들이 또 다른 세상으로 제각기 흩어지고 난 뒤 지금은 이 작은 마을에 나와 아기만 남았다.



종종 아기가 멈추지 않는 울음을 터뜨릴 때면,
혹은 이유 없이 마음이 무거워지는 오후가 찾아오면 어김없이 아기를 겉싸개로 감싸안고 그 흔들의자로 향한다.
차갑지만 이상하게 따뜻한 나무의 감촉 위에 앉으면
문득 예전의 엄마들이 이 곳에 머물러있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그들이 남기고 간 온기가 아직도 나뭇결 사이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 자리에 머물다 보면 육아를 하며 쌓인 하루의 피로와 외로움이 조금씩, 아주 천천히 내려앉는다.



사람들은 모두 떠났지만 나는 여전히 아기와 단둘이 그 자리에 남아있다.
늘 똑같이 비어 있는, 아무도 오지 않을 텅 빈 주차장과 아파트 뒤로 끝없이 이어진 산을 바라보다가 다시 조용히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 풍경 앞에서 문득 마음이 쓸쓸해지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외로움 속에서 아주 작은 숨결 같은 위로가 피어오른다.
누군가가 앉아 있던 흔적, 한때 이곳을 채우던 발걸음과 마음들, 그리고 지금의 나까지..
이 자리를 스쳐간 사람들의 모든 시간이 겹겹이 쌓여 나를 붙들어주는 듯하다.



흔들의자에 앉아 나만 쳐다보는 아기를 바라보면 그 작은 눈동자가 내 마음을 천천히 어루만진다.
세상이 조용히 멀어지고 오직 우리 둘만 이 공간에 남아 있는 것 같은 순간.
그때가 되면 어렴풋이 알게 된다.
외로움이 머물던 이 자리가 어쩌면 지금까지의 나를 버티게 해온 자리였음을.



오늘도 모두가 떠난 흔들의자에 몸을 기대어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아기를 토닥이며 미세하게 흔들리는 의자의 움직임 위에서 내 마음도 조용히 흔들린다.
그 작은 흔들림 속에서 또다시 하루를 견딜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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