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아기를 보는 시골의 하루는 길다. 그 어떤 인기척도 느낄 수 없는 곳에서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날들의 연속이라 남편이 오는 날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게 된다.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 늦은 저녁에 퇴근을 하고 퇴근한 뒤 직장 근처의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집에 온다.
늘 그렇듯 이번 주 금요일엔 꼭 칼퇴를 할 거라던 남편은 어김없이 이번에도 아홉시가 다 되어서야 이제 퇴근한다며 전화를 걸어온다.
이번 주에는 꼭 목욕도 같이 시키고 아기 수영도 시켜줄 수 있다며 호언장담하던 남편을 기다리다가 늦은 저녁에 결국 혼자 아기를 씻기고, 마지막 수유를 하고 재우고 나면 남편이 도착할 시간이다.
내가 사는 곳엔 장을 볼 수 있는 곳도 없어서 일주일에 한번, 남편이 퇴근하며 마트 마감시간 전에 장을 보고 출발할 때 전화를 걸면 도착시간 즈음 베란다에 서서 찬바람을 맞으며 남편의 차를 기다리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진 루틴이다.
캄캄한 시골길을 밝히며 들어와 커다란 장바구니와 함께 걸어오는 남편의 모습이 보이면 잠깐 마음이 들뜨지만, 곧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젖병을 씻거나 널어둔 빨래를 걷는다.
그는 이제, ‘남편’이라기보다 ‘가끔 들르는 동네 아저씨’처럼 느껴진다.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자는 아기를 한번 쳐다보고 이번에도 아기의 자는 모습밖에 못 보는 걸 아쉬워하며 일주일 동안 밥은 잘 먹었냐, 잘 있었냐며 안부 인사를 몇 마디 건네다가 금세 다시 일을 이야기한다.
이번 주는 얼마나 바빴고 다음 주는 더 바쁠 거라는 매번 똑같은 얘기들.
내일도 출근을 해야 해서 점심 전에는 출발해야 한다며 본인이 가기 전에 나가서 도서관도 갔다가, 카페도 한군데 다녀오라는 말이 뒤따른다.
나는 대답 대신 말린 젖병들을 소독기에 넣고, 내가 아기를 재우고 자기 전에 해야 하는 루틴 같은 집안일들을 마저 해낸다.
남편의 말은 머릿속에 오래 남지 않는다.
아기의 숨소리와 수유 일과만이 이 집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처음엔 서운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아기를 재우며, 백일도 안된 아기와 아무도 살지 않는 곳에서 혼자 매일 밤을 버티는 게 억울하기도 했다.
아기가 아플 때도, 내가 고열로 삼일을 꼬박 앓았을 때도 남편은 오지 않았다.
금요일에 퇴근하고 간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아픈 와중에도 아기를 먼저 돌봐야 하고 당장 죽을 것 같아도 병원도 멀뿐더러 아기를 맡기거나 인근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으니 가지 못하는 게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나 홀로 매일 밤을 막연한 공포와 싸우며 눈물로 지새웠다.
내가 아팠던 며칠을 이후로 아무리 울어도 날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걸, 결국 남편도, 그 누구도 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요즘은 그냥 포기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남편을 원망하고 탓하는 대신, 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어차피 혼자 남겨진 내 현실이 지옥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다음날 아침, 서둘러 남편이 떠나기 전에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려오고, 새 책들도 둘러봤다.
동네의 작은 도서관에는 따로 신간 책들이 정리된 코너는 없고 책들 사이에 새 책이 끼워져있는데, 매번 올 때마다 새로운 책들을 찾는 재미가 있다.
시골에서 내가 세상을 만나는 유일한 수단은 책이다.
그저 책들을 넘겨보고 나를 위로해 주는 구절들을 찾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한동안 혼자서 사창리 번화가를 드라이브하다가 피엑스도 들러 장도 봤다. 딱히 살게 없어도 시골에서는 외출해서 갈 곳도 없어서, 매번 피엑스를 들렀다온다. 내가 집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이에 산은 주홍빛으로 물들었고, 어느덧 세상은 겨울이 되어버렸다.
짧은 외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남편이 서둘러 다시 문을 나설 때 이제는 언제 오냐 묻지 않고 조금 더 있어달라 잡지 않는다.
묻지 않아도 내 물음에 수많은 떠나야 하는 이유가 뒤따를 걸 안다.
이번 일주일이 이렇게 지나갔으니 다음 일주일도 무사히 지나가기를, 그저 속으로 중얼거리며 되뇌인다.
그 말에 담긴 건 원망이 아니라 체념이다.
자꾸 포기하는 무력한 내 모습을 느낄 때마다 나 스스로도 내가 안타깝다.
남편은 다음 주는 당직도 있고 근무도 있어서 못 올 거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건네고, 집에 고작 열두 시간도 머물지 않고 떠났다.
아기를 안고서 떠나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꾸만 외로움이 고개를 든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이 모든 일들을 혼자 해내고 있다고 해서 정말 괜찮은 게 아닌데.
내가 어떤 모습이어야 이 집에 하루쯤 온전히 머물러줄까?
마음은 곪을 대로 곪아 더 이상 눈물도 흐르지 않는다.
또다시 혼자 남은 시골의 저녁은 고요하고,
내 품에 안겨 잠들어있는 작은 아기의 숨결은 따뜻하다.
이곳에서 나는 천천히,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아도
되는 - 기대지 않아야 하는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