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시골에 아기와 단둘이 남겨진 지 열흘쯤 지났을 때, 결국 사달이 났다. 내가 40도에 육박하는 고열과 함께 아프기 시작한 거다.
얼마 전 산후 2개월 검진에서 염증소견이 나와 치료받고 약을 먹어야 하니 내원하라는 산부인과의 연락을 받긴 했지만 우리 집에서 병원도 너무 멀고 혼자 육아를 하면서 갈 시간이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가지 못했었는데 그 때문일까, 아니면 며칠간 지속된 독박 육아가 힘들어서 지칠 대로 지친 몸이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걸까, 삼 일간 수시로 열이 오르고 밤새 열이 떨어지지 않아 울며 혼자 머리에 찬 수건을 올려두고 타이레놀부터 아기 해열제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먹으며 버텼다.
그 와중에도 세 시간에 한 번씩 수유를 하는 이제 갓 70일을 넘긴 아기는 돌봐줄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하루 종일 재워달라, 밥을 달라며 칭얼거리고 울었다.
열이 나기 시작한 시점부터 유축한 모유는 찝찝해서 전부 버리고, 그나마 다행히도 미리 냉동해 둔 모유가 많아서 세 시간에 한 번씩 중탕해 아기를 먹였다.
한 번씩 아기의 몸이 너무 차가운 것 같아 놀라서 열을 재보면 나만 몸이 불덩이 같을 뿐, 아기의 체온은 정상이었다.
낮 동안은 38도이긴 하지만 서서히 열도 떨어지고 있고 어찌어찌 하루를 잘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밤중에 열이 올랐다.
금세 열은 39도를 넘기고 온몸을 방망이로 때리듯 전신통을 동반해 이불을 몇 개를 덮어도 추워서 바들바들 떨렸다.
해열제를 먹고 좀 열이 떨어졌나 싶어 열을 재보면 38도대였다. 어느 순간부터 내 기초체온이 38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젠 38도일 때가 그나마 좀 살만했다.
결국 새벽 두 시쯤 너무 아프다고, 힘들다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나 남편은 내일 퇴근하고 간다는 말뿐이었다.
당장 너무 아파 죽을 것 같다는 내 말엔
" 그럼 어떻게 해, 휴가를 써? " 묻는데, 목소리에 가득 담긴 곤란하다는 말투에 됐다고 하고 끊었다.
아기의 예방접종 날이나 아기가 아플 때도 휴가를 쓰지 않는 사람인데, 하물며 겨우 내가 아프다는 이유로 휴가를 쓸 리가 없었다.
그리고 울며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도 없고 근처에 사람들도 없는데 당장 너무 아프다고 했다.
먼 곳에 있는 친정엄마도 너무 멀어서 가지 못한다며, 다음날 남편이 퇴근하고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뿐이었다.
결국 아무도 없는 시골에서, 난 죽을 만큼 아파도 혼자였다.
아프던 며칠간 제일 서러웠던 건 내 한 몸 일으키고 보살필 여력도 없는데 혼자 아기를 돌봐야 한다는 거였다.
아기가 울면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잠투정을 하고 이유 없이 악을 쓰며 우는 아기를 안고 달래고 집안을 돌아다녔다.
고열에 정신이 혼미해서 중간중간 아기를 떨어트릴까 봐 아기를 안은 내 손을 꼭 맞잡았다.
아기가 잠깐 잠들었을 때는 쉴 시간도 없이 여전히 젖병을 씻고 열탕소독을 하고 당장 급한 집안일만 하고, 살기 위해 뭐라도 대충 먹고 네 시간마다 해열제를 먹으며 버텼다.
다음날 자정에 가까워진 늦은 저녁, 뒤늦게 남편이 도착하고 나서야 긴장이 풀려 잠깐 잠들 수 있었지만 또다시 오르는 열에 해열제를 먹고 밤새 덜덜 떨었다.
남편이 집에 왔을 때 볼일을 보거나 병원을 가거나 개인적인 일들을 할 수 있어서 삼일을 꼬박 앓고 다음 날인 토요일 오전에는 며칠 만에 밖으로 나와 읍내의 의원에서 진료를 받고, 바로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소리에 춘천까지 가서 검사를 하고,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병원에서는 혈액검사상 염증수치가 너무 높아 입원해야 한다고 했지만 도와줄 사람 없이 혼자 육아를 하고 있어 거절하고 주사를 맞고 약만 받아 서둘러 돌아왔다.
나오는 길에도 의사 선생님은 혈액검사결과지를 챙겨주며 오늘 밤에도 열이 나면 바로 응급실로 가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다.
사실 나도 두려웠다. 삼일 이상 별다른 증상 없이 나는 열이 더 무섭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내가 내과병동의 간호사로 일하던 때에도 거의 볼 수 없던 높은 염증수치라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너무 무서웠다.
춘천에서 돌아오자마자 남편은 또다시 업무가 많다며 서둘러 떠났다.
다음 주는 더 바빠서 연락도 안될 거라는 말과 함께.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또다시 외로운 이곳에 아기와 덩그러니 남겨졌다.
늦은 오후가 되자 다시 아플 시간을 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오한과 함께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준 약과 타이레놀을 삼키며 한동안 남편도 오지 않는데 이대로 내가 쓰러지면 아기는 어떡하지, 그 생각뿐이었다.
내겐 며칠간 고열과 사투하며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힘이 없었다.
더 이상 시골에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앞으로 남은 이곳에서의 생활을 혼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만신창이가 된 채로 홀로 버티는 하루하루가 너무 괴롭고 힘들다.
나도 보살핌이 필요하다.
누구의 엄마이기 전에 나도 한 사람이고,
아플 때는 기댈 수 있는 누군가의 존재가 그리운 사람이다.
엄마라는 이름 아래 마음 편하게 아프지도 못한다는 걸 너무 빨리 깨달아 버린 요즘이다.
이 낯선 곳에서, 괜찮냐고 날 살펴봐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고 아플 때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혼자 버텨야 하는 매일이, 정말 너무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