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살지 않는 시골에서

온 마을도, 온 가족도 없는 일상

by 린꽃

아프리카의 속담 중에는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아이의 성장과 양육에 마을 전체의 관심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의 속담인데,
온 마을은커녕 온 가족도 없는, 사람이 살지 않는 시골 오지에 갓난아기와 단둘이 덩그러니 남겨진 내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병원 하나 없는 곳에서 홀로 아기를 보며 며칠을 고열에 시달린 이후로 이곳에서의 생활은 생명의 위협이 되어버렸다.
여기선 내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소리 소문 없이 갑자기 죽어버려도 며칠을 아무도 알지 못할 거다.
그 누구도 내가 여기에 아기와 단둘이 남겨진 걸 모르고, 관심조차 없는 것 같다.
살면 살수록 세상에서 점점 지워져 가는 느낌이 든다.
내가 브런치에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꾸준히 글을 쓰고 기록을 했던 이유도 내가 살아있다는 걸 누구에게라도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아직 내가 여기에 살아있다고, 이렇게 버티고 있다고.



이곳엔 벌써 며칠째 하루 한 번 택배아저씨의 방문 외에는 그 어떤 인기척도 들려오지 않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사람을 보고 싶어서 매일같이 꼭 필요한 게 아니더라도 택배를 시키며 택배아저씨가 올 시간쯤이면 바깥만 쳐다본다. 우리 집만 들렀다가 가는 택배아저씨를 보는 게 유일한 사람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사실 그저 사람을 보고 싶어서 물건을 시킬 때도 많아서, 대다수의 택배들은 열어보지도 않고 벌써 며칠째 현관에 쌓여만 가고 있다.



낮동안은 추워도 온 집안의 문을 열어두고 있는데, 한 번은 창밖으로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설레는 마음으로 베란다를 뛰어나갔는데 바람에 낙엽 굴러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 거였다.
고작 낙엽 소리에 설레어 한 내가, 문득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온통 빈집뿐인 동네에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으니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젠 잠옷 차림으로 바깥에 나돌아 다니다 들어오는 것도 익숙해지고 듣는 사람이 없으니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도 울고 계단에서도 울고 여기저기에서 울고 싶을 때 소리 내어 펑펑 우는 것도 익숙해졌다.
그렇게 울다가 동네의 지나가는 고양이들을 보면 말을 걸면서 쫓아가거나 혼자 그 앞에 앉아 이야기를 하곤 한다.
너희는 여기서 뭘 먹고 사는 거냐, 여기 먹을게 뭐가 있긴 하냐, 이제 곧 눈이 올 텐데 너네도 고생이 많다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온다.
이젠 동네의 고양이들도 그런 내가 익숙한지 날 보면 피하지도 않고 오히려 곁으로 다가와 내 말에 '야옹-' 거리며 얌전히 앉아 맞장구를 쳐준다.
그나마 그런 동네 고양이라도 있어 다행인가 싶지만, 점점 내가 인간 이하의 어떤 다른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아 무섭다.
요즘의 나는 '세상에서 아기와 내가 투명 인간이 아닐까? 나라는 사람이 애초에 존재하긴 했던 걸까?'라는 생각에 휩싸여있다.
고립된 삶은 사람을 빠르게 미치게 만든다는 걸 나 스스로 시험해보고 있는 것만 같은 매일이다.



남편은 보통 일이 주에 한 번쯤 집에 하루 왔다가는 게 다인데, 떠나기만 하면 연락 두절이라 며칠에 한 번쯤 내 생사만 확인하듯 안부를 묻는다.
밥은 잘 먹고사냐, 애는 뭐 하냐고 묻다가 내가 새벽 수유가 힘들다고, 오늘도 코피가 났다는 말을 하면 애가 지금 며칠인데 새벽 수유를 아직도 하냐는 무관심한 답이 돌아온다.
이맘때 아기들은 새벽에 한 번쯤 배고파서 깨면 먹이는 거라고 얘기하다가 그냥 입을 닫는다.
본인의 아기가 지금 생후 며칠인지, 수유 패턴은 얼마고 한 번에 얼마나 먹는지 함께 보는 육아 어플에 기록해도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길게 얘기하기도 싫다.
예의상 묻는 아기의 수유 텀이나 아기와 나의 생활에 대한 얘기도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사실 남편의 존재도 이젠 허구가 아닌가 싶다.
내게 남편이 있긴 했던가? 남편이 있는 게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내가 이 시골에 아기와 단둘이 덩그러니 남겨진 원인을 제공한 게 남편이니 남편의 존재가 아예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냥 없으니만 못한 존재일 뿐이다.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날들 속,
점점 현실감이 사라지고 눈은 퀭한 채로 시들어가고 있다. 더는 그 어떤 미래도 기대되지 않는다.
아기는 너무 예쁘지만 그 예쁜 아기를 보면서 자꾸만 눈물이 난다.
아기는 무슨 죄가 있어서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 나와 덩그러니 고립되어 있는 걸까 싶어 매일이 눈물바람이다.
아기와 놀아주고 싶고 해주고 싶은 건 많은데, 나는 항상 피곤하고 갈수록 내 몸의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것 같다.
정말 이게 내가 원했던 삶이 맞는 걸까?
이렇게 살아있는 게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싶다.



악착같이 외로움과 싸우며 혼자 버텨낸 하루가 끝나고 또다시 찾아온 밤, 우리 집의 희미한 불빛 외에는 불 켜진 곳 없이 온 동네가 깜깜한 시간.
온 세상에 나와 아기만 깨어 있는 듯한 고요가 찾아온다.
그 고요 속에서 가만히 아기의 숨소리를 듣는다.
그 작고 따뜻한 숨이, 이 모든 고립 속에서도
내가 아직 인간으로, 엄마로 남아 있게 하는 유일한 소리다.
어쩌면 ‘마을’이라는 건 꼭 사람이 많은 곳이 아니라,
나를 잊지 않으려는 단 한 사람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게 지금의 나에겐, 작게 숨 쉬는 아기의 존재일 뿐이더라도.
오늘도 나는 이 고요한 오지 한가운데에서
나를 향한 아기의 작은 숨결을 들으며, 겨우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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