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가 되어야 나로 자랄 수 있을까
비교는 아이를 자라게 하지 않는다.
나의 부모님은 이십 대 초반의 나이에 나를 일찍 낳아서 이제야 오십 대가 되었다.
아빠의 친구들 중에 똑같이 일찍 결혼을 해서 그 자녀 중에 나와 동갑인 아이가 있었다.
나는 그 애와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었지만 초등학교도 같이 나오고, 중학교까지 같이 나왔지만 인사를 할 정도의 사이일 뿐, 더 친해지진 않았었다.
연례행사로 아빠 친구 가족모임으로 여행을 가면 같이 가곤 했지만 그때도 친해질 수 없었다.
그 애는 항상 나보다 잘난 애였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그 애에게 늘 자격지심이 있었다.
그 애는 어렸을 때부터 영어도 잘하고 한번 배우면 바로 해내는 똑똑한 아이라고 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학습지 문제를 풀지 못하면 항상 그 아이와 비교하며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 애는 척척해낸다는데 난 누굴 닮아 이것 하나 풀지 못하냐면서.
나는 친하지도 않은 그 애가 어릴 때부터 미웠다.
그 애는 고등학교에 가며 지역 이름을 딴, 지역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애들이 간다는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나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갔다.
내가 원해서였다.
컴퓨터를 하는 것도 재밌었고 전산회계며 파워포인트와 한글, 엑셀 자격증들은 지금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나는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전교 몇 등 안엔 늘 들었지만 그 애는 우리 지역 명문 고등학교에서 전교 일 등이었다.
나는 그 애의 삶이 늘 부러웠다.
아니, 어느 순간부터 늘 부러웠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나는 늘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애를 따라가려면 내 노력은 턱 없이 부족했다.
비슷한 조건의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그 애와 나에게 늘 격차는 당연했다.
그 애와 말을 섞어본 기억도 없지만 우리 엄마는 늘 내게 그 애의 소식을 전했다.
그건 성인이 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 전문대 간호학과를 갔지만 그 애는 충청도에서 제일 유명한 대학의 간호학과를 갔다.
나는 부모님에게 그때도 그 애가 얼마나 대단한 아이인지에 대해서 들었다.
똑같은 학과여도 나와 그 애에게 엄청난 격차가 있는 것처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도 늘 높은 학점을 유지했지만 그 애는 늘 그곳에서도 일등을 놓치지 않아 장학금을 받지 않은 적이 없다 했다.
똑같이 4년 대학 생활을 하고 졸업을 하고 국가고시를 보고 둘 다 비슷한 조건의 병원에 취업을 했는데 그때 나는 첫 병원에서 일 년을 채우고 퇴사하고 그 아이는 삼 년을 버텼다.
버티는 것도 잘하는, 대단한 애였다 그 애는.
이십 대 중반이 넘어서도 비교는 여전했다.
주제는 어느덧 우리에게서 내가 만나는 남자와 그 애가 만나는 남자가 비교 대상이었다.
늘 우리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긴 했지만 우리의 배경은 갈수록 더 크게 어른들의 비교 대상이 되었다.
그 애는 남자친구마저 나보다 늘 나은 듯했다.
나도 항상 내가 만나는 남자들과 그 애의 남자친구를 비교했다.
그 애의 남자친구 같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애가 잘난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들었을 때 그 순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느낀 안도감은 나는 그 애 같은 잘난 남자친구를 만날 수 없어서였을까
그때는 이미 그 애의 얼굴도 기억이 나질 않던 시기였는데 나는 그 애와 비교와 자격지심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십 대 후반이 된 지금,
나는 그 애보다 먼저 결혼을 했다.
결혼식을 한지 오 개월이 넘었지만 집과 너무 먼 곳으로 이사를 온지라 집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그 애의 소식도 듣지 못했다.
오랜만에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물었다.
그 애는 뭘 하고 지내냐고.
엄마는 또 어디선가 결혼하진 않았지만 잘 살고 있는 그 애의 삶을 얘기했다.
나는 결혼을 했지만 시골에서 불행한 것 같은 삶에 괴로워하던 시기였는데 또 그 애가 부러웠다.
그래서 남편에게 괜히 이런 시골로 와서 내가 이렇게 됐다 얘기하며 붙잡고 울었다.
그 애는 그렇게 잘 지내고 있는데,
나는 또 그 애에게 뒤처지는 느낌이라서.
항상 뒤처지는 삶이구나 생각하며 울었다.
이십 대 후반이면 그 애와 나와의 비교가 멈출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멈추지 않았다.
끝나지 않는 비교에, 어렸을 때부터 학습화된 비교에 나는 어느 순간 물들었고 비교가 당연한 삶을 살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어느 순간부터 비교가 사라지니 오히려 불안했다.
그 애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는 어떻게 살았어야 했을까?
하면서.
학습지 문제를 풀지 못해 엄마에게 맞았던 그때의 나는 그때에서 머물러 자라지 못한 채 여전히 그 애를 미워하고 있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내가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앞으로의 내 삶에 대해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애에게 지금도 끝없이 묻고 있었다.
나는 한순간도 내가 좋아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
그저 그 애에게 최대한 뒤처지지 않는 삶을 사는 게 내 목표였다.
그렇게 그림자가 되어 나는 그 애의 뒤에 늘 내가 되길 포기한 채 머물러있었다.
한평생을 그 애의 그림자로 살다가 그림자가 될 인물이 사라지니 나는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되어있었다.
여전히 그 애의 삶을 따라가야 할 것 같아서 어느새 그 애의 삶을 갈구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그 애의 삶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했다.
그 애의 삶이 희미해진 지금, 나는 비교가 당연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비교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제부터 내가 될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되는 것보다 나는 여전히 다른 잘 사는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남들 사는 대로 평범하게 산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곧 또 다른 비교 상대를 찾아 누군가와 내 삶을 비교하게 될까 봐 나는 두렵다.
나는 언제가 되어야 내가 될 수 있을까
언제가 되어야 나로 자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