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서도 손톱을 뜯는 이유

불안과 타협하기

by 린꽃

나는 오래전부터 손톱을 깨물었다.
천성이 예민해서인지
어릴 때부터 늘 이유 모를 불안에 시달렸기 때문에 손톱 뜯기는 어쩌면 당연했다.
불안과 손톱 깨물기는 꼭 붙어 다니는 친구 같았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손톱 뜯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내 손에 봉숭아 물을 들여놓거나 골무를 씌워놨다.
그럼 한동안 잠시 나아지는 듯해도 늘 금세 또 손톱을 죄다 물어뜯어놨다.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해도 늘 그랬고 결혼을 하고서도 여전했다.
이십 대 후반이 된 지금도 난 여전히 손톱을 뜯는다.
나 스스로도 상처 많은 손이 늘 창피해서 다른 사람을 만날 때는 혹시라도 들킬까 봐 늘 주먹을 쥐고 있다.
결혼식 때도 손을 다 펼치지 못하고 꼭 쥐고 있었다.
그래도 결혼식을 앞두고 있어 몇 달 이를 악물고 참아내며 덜 깨물긴 했지만 울긋불긋하게 손가락들은 부어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펼치지 못하는 내 손이 나 스스로도 부끄럽다.



남편은 내가 손톱을 뜯다 못해 살들을 피날 때까지 뜯는 걸 보고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한다.
'배고파서 먹는 거야? 먹을 거 줘? 도대체 애도 아니고 왜 손을 뜯는 거야!'
내가 조용히 있을 때 손 뜯는 걸 귀신같이 알고 퇴근 후에 본인 방에서 게임을 하다가도 내가 너무 조용하다 싶으면 쪼르르 달려와 손톱깎이를 뺏어 들고 나를 혼낸다.
때문에 온 집안의 손톱깎이는 내가 볼 수 없는 곳에 숨겨놨다.
안 그래도 남편은 워낙에 잔소리가 심한 사람인데 손톱을 뜯을 때면 귀에 피가 나도록 잔소리를 하는지라 요즘엔 남편과 있을 때 손을 뜯는 비중은 줄었지만
지금도 혼자 집에 있으면 종종 손톱을 물어뜯는다.
적당히면 모르겠는데 피가 날 때까지 뜯는다.
남편이 집을 오래 비울 때면 더 그렇다.
텅 빈 적막한 집에서 피가 난 곳을 뜯고 또 뜯고 반복이다.
긴 시간 집을 비우고 온 남편은 늘 내 손 검사를 하는데, 아주 손가락을 아작을 내놨다며 그때마다 나를 혼낸다.
나도 그때 내 손을 보고 그제야 여기저기 피가 나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란다.
뜯을 때는 아픈 줄을 모른다.
다만 뜯고 나면 뜯어서 생긴 당장의 거스러미가 얼마나 거슬리는지 모른다.
'이것만 뜯고... 마지막으로 이것만...'
마치 손톱 뜯기에 중독된 사람처럼 늘 그런다.
한바탕 손을 뜯고 나면 여기저기 피가 많이 나서 피가 멈출 때까지 휴지를 감아놓는다.
잠시 뒤 피가 멈추고 나면 또 뜯어야 할게 눈에 띄고 그럼 또 손톱깎이를 이용하든 이빨로 계속 뜯은 자리를 아파도 계속 뜯고 정신을 차려보면 또다시 이런 내 모습에 놀라고.. 이 과정이 늘 반복된다.
나를 보는 나도 너무 속상한데 이런 나를 매일 보는 남편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싶다.



요즘의 남편은 매일 밤 내 손에 약을 발라 놓는다.
항상 내 손엔 피가 나서 남편은 소독솜부터 밴드와 붕대를 종류별로 사 왔다.
마데카솔도 세 통을 사 왔는데 금세 다 바르고서는 또 뜯어서 피가 난다.
자기 전엔 남편은 내게 약을 바르라고 신신당부하다가 내가 귀찮아서 바르지 않고 자면 어느새 약을 가지고 와 잠든 내 손에 약을 발라준다.
그때마다 소독약이 따끔해서 잠결에 한 번씩 깨서 징징거린다.
너무 아픈데 오늘은 약을 안 바르면 안 되겠냐고.
남편은 그때마다 아랑곳 않고 아프다며 손을 빼는 날 붙잡고 약을 바르며 날 타이른다.
아픈 걸 알면서도 왜 손을 자꾸 뜯냐고, 이제 그만 멈추면 안 되겠냐면서.



나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도대체 왜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손을 뜯는 걸까?
과연 정말 불안해서일까,
아니면 그냥 습관이 된 걸까?
이유는 정확하지 않지만 평화로운 시골에 있으면서도 이유 모를 불안은 여전히 늘 나를 따라다니고 있다.
마치 분리불안이 있는 것처럼 시골에 와서는 알게 모르게 남편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고 남편이 집에 오래 못 들어오면 강아지를 오래 혼자 내버려 두면 집안의 물건을 뜯어놓는 것처럼 난 내 손을 다 뜯어놓는다.
보통은 내 손의 양상을 보면 외로움과 불안의 척도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내 손이 만신창이가 되어있을 때면 내가 많이 힘들구나 생각한다.



내게 불안은 이미 너무 친숙해서 떼 놓을 수 없는 친구 같은 존재인데
이젠 불안과 어떻게 함께 잘 살아가느냐가 내 삶의 큰 관건일 것 같다.
진작에 불안이 내 곁에 머무는 건 어쩔 수 없다 받아들였지만 이런 식은 아니다.
더 이상 내게 상처가 늘어나는 걸 바라지 않는다.
남편을 마음 아프게 하는 것도 싫다.
앞으로는 불안이 나를 자꾸 다치게 만들지 않도록 타협해야 할 것 같다.
또 입으로 손이 가면 이젠 의식적으로 나를 타이른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 나는 잘 살아갈 거야.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
나는 내가 다치는 걸 원하지 않아.'라고.

그리고 내가 신경을 돌릴 수 있도록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차를 마신다.
한동안 이런 생활이 반복되니 요즘엔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다.
손톱을 기르는 건 내 오랜 꿈인데 올해는 손톱을 기를 수 있을까?
당장의 상처만 없어지더라도 정말 좋을 것 같다.
내가 오랜 고질병 같은 나의 불안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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