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과거 속의 기억
취한 척 전화를 걸 용기
오랜만에 고향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이미 연락이 끊긴 지 오래인 친구의 전화에 한동안 핸드폰 화면을 보며 아무래도 잘못 건 게 아닌가 싶었다.
밤늦게 술에 취해 내 생각이 났다며 전화를 건 친구의 목소리가 어딘가 격양되어 있었다.
횡설수설 말을 이어가는 친구의 말들 속에,
아주 오래전에 함께했던 추억들이 있었다.
" 왜, 우리 예전에 술 먹고 새벽에 산책했을 때 기억나?
너는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때 딱 이런 계절이었거든.
문득 술 먹다 나왔는데 너 생각이 나서 전화했어.
시간이 너무 늦었지? 미안해.
근데 잘 지내고 있는 거지?
너 결혼식에 못 가서 미안해.
내가 그때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 "
이미 좀 취한 듯한 친구의 말을 가만히 듣다가 괜찮다고, 취한 거 같으니 얼른 집으로 들어가라고 달래고 끊으려는데 뒤이어 친구가 취하지 않았다며 말을 이어간다.
" 나 안 취했어, 술 먹긴 했는데 멀쩡해.
생각해 보니까 내가 너 결혼식에 축의금도 못 보낸 것 같아서, 그게 마음에 걸려서 연락했어. 지금 보내도 돼? "
몇 달은 지난 결혼식, 이제 와 축의금을 보내면 뭐 하냐고 괜찮다고 마음만 받겠다 하니 극구 거절하며 톡으로 보냈단다.
잠시간의 정적이 이어지다
곧이어 추억에 잠긴 친구의 목소리가 들린다.
" 돈 보낸 걸로 너 먹고 싶은 거 사 먹어.
다음에 제천에 내려오면 연락해, 그때처럼 또 술 마시자.
너랑 가려고 했던 데가 있었거든.
시내 쪽 중국집에 가지합이 맛있어.
거기서 연태 고량이랑 가지합 먹자.
언제든 너 오면 연차라도 낼게. "
전화를 하는 내내 언제부턴가 마음 한편이 아렸다.
친구의 목소리에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당장에 먼 고향으로 달려가 친구를 만나고 싶었다.
다음에 꼭 만나자고,
그 중국집에 꼭 같이 가자고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고 보니 축의금이라며 보낸 십만 원과 얼마 전 생일을 축하한다며 케이크를 사 먹으라고 기프티콘이 도착해 있다.
친구는 취하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 멀어진 내게 전화를 걸 구실은 아마 술밖에 없었을 거다.
오랜 시간, 내게 연락하려 했을 거다.
취한 척이라도 하며 전화를 걸 용기,
내겐 그 용기도 없었는데.
우리에겐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보다 더 긴 공백이 있었지만,
그 공백을 메울 추억이 아직 남아있었다.
친구와 나눈 짧은 통화가 내내 귓가에 맴돈다.
밤중에 그때의 기억들이,
걱정 없이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적당히 취한 밤의 습한 거리의 감각들이 피부에 와닿는다.
창가에 가 베란다 문을 연다.
친구가 나와 같이 보냈다던
그때와 같은 습한 공기, 밤의 어둠.
그때의 우리가 놀던 밤거리처럼 휘황찬란한 불빛도, 새벽까지 놀 젊음도 없지만 잠시 동안 그때로 돌아가 세상 앞에 마냥 두려울 게 없던 우리를 회상한다.
입가에 그때 마신 달지만 쓴 소주맛이 스치고 지나가는 듯하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과거 중의 어떤 하루.
그 과거가, 적당히 취한 밤이 그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