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봐야 달라질 건 없다는 걸

빠져나가려 할수록 점점 더 옥죄는 목줄

by 린꽃


최근에 우리 집 앞 내가 늘 보러 가는 강아지들이 목줄에 묶였다.
아직 작은 강아지들인데 그 집이 강아지들에겐 좁았던 모양인지 자라면서 울타리를 넘으려 요즘 뛰고 자주 짖긴 했었다.
어느새 부쩍 커서는 얼마 전부턴 제 키보다 훨씬 높은 지붕을 타고 올랐다.
처음엔 목줄에 묶이고서 평소보다 더 짖었다.
마치 목줄에 반항하듯이 주변에 누가 없어도 목이 쉴 때까지 앙칼지게 짖어서 걱정되는 마음에 더 보러 가곤 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턴가 강아지들이 조용했다.
짧게 묶인 목줄에 더 날뛰며 처음엔 어떻게든 벗어나려 노력했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일어나지도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 자리에서 보냈다.
날 보면 여전히 꼬리는 흔들었지만 예전 같진 않았고 더 이상 짖지 않았다.
힘이 없었다.
그렇게 상황에 순응하고 있었다.
목줄에서 벗어나려 노력해 봐야 그럴수록 강하게 조이는 압박감이 강아지들을 순응하게 만든 거였다.


강아지도 알고 있었다.
짖어봐야 달라질 건 없다는 걸.
노력해 봐야 목줄에 묶인 사실은 변함없단 걸.




나만 아는 강아지들의 웃는 얼굴이 있었다.
한 번씩 장난꾸러기 같은 이 해맑은 얼굴로 날 쳐다보는 게 정말 웃고 있는 것 같아서 나도 같이 행복했다.
하지만 강아지들이 묶인 이후, 더 이상 한 번도 웃지 않았다.
강아지들이 묶인 이후론 나도 강아지들의 사진을 찍지 않았다.
강아지들이 슬퍼하는 걸 알았기 때문에
슬픈 모습을 담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내 사진을 찍지 않게 된 것도 시골에 오면서부터였는데,
나는 아마 내가 슬픈 모습을 보는 게- 이 사진처럼 내 행복했던 과거와 비교하게 될까 봐,
그럼 더 마음 아플 것 같아서 힘들었던 것 같다.



강아지들이 걱정되는 마음에 최근에 하루에도 몇 번씩 강아지들을 더 찾았다.
오히려 짖지 않으니 더 걱정이 됐다.
늘 근처로 갈수록 마음 한구석이 더 아파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멍하니, 갈수록 날 보면 헬리콥터처럼 맹렬하게 꼬리를 흔들며 달려들던 그 강아지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초점을 잃어갔다.
나를 봐도 흘끔- 그리고 다시 바닥만 바라봤다.
문득 그 모습이 나를 닮은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처음 마냥 웃고 밝던 내 모습을 뒤로하고
내가 시골생활에 모든 걸 포기하고 순응해 가던 모습과 닮아있었다.
나도, 어느 순간부턴 웃지 않았다.
결혼으로 시작된 고향에서 먼 시골생활은 내겐 어떤 의미론 목줄과 같았다.
벗어날 수 없는 끝없는 평화.
처음 시골생활을 하면서 나 또한 강아지처럼 끝없이 벗어나겠다 울었다.
안 그래도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외로운 이곳에서 남편이 며칠씩 들어오지 않는 날이 비일비재한 상황에
집에서 하루 종일 울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울어봐야 아무도 달래주지 않았다.
내가 뭐 때문에 우는지, 괴로운지, 지금 마음은 어떤지..
이곳에서 나는 그저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점점 생기를 잃어갔고 이내 날 괴롭게 했던 목줄이 익숙해져 갔다.
어느 순간 울기를 포기했다.
울어봐야 달라질 건 없다는 걸,
많이 울고 힘들어하고 나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목줄 속에 있을수록 목줄 안에 순응해 간다.
내 행동반경이 목줄이 옥죄는 딱 거기까지라는 걸 나도 안다.
벗어나려 할수록 더 괴롭다는 걸 진작부터 깨달았기 때문에 요즘엔 벗어나거나 내가 개선할 수 없는 상황이란 걸 깨닫고 그저 멍하니 벽만 바라보고 있다.
예전엔 가끔 사람들 소리 나 차 소리가 들리면 베란다를 쪼르르 달려 나가 보곤 했는데 요즘엔 그마저도 쳐다보지 않는다.

나에게 올 사람이 없다는 걸 안다.
자주 멍하니 있는 시간이 늘어간다.
내 목줄은 나를 어디까지 옥죌 것인지,
이미 옥죄는 게 익숙해진 건지.
나는 왜 내 스스로 날 괴롭게 하는 목줄을 찬 건지.
목줄 속에서 안정을 찾는 내가 괜찮은 게 맞는지
나는 요즘의 내가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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