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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꽃 Jul 11. 2024

바스라질 낙엽같은 삶일지라도

임신으로부터의 도피

예전에도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내가 바스라져버릴 것 같은 느낌

생기라곤 다 빠진 채 한낱 낙엽이 되어 누가 툭 건들기만 해도 맥없이 사라질 것 같은.





이전에 한참 이런 기분을 느끼던 때의 나는 매번 여행을 떠났다.

매일 마지막 같은 삶들을 보냈다.

여행을 하면서도 나는 늘 예쁜 풍경 앞에서 사연있는 사람처럼 혼자 울었고

마치 이 풍경을 살며 다시는 못볼 것 처럼 풍경들에 멈춰있었다.

주변사람들과 연락을 끊은 채 갑자기 떠나 오래 돌아오지 않은 적도 있다.

내가 사라지기 전에 더 이상 보고 싶은 게 없을 때까지 여행을 다녔다.

돌아올때 마법처럼 살고싶은 이유를 찾았다거나 행복을 느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늘 있었다.

그래서 조금만 더 살아볼까 싶었다.

계속 살다보면 언젠가는 행복이란거, 한번쯤 내게도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서.

그래서 조금씩 내 삶을 연명하며 살아왔다.

그 때 작은 기대도 하면 안되는 거였는데.





인생의 순간들에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고통들이 종종 있었다.

소중한사람의 죽음이라던가 유산같은 내가 피할 수 없는 고통들.

내가 원한 것도 아니었고 결코 내 잘못도 아니었지만 죄책감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던 순간들.

나는 보통의 사람들에 비해 고통의 역치가 낮았고 매번 찾아오는 고통에 쉽게 무너졌다.

점점 약한 사람이 되어갔다.

고통이 쌓이면 무던해질 줄 알았는데, 무던해지는건 깊은 어둠에 더 깊이 빠지는 것 뿐이었다.

어느 순간부턴 고통이 찾아오기 전부터도 고통스러워했다.

이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내게 유리멘탈이라고 했다.

날 제대로 알기 전에도 늘 내가 약할거라 나를 판단했다.

물론 작은 고통도 내겐 너무 컸고 회복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긴 했지만

살며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고통에 무너지지 않기위해 사실 나는 끊임없이 발버둥 치고 있었는데.

무너져도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나는 부던히 노력해왔었는데,

문득 돌아보니 왜 그동안 그렇게 노력해왔나 싶었다.

일찍 포기했더라면 지금처럼 고통스럽지 않아도 됐을텐데,

그 때도 난 너무 고통스러웠는데 더 큰 고통이 있다는 걸 알기위해 지금까지 버텨왔나 싶다.

거듭된 유산으로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었다.
삶의 이유가 고작 더 큰 고통을 알기위해서였다니, 허무했다.

내 잘못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내 잘못이 된 모든 일들이 내 남은 희망마저 가져가 버린 듯 했다.


아무도 날 탓하지 않았지만 난 몇 번이나 유산한 사람이 행복하면 안 될 것같아 끝없이 불행속에 잠식되고 행복을 느끼려하면 죄책감을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는
'맞다, 그랬었지 참, 난 희망따윈 없는 사람이었는데.'

생각하니 편했다.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듯, 나도 내 삶에 기대를 하지 않으니 덜 괴로웠다.

동시에 나를 점점 포기하고 있었다.







요즘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지난 실패의 시간들에 사로잡혀 허공만 보고 있다가,

꽤 자주 울면서 나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나도 내가 아주 위험한 상태라는걸 직감했다.

하지만 내겐 이런 나를 일으킬 어떤 용기도, 힘도 없었다.

그저 형태없이 잘 사라지기 위해 말라갈 뿐이었다.

이러다 한 순간에 바스라져버리는건 시간문제였다.







떠나야 했다.

이런 감정이 들 때면 늘 멀리, 갑자기 떠나곤 했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지난날의 내가 늘 그랬듯

한 밤중에 바다 앞의 숙소를 예약하고 차키를 들고 캄캄한 어둠속을 달렸다.

오랜만에 충동적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지만 그냥 바다 앞에서 마음껏 울고싶었다.

내가 마음놓고 울 곳이 필요했다.

운다고 달라질건 없었지만 그 시간들이 마음속의 응어리 진 고통들을 잠시 잠재우는데는 효과적이었다.

그래서 늘 이렇게 답답한 마음을 느낄때면 떠나왔었다.

잠시의 도피는 잠깐 삶을 연명할 시간을 준다.

내 삶에서 잠시 빠져나와 제 3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준다.


7월의 속초해수욕장,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처


나는 내가 도피처를 찾지 않더라도 내 삶 속에서 삶의 이유를 찾아서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앞으로를 살아갔으면 좋겠다. ​

한낱 쉽게 바스라져버릴 삶일지라도 내 삶에 한 번이라도 행복할 어느 순간 하나쯤은 내가 겪어봤으면 좋겠다.

그럼 내가 언젠가 바스라져버릴지라도 후회하진 않을 것 같다.





그래, 나도 한번쯤 피어봤어.

바록 지금은 툭하면 부서질 낙엽이지만,

내게도 빛나던 때가 있었어.

내 삶을 회상하면서, 누적된 상처들에 끝내는 그대로 바스라져버릴지라도 그것도 그렇게 될 일이라 미련없이 받아들일 것 같다.





그러니 계속 살아서 네가 피우고 싶은 꽃을 한번만 피워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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