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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꽃 Jul 04. 2024

서로를 지키기 위한 방법

임신준비 과도기의 끝

최근 우리 부부의 임신 준비 일상이 과도기를 지나 한계점에 도달했다.
우리는 자주 싸웠고 나는 매달 생리 즈음이면 실패를 인정하지 못한 채 괴로워하며 거의 매일 울었다.
교대 근무 때문에 임신이 되지 않는다 생각해 내 직업을 포기하고 순전히 임신 준비를 위해 퇴사를 한 후 시골로 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의 삶 속에 내 발로 뛰어든지 고작 4개월에 접어드는 달이었다.
벌써 지치면 안 되는데 우리는 지쳐있었다.
유산 이후 수술을 하고 6개월이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 임신이 되질 않으니 조바심이 났고, 매일을 초조해하다가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밤에 묻어둔 채 쌓이고 있던 우리의 감정들이 폭발했다.
난 임신 때문에 일도 관두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 혼자 와있는데 너무 외롭고 계속 임신이 안되는 게 힘들다 평소처럼 얘기하며 울었고, 늘 그렇듯 날 달래줘야 할 남편은 다 포기한 듯 예상한 대답과 다른 답을 했다.
남편을 떠나 네가 살고 싶은 바다 옆으로 떠나라고.
네 말처럼 그동안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시골에서 나 하나 보고 사느라 힘들었을지 안다고.


늘 불안한 내 감정만 털어놓다가 그 말을 듣고 비로소 제대로 쳐다본 남편의 눈엔 상처가 비쳤다.
힘들 거라 생각은 했지만 당장의 내 고통이 컸기 때문에 남편의 고통은 알지 못했다.
남편이나 나나, 우린 서로 충분히 지쳐있었다.
서로의 감정을 받아주고 헤아려주기엔 서로 많이 힘든 상태였다.
우리에겐 ‘결혼’의 의미가 임신을 위한 수단으로 퇴색되어
마치 임신이 아니면 결혼 생활이 유지되지 않을 것처럼 누구 때문에 임신이 안되네, 그때 유산을 한 게 너 탓이네, 탓하다가 우리 둘 다
'이 상태로는 임신을 해도 문제다, 애는 무슨 죄야. 이렇게 행복하지 않은 부모 밑에 살아야 하는 건데. ’
라는데에 그쳤다.
임신이라는 공통된 목표 속에 매달 좌절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의 우리는 서로를 아꼈던 처음의 마음도 잊고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한 채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게 일상이 되어있었다. 습관처럼 무의미한 공격을 반복하다 불현듯 우리 둘 다 ‘우리가 뭘 위해서 이렇게 공격하는 거지? 어쩌다 우리가 서로를 아프게 만드는 데에 이른 걸까’
시간이 오래 지나고 나서야 한참 잘못된 걸 느꼈다.


우리가 임신에 대해 스트레스받지 않을 때는 누구 하나 지금처럼 임신을 위해 일을 포기한다거나 내 생활을 두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지 않아도 되었고, 내 삶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됐다.
그때는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감정만 가진 채 서로를 배려했다.
누가 뭘 더 했냐며 재고 따지는 감정이 아니라 그때는 온전히 서로를 위하고 감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느 순간부터 가장 행복해야 할 ‘임신’이라는 난제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었다.
불과 우리, 결혼한 지 이제 고작 다섯 달인데.
임신으로 시작된 모든 문제가 우리를 갈라서게 둘 수는 없었다.
나도 지쳐있었고 남편도 지쳐있었기 때문에 곧장 집안 곳곳에 놓여있는 배란테스트기들을 버리고 흐릿한 두 줄의 임신테스트기와 지난 임신에 대한 노력들을 지웠다.

마음이 아팠지만 당장
우리가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임신에서 한걸음 멀어져야 했다.
다시 우리가 주인공이 되어 우리가 행복해질 때까지.
이 과도기의 끝에, 우리는 우리를 지키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일을 하기로 했다.
간호사는 아니지만 때맞춰 내가 일해보고 싶었던 직종에서 일을 할 기회가 생겼다.
이곳에서 내 삶을 찾고, 우리가 다시 서로를 아끼는 우리로 돌아갔을 때,
모든 게 다시 제자리를 찾았을 때 -
그 후에 우리의 삶에 다른 가족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의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할 거다.
우리의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날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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