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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꽃 Jul 18. 2024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

남편과 나는 나이 차이가 좀 나서 나는 20대지만 남편은 30대 중반이다.
20대인 내 친구나 지인들 대부분은 아기가 없다.
알고 지내는 친구 두 명 정도 아기가 있긴 하지만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나 대학 동기들은 대부분 결혼을 안 했거나 결혼을 했어도 자녀계획이 아직 없어 그동안은 임신에 대한 게 크게 와닿진 않았고 내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그리 급한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때문에 오히려 요즘엔 임신 계획을 미루고 일단 내 삶부터 꾸려가는 게 우선순위가 되어있던 참이었다.
그래, 남편의 친구들을 만나기 전까진 그랬었다.




주말엔 오랜만에 남편 고향을 방문해 남편의 친구들 청첩장 모임에 갔다.
꽤 많은 친구들이 모였지만 다른 분들의 아내분들은 아기를 보느라 아내가 같이 나온 건 우리뿐이었는데 다들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다며 반겨주셨다. 남편의 친구들은 다 와이프가 첫째를 임신 중이고, 둘째, 셋째도 임신 중이거나, 청첩장을 돌리는 친구는 지금 여자친구가 임신 10주 차여서 결혼을 서두르는 거라 했다.
놀랍게도 아무도 와이프가 임신 중이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다.
다들 아기 자랑을 해서 고작 몇 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어린 아기들의 사진들을 엄청 많이 봤다.
이상했다. 뉴스에선 연일 저출산이라는데 그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여긴 다른 세상이고 나만 아기가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열댓 명이 넘는 사람들 중 유산을 겪은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청첩장을 돌리는 친구가 우리 옆에 앉아 계획에 없었는데 아기가 한 번에 생겨버렸다 웃으며 얘기하다가 아무렇지 않게, 일상 얘기를 묻듯 나에게 언제 유산이 되었냐 물어 10주라 하니 본인도 지금 10주 차에 진입해서 하루하루 불안하다고 했다.
아기집을 봤을 때까진 별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심장소리를 듣고 얘가 잘못되지 않게 무슨 일이라도 할 거라고, 내 인생에 얘가 그때부터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몇 달 전, 아기의 심장이 멈췄을 그때의 온갖 감정들로 순식간에 빠져들어 숨통이 조여왔다.
나라고 안 그랬을까.
나도 그 작고 소중한 심장을 잠시나마 품고 있었는데 그보다 더한 감정들을 느끼지 못했을까.
그분의 걱정과 기대와 사랑에 찬 눈빛을 보는데 그때의 나를 보는 것 같아 괴로웠다.
잘 클 거라고, 그때부턴 괜찮다고,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때 아기를 잃었으니까 그 상실감은 말도 못 하게 컸다.
그리고 나 주제에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싶었다.
나는 유산한 사람이니까.
나는 자격 없는 사람이니까.
나는 죄인이니까.
그래서 괜히 그때부터 술만 연거푸 들이켜고 한순간도 더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한동안 잊고 있던 불안과 슬픔과 고통 같은, 유산 이후 곧장 겪었던 온갖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속으로 내내 울었다.
눈은 웃고 있는데 마음은 타들어갔다.
당장에 도망치고 싶어 술자리를 다 마치기도 전에 남편을 잡아끌어 일찍 가야 한다며 일어났다.




서둘러 우리가 제일 먼저 나오기 전,
그 술자리의 마지막 건배사는 아직 임신하지 않은 우리 부부의 임신을 위해서-였다.
모두가 웃고 있어 나도 웃었지만 웃고 싶지 않았다.
가진 자들의 응원이란 그들에겐 응원이었을지라도 내겐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
누군가에겐 한 번에 되는 일이 나에겐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인데.
누군가에겐 쉬운 일이 될 수 있는 그 일이,
내겐 늘 간절한 일이었는데.
그렇게 쉽게, 웃으며 얘기할 일이 아니었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오빠는 늘 나보다 더 친구들의 임신을 접했을 텐데 별생각이 없었냐 물으니 본인도 착잡했다고 하며
'그래도 우리 인생은 우리 인생이지, 다른 사람이랑 비교하면 뭐 해. 부담 갖지 않고 있다 보면 생기겠지.'
라며 평소와 똑같이 얘기하기 시작했고 나는
'비교하는 게 아니라 부러워서 그런다고 부러워서. '
라는 말을 내뱉는데 눈물이 나서 연신 술자리 내내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나는 가질 수 없는 그들의 행복이 부러웠고,
잃을 걱정이라도 할 수 있는 걸 가진 그들이 부러웠고,
그저 그들을 부러워하며 그들은 겪지 않은 고통을 안고 사는 내가 불쌍했다.
내 눈물이 오래 지속되다 그칠 때까지,
우리 둘 다 그 이후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 엄청난 통증과 함께 생리가 시작됐다.
그동안 스트레스가 심해서인지 아직 생리주기가 돌아오지 않을 날인데 일찍 시작된 걸 보고 마음이 착잡했다.
생리의 시작은 또 다른 기회였지만
다시 시작할 용기도, 내겐 아무것도 없었다.
심한 생리통에 약을 먹어도 밤새 앓아 남편은 밤새 내 등을 쓸어주다 잠들었고 나 혼자 새벽녘 일찍 깨서는 또 내내 숨죽이고 울었다.
벌써 유산한 지 반년도 넘었는데,
아직도 누군가의 임신 소식을 들으면 철렁하고
지금도 길 가다 임산부들과 아기들을 보면 죄인이 되어 안절부절못한다.
반년 전의 유산은 잊고 싶은 시간인데 잊히지 않을 감정으로 내 마음속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아마 이 감정이 정리되려면 앞으로 내 남은 삶들 중의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내 삶이 끝날 때까지도 이렇게 간간이 떠올라 나를 괴롭게 할 것 같아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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