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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꽃 Jun 20. 2024

처음 걸음마를 떼는 어린아이처럼

끝맺음과 새로운 시작

최근 임신준비를 위해 퇴사를 했다.

계류유산 이후로 화학적 유산이 반복되다 내린 결정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아직 20대고 젊은데 아기를 급하게 가질 필요가 있냐며 굳이 퇴사까지 해야 하냐는 반응이었다.

나도 망설여졌다.

대학졸업 후 늘 일을 해왔기에 임신준비로 퇴사하는 건 내겐 도박과도 같았다.

실패하면 결국 남는 건 아무것도 없는 도박.



하지만 내겐 선택지가 없었다.

나는 직업특성상 몇 년간 늘 교대근무를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누적된 피로가 심했을뿐더러

교대근무 자체도 무리가 되는데 임신준비를 하지 않았을 때도 늘 피곤에 절어 나 자신은 돌보지 못했었다.

유산을 하자마자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바로 야간근무를 하는 것도 당연했고 이전의 화학적 유산들을 겪는 과정 속에서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한 달 8번의 야간근무를 해치웠다.

곧이어 '그래서 아기가 떠났다, 이런 환경이 지속된다면 다시 아기가 찾아와도 떠날 수밖에 없다'라는 데에 생각을 미쳤다.

내가 떠나야 했다.

일이든 아기든 하나는 포기해야 했다.

하나의 문을 닫아야 다른 문을 열 수 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 이후론 내가 퇴사를 결정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퇴사가 확정되었을 즈음에는

맞춰 남편을 따라 시골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궁극적으론 임신 준비 때문이었지만 퇴사를 할 수밖에 없는 여러 이유들이 결과적으로 나를 직장 밖으로 이끌었다.



퇴사를 하고 처음엔 갑자기 늘어난 내 시간들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느냐의 시간싸움이었고 동시에 임신이라는 기한 없는 중대한 업무를 수행해 내야 하는 초조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배란이 되고 또다시 생리가 찾아오기까지 28일,

다행히 주기는 늘 일정했지만 28일을 내내 임신에 몰두해서 다양한 상황들을 계산하며 지냈다.

그저 임신이 되기 위한 일상들이었다.

'퇴사를 했으니 임신을 해야 한다'라는 부담을 가지고 내가 해야 할 업무를 빨리 해치우자는 마음이 더 컸다.

생리할 때가 다가오면 온갖 증상들에 집착하며 혹시나 임신한 게 아닐까 기대했고 생리가 시작되면 늘 울며 좌절했다.

나는 이번에도 실패했구나 하면서 매번 끝없이 우울에 빠져들었다.



불안에 사로잡혀 임신에 좋다는 영양제도 종류별로 사고 임신테스트기며 배란테스트기를 사놓고 뜯지도 않았다.

시작해야 했지만 다시 시작할 용기가 내겐 없었다.

또다시 안되면 상실감에 빠져있을 내가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척척 임신도 하고 출산도 하는데 왜 나는 되지 않는지 자책하며 울었다.

그렇게 언제부턴가 SNS도 들어가 보지 않았다.

오랜만에 SNS를 들어갔을 때 초음파사진이나 아기 사진이 보이면 죄지은 듯 화들짝 놀라 화면을 급하게 나갔다.

지인들의 아기를 보는 것도, 누군가의 임신 소식을 듣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주변에선 다른 사람들의 임신 소식이 들렸고 그럴수록 나는 더 희미해지고 있었다.

형용 못할 실패감에 사로잡혀 전의를 상실한 채 주저앉아 눈물만 흘렸다.

아기만 가지면 나도 저들처럼 행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나는 가지지 못하는 행복을 갈구하며 끝없이 좌절에 빠져있었고

내 모든 과거를 부정하며 머지않아 하루종일 죽고 싶다는 생각에만 빠져있었다.

아기가 간절했지만 언제부턴가 아기를 방패막삼아 세상에서 차츰 잊혀가는 내 모습이 보였다.

마치 임신을 하지 않으면 내가 아닌 것처럼,

나는 실패자인 것처럼.

이대론 무슨 일을 해도 될 일도 안될 일이었다.

임신을 하기 전에 내가 죽어버릴 확률이 더 컸다.

대책이 필요했다.




퇴사를 할 때 내가 하나 간과한 게 있었다.

퇴사를 하고 교대근무를 그만한다고 바로 임신이 되는 게 아니었다.

내가 임신 준비를 하겠다 했을 때 이미 그전에 나는 퇴사에 대해 고민할게 아니라 먼저 나에 대해 알아야 했다.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나부터 내가 되어야 했다.

방법을 찾던 중 내가 될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 아주 오래전 얘기들부터 내가 하고 싶던 얘기들을 글로 풀어쓰기 시작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쓰다 보니 비단 임신만이 아니라도 다른 상황들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늘 나를 걱정하고 살폈던 내가 보였다.

그러고 나 임신에 대한 걸 골몰하기보단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나 자신을 돌보는걸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가 되기 이전에 내가 되고 나면 아기가 내게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렇게 차근차근, 천천히 내 안의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보고 운동을 하며 내 일상들을 소중하게 채웠고

가끔 불안과 초조함이 치밀어올라도 나를 달래며 좋은 생각들만 하면서 언젠가 찾아올 아기를 맞이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 걸음마를 떼는 어린아이처럼,

나는 그렇게 나부터 돌보는 방법을 익혀가기 시작했다.



요즘의 나는 임신준비라는 명목으로  생긴 광활한 시간 속에서 나의 세상을 서서히 견고하게 쌓아가고 있다.

사실은 지금도 너무 불안하지만 하루씩 나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나아갈 거다. 

그 길 끝에 널 만나리란 믿음을 간직한 채로.

내가 날 온전히 사랑하게 되었을 때,

너도 내게 와줄 거라 믿기 때문에 두렵지만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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