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어야 한다면
너를 만날 여정
작년에 내가 처음 춘천을 올 때, 그러니까 작년 이맘때쯤 지금처럼 모든 게 피어나고 설레는 이 날씨에 나는 내 인생에 제일 길었던 장기연애에 종지부를 찍고 정말 많이 망가지고 지쳐있었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에겐 두려울 게 없다 했던가,
당장의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도피처로 선택한 곳이 연고도 없고 집에서 최대한 많이 멀고 여행을 와보지도 않은 춘천이었다.
내가 이곳에 오려는 신호였는지 때맞춰 살고 싶은 곳도 찾았고 다닐만한 직장도 찾았다.
면접을 볼 때 춘천에 정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냐며, 그럼 적응하기 힘들어 이곳에 살기 힘들 테니 나를 뽑기 어렵겠다 했다.
그래서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고 다른 지역을 찾아보려던 중 다음날 합격문자를 받고 바로 집을 구하고 이사를 왔다.
그때 합격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어디에서 살고 있었을까?
아마 그랬더라면 지금 나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일 거다.
그동안 낯선 타지들에서 혼자 사는 삶이야 익숙했지만 특히 춘천에서의 삶은 너무 외로웠다.
처음 왔을 때부터 매일매일 이곳에 온 걸 후회하며 울었다.
다만 춘천에 살았던 일 년간 한 가지 외로움이 내게 준 선물이라면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는 거,
임신과 유산을 겪었다는 거.
물론 누군가는 한 번도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었고 많이 울고 죽을 만큼 힘들었다. 춘천에 처음 올 때보다 더 상처받고 망가진 내 모습에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그동안 숱한 이별을 겪어왔어도 유산은 내가 죽을 때까지 떨춰내지 못하는 상처가 된 건 분명했다.
아마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
180 bpm으로 고작 작은 콩알만 한 생명체의 심장이 힘차게 뛰는 걸 보고 팔과 다리가 생기는 걸 보면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을 거다.
처음 초음파를 봤을 때와 심장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그 기억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유산을 겪었을 때도 충격이 너무 컸고 몇 날며칠을 밥도 먹지 않고 울기만 했다.
당장의 수술로 몸도 아팠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다.
심장을 떼어내는 고통이었다.
반년이라는 시간이 더 지났지만 아직도 간간히 운다.
자다가 갑자기 운 적도 많고 운전을 하다 말고 울기도 하고. 눈물은 내게 어느 순간부터 일상이 되었다.
요즘에도 잘 웃지 않지만 한 번씩 웃을까 싶으면 금세 죄책감을 느끼고 웃지 않는다.
"내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행복해, 난 웃으면 안 되는 사람인데" 하면서.
다양한 의미에서 임신과 유산은 내 인생에 가장 큰 분기점 같은 사건이었다.
당장에 죄책감과 슬픔은 언제가 되어야 괜찮아질지 아직도 미지수이다.
하지만 나는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너를 만나기 위해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이 모든 일들을 다시 겪으라고 한다면 기꺼이 겪을 거다.
아기가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내 삶은 아직도 미숙한 상태일 거고 임신은커녕 결혼도 생각지도 못했을 거다.
혼자 사는 삶에 그런대로 만족하면서 누군가와 함께가 아닌 혼자의 삶 속에서 외로움에 허덕이며 살았겠지.
항상 죽음에 몰두하며 미래를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내게 잠깐 머물다 간 아기는 가족을 만들어줬고 살아야 할 이유와 내일을 선물해 줬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정말 소중하게 간직하며 다시 아기를 맞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 거다.
이제는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다시 아기가 찾아왔을 때 후회할 상황들을 만들지 않아야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너무 고통스러웠던 그 시간을 겪고 난 뒤에도 나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너를 만날 때까지 나는 무너지지 않을 거다.
언젠가 너를 안고 이 모든 일이 너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다 말할 그날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 소중히 보내려 한다.
사실은 지금도 너무 두렵지만 내가 선택한 이 길의 끝에 다시 너를 만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