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편과 바람을 쐬러 속초 여행을 갔다가 남편의 오랜 친구를 만났다.
출산을 앞둔 아내분은 친정집에 내려가서 몇 달 동안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처음 유산했을 때 이 친구분을 처음 봤으니 벌써 7
개월이나 지났구나, 임신이 유지되었더라면 나와 주수가 비슷했는데 벌써 출산일이구나. 맞다, 예정대로였다면 나도 곧 출산일이었지. 생각하면서 마음이 아팠다.
남편의 친구분은 곧 아기가 오면 많이 안아줄 생각에 요즘 혼자 보내는 시간도 많으니 팔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행복해 보이는 남편의 친구분께 웃으며 정말 예쁠 거라고, 축하드린다고 말하긴 했지만 씁쓸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속초에서 두 살 아기를 키우고 있는 고등학교 때 친구도 만나기로 했었지만 결국 만나지 않고 내려왔다.
유산 이후에 누군가의 임신과 출산 소식을 듣는 것도, 어린 아기들을 보는 것도 너무 힘들다.
속초를 다녀온 후 한동안 마음이 아팠고 며칠 지나지 않아 친구 아내분의 출산 소식을 들었고 아기 사진을 보냈다 했지만 난 보지 않았다.
남편에게 '아기 사진 보니까 마음 아프지 않아?'
물으니 '아니, 그렇게 마음 아프진 않아. 우리도 곧 가질 거니까. 안되면 될 때까지 시도해 봐야지.'
하는데 늘 밝으려 노력하던 남편의 얼굴에 어둠이 비췄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한 남편이 뒤이어
'근데, 앞으로 계속 안되면 어떡하지?'
라는 남편의 말을 끝으로 우리 둘 사이에 지독한 정적만 감돌았다.
평소에 내가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살던 안되면 어떡하냐는 말에 씩씩한 남편은 나를 달래려 늘 '괜찮아, 아직 20대고 젊은데 뭐. 조급해하면 더 안 되는 게 임신이래. 조급해하지 말자.' 말하곤 했는데,
그 말을 남편의 입에서 처음 들었을 때 말문이 막혔다.
우리 둘 다 또다시 임신을 하면 유산될까 봐, 임신이 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안되면 어떡하지-라는 말이 이렇게 숨 막히는 말이었구나, 난 이 숨 막히는 말을 매일 하고 있었구나.
매일 이 말을 들으며 담담한 척 날 달래기 급급 했겠지만 남편 본인도 내심 얼마나 두려웠을까 싶어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한참을 고민했지만 남편의 말에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남편처럼 '괜찮아, 아직 젊고 조급해하지 않으면 곧 생길 거야' 얘기할 수 없었다.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두려움은 더 커질걸 알았다.
나도 내내 두려웠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를 집어삼키고 있던 두려움은 너무 커져있었다.
이전의 경험으로 학습된 두려움은 아무리 극복하려 해도 극복하기 힘들다.
두려움을 겪다 보면 앞으로 나아갈 용기도 내지 못한다.
마치 두려움이 내게 '널 이렇게 고통스럽게 한 두려움이야, 나 때문에 충분히 힘들지 않았어? 근데 또 시작하려고?'
라며 내게 경고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삶 속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한 번쯤 두려움에 맞설 용기를 내보고 싶다.
다시 실패한다면 더 큰 두려움과 따라오는 절망 속에 빠지게 될 걸 알지만,
지금은 이 길을 같이 걸어갈 남편이 있으니까, 두렵지만 나아가보고 싶다.
혼자서는 용기는커녕 두려움에 짓눌려 좌절한 채 영영 일어나지 못했을 거다.
용기를 내는 지금도 사실은 너무 두렵지만
둘이 함께라면 이 두려움도 맞설만한 상대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