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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꽃 May 30. 2024

그렇게 될 일은 그렇게 된다

나는 항상 이벤트가 많았다.
이벤트가 없는 삶이 이상할 정도로 내 일상은 이벤트 투성이었다.
그동안의 이벤트들이 무색하게 작년부터 나는 내 인생 최대의, 최악의 이벤트들을 겪고 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 시간은 멈춰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나름 자부심을 갖고 일했던 내 직업도 영영 포기했고,
마음 한편이 늘 뻥 뚫린 채로 살아갔다.



최근 세 번째 유산을 했다.
다행히 이번 유산은 자궁 외 임신이나 큰 이벤트를 남기지 않고 그저 늦은 생리로 흘러갔다.
산부인과 피검사 이후에 진해지다가 갑자기 흐려지는 임테기를 마지막으로 이번에도 유산임을 짐작했을 때부터 나는 바빴다.
언제 생리가 터질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뒤늦은 생리가 나를 고통스럽게 할 거라는 걸 알아서인지 제일 먼저 미뤄왔던 집정리를 했고, 그동안 혹시나 작은 세포에게 무리가 될까 봐 부담스러워서 하지 못했던 운전을 해서 한 시간 거리의 도시로 나가 장도 보고 왔고, 집 인테리어나 가구배치도 새로 했다.
기존의 산부인과 예약진료를 가는 미용실을 예약해서 근 1년 만에 파마를 했다.
다시 임신했을 때 곧 시작될 긴 여름동안 파마를 못하는 게 제일 걱정이었는데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임신사실을 알렸던 가까운 친구나 부모님에게도 다시 유산소식을 전했다.
이젠 덤덤하게 나는 괜찮다며 전화하며 울지 않는다.
울어봐야 이미 그렇게 된 일은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걸 나는 안다.
'교통사고'같은 거다.
내 탓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될 일일 뿐이었던 일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회복하고 나면 다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건.
여느 사고처럼 유산도 후유증도 남고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



혼자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기다렸던 생리가 시작됐다.
역시나 양도 많고 복통도 심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속상한 마음에 약을 먹는 대신 오랜만에 술을 마셨다.
사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몸도 마음도 괴로워서 버틸 수 없었다.
거의 하루종일을 술을 마시다가 결국은 다 게워내고 술에 취해 잠들었다.
하루가 지나고 잠에서 깼을 때 나는 여전히 혼자였다.
이 적막이 아직도 익숙해지진 않는다.
결혼을 하고 연애를 할 때보다 더 남편을 잘 만나지 못해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시골에서 나는 혼자보다 더 외로운 삶에 적응하려 부단히 노력한다.



고통이 너무 커서인지,
이번 일을 겪으면서 수없이 이번 일이 '그렇게 될 일이라 그렇게 된 거다'
되뇌면서 나는 괜찮다고 최면을 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괴롭기 때문에 이 또한 유산으로 상처받은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이다.
내 지인들 중에선 내가 유산을 겪은 걸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데, 어느 날 고향에서 나보다 먼저 결혼해 애를 둘 낳은 아는 언니와 통화하다가 '아직 결혼한 지 네 달째니 지금은 신혼을 즐겨' 라며 20대에 애가 뭐가 조급하냐 했다. 나는 애초에 올해 결혼을 했을 때부터 신혼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아기를 잃은 순간부터 나는 임신에만 매달려있었다.
결혼준비를 하면서 유산한 아이가 자꾸 아른거려서 내내 임신에 집착했었다.
거기다 신혼인데 남편이 바빠서 결혼하고 얼굴을 더 못 보는 것도 한몫했다.
아는 사람도 없는 이 외로운 시골의 새댁으로 살면서 '강아지를 키우자' 며 내내 떼를 써도 '개를 키울 바엔 애를 키우겠다'는 남편의 완강함에는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이곳에서 마음을 줄 곳이 필요해 아기를 갖고 싶었다.
다시 실패한 지금, 더 이상 임신에 집착하지 않겠다 해놓고 또다시 배테기며 임테기를 종류별로 쟁여놓은 채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는다. 다시 시도할 용기조차 나지 않는다.
아직도 나는, 여전히 긴 터널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내가 보는 시골의 풍경은 온통 푸르르고 예쁘지만 마치 흑백스크린을 씌워놓은 듯 지금의 내겐 너무 어두워서 그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제 누군가 내게 과거의 유산이나
내 삶의 굴곡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때 그 일도 그렇게 될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된 거겠지'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얘기한다.
달리 다르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냥.. 벌써 몇 번을 겪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난 괜찮다고.
처음엔 내내 울었었는데,
울어봐야 달라질 건 없다는 걸 안 후로 그냥 가슴속에 커다란 구멍을 안고 산다.
최근에 웃어본 적이 언제였더라
행복해서 웃는다는 게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내가 행복하게 웃을 자격이나 있는 사람이었던
당연하다는 듯 슬픈 음악을 늘 듣고 대부분의 시간을 멍하니 보내다가 울기를 반복하고..


언제쯤 나는 '결국 그렇게 된 일'에서 헤어 나올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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