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 번개를 동반한 요란한 비가 내리는 밤,
베란다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를 그저 듣고 있다가 불현듯 밖으로 향했다.
생각해 보니 비 오는 날 비를 온전히 맞아본 적이 살면서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
나는 비 오는 날 우산이 늘 있었고,
우산을 두고 와 비가 내릴 것 같은 날엔 같이 우산을 쓸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여의치 않던 어린 날엔 학교 앞에 엄마가 우산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비를 맞는 건 어쩌면 살면서 처음이었다.
더욱이 나는 비를 무서워해서 더더욱 비를 맞을 일은 없었다.
다행히 깜깜한 밤중이고 아무도 없을 시간이라 시골에서 비를 맞으며 돌아다닐 나를 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밤의 시골이라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는 건 쉬웠다.
결심을 하자마자 무턱대고 밤중에 빗속으로의 발걸음을 뗐다.
가로등도 없는 시골길에 서서 그저 쏟아지는 비를 맞았다.
내겐 우산을 씌워줄 사람도,
우산이 없어 비를 맞았냐 걱정해 줄 사람도 아무도 없었지만
어쩐지 그 순간 살면서 처음 느끼는 해방감을 느꼈다.
내 안에 곪아있던 어떤 것들이 빗속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비를 맞을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우산 안에서 비를 막아내며 수없이 눌러왔던 내 안의 억압된 감정들이 빗속에 흩어지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살며 빗속으로 한 번도 나아가지 못했던 두려움과 망설임들이 빗속에 희미하게 사라져갔다.
이렇게 쉬운 일이었는데,
우산 밖으로 한 발자국만 용기를 내 나서면 이렇게 홀가분할 일이었는데
나는 빗속으로 발을 떼기 전에 항상 망설였다.
비를 맞은 내 모습이 온전하지 않을 게 늘 걱정이 되었었다.
온전하지 않은 나여도 괜찮았는데-
내 속은 늘 곪은 상태로 온전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보일 내 모습은 늘 온전한 상태여야 했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어쩐지 눈물이 나 울었다.
나중엔 내 볼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비인지,
눈물인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저 울었다.
내 울음소리가 빗소리와 천둥소리에 묻혀
날 더 오래 울게 해주었다.
빗속에서 한바탕 울고 나니 오래 두려워했던 비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그 시간만큼은 천둥 번개도 무섭지 않았다.
내 슬픔과 눈물을 가려줄 친구로 곁에 함께해 주었다.
어쩐지 속이 후련해져서 비를 맞으며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밤중에 짧은 산책을 했다.
차가운 비를 맞을수록 오래 묵혀뒀던 감정들이 흔적도 없이 씻겨내려감을 그저 느꼈다.
내가 비를 두려워했던 이유는 우산 밖으로 나설 용기가 없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빗속에 혼자일 내가 두려워서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혼자여서 더 괜찮을 수도 있었는데.
내 인생에 또다시 이렇게 비가 내리고,
우산 없이 빗속에 서게 될 날이 올지라도
한바탕 맞아버리고 내일을 살아가면 좋겠다.
내겐 하루도 평온한 삶이 없어
내일도 어렵겠지만 나는 내가 이런 사소한 일상 속에 딱 하루씩만 더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