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의 겨울은 길다. 올 초에 화천으로 처음 이사를 왔을 땐 주차장 빙판길에 넘어지기도 하고, 추운 날씨에 차 배터리도 자주 방전될뿐더러 많은 눈에 운전하다가 차가 헛돌아서 경사길에 가드레일을 받을 뻔한 적도 있다. 때문에 나는 겨울이 오기 전부터 겨울을 걱정하며 긴장했다. 내 기억 속 화천의 겨울은 너무 춥고 모든 게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다른 곳보다는 훨씬 이르게 찾아온 겨울,
이제는 동네의 모든 은행나무가 앙상하고 초록잎은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은행잎이 노란색으로 물들 때부터 서둘러 월동준비를 했다.
물 없이 붙이는 뽁뽁이가 있길래 추워질 즈음에 뽁뽁이를 사서 붙였다. 베란다 바깥부터 시작해서 모든 창문에 붙였는데 아직은 붙인 이후에 더 따뜻한지는 모르겠다. 붙이기 전과 비슷한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안 붙이는 것보단 붙이는 게 낫겠지 싶어서 겨울 동안은 놔둬볼 참이다.
친정에 갈 때마다 부모님은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주신다. 지난주에도 일 때문에 집에 다녀왔을 때 엄마는 불고기를 한 소쿠리 담아주고 할머니가 농사지은 온갖 구황작물들을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내가 낯선 식재료들 요리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을 한가득 하며 떠날때까지 조리법을 내내 설명하다가 쪽지에 적어줬다.
엄마의 눈에는 나는 항상 물가에 내놓은 아이인 것 같아 떠나는 길엔 마음이 아렸다.
집에 오자마자 친정집에서 싸준 감자랑 고구마들을 껍질을 벗겨서 에어프라이어에 굽고, 삶아서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놨다. 이 과정에서 아직 칼질이 서툴러서 감자 깎는 칼에 베였다. 이제 요리는 어느 정도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름 자신 있는 주부가 되기까지 내 손엔 여러 상처들이 남았다.
친정엄마가 김치도 종류별로 챙겨줬다.
잠시 들렀을 뿐인데 엄마는 내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더 챙겨준다며 무생채를 담갔다. 남편과 나는 김치를 잘 안 먹어서 조금만 달라고 했는데도 친정엄마도 나 못지않게 손이 커서 늘 많이 챙겨준다.
우리 집은 마트랑도 멀어서 평소엔 주로 불고기 같은 재운 고기를 많이 먹는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보러 왕복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인근 도시의 마트에 가서 소분해서 얼려둔다.
마트가 가까운 곳에 있다면 필요할 때마다 사면 되지만,
편의점조차도 걸어서 한시간은 걸리는 곳에 있어 쉽지않다.
우리 집엔 인형도 엄청 많다!! 어딜 가면 항상 인형을 사 오는 나는 인형들을 주기적으로 세탁하는 것도 일이다. 매일 안고 자는 인형들은 한 번씩 터져서 꿰매느라 바쁘다. 원래는 인형들이 세 배였는데, 화천으로 이사 오면서 당근에 나눔 해서 나눠줬다. 남편은 아직도 인형을 조금 더 처분하라고 하는데 이제 남은 인형들은 내겐 각각의 사연이 있는 인형들이라 떠나보낼 수 없다. 혼자 살았던 긴 시간 동안 늘 인형들에 둘러싸여 자는 게 익숙해졌다.
아직 10월 말이지만 이곳은 아침과 밤엔 너무 추워서 털잠옷도 사고 담요도 더 샀다. 침대엔 전기장판도 깔아놨다. 집에선 귀신처럼 하얀 털잠옷에 긴 담요를 두르고 수면양말을 무장하고 돌아다닌다. 난방을 켜놔도 지역 자체가 추운 건지 너무 춥다.
이곳에서 일 년을 같이 산 나의 몬스테라. 크리스마스트리를 살까 했는데 당장 우리 집의 식물들도 추위에 집에 들여놓으니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트리는 사지 않고 대신 귀여운 겨울 소품들을 주문했다. 그나저나 9월에 심은 토마토는 더 자라지도, 죽지도 않고 이 상태에 머물러있다. 당장에 이곳은 해도 잘 뜨지 않아서 아마 열매를 맺진 못할 것 같다.
얘네도 두 달 전쯤 심어놓은 로즈마리 씨앗인데 집에 화분을 들여놓으니 바깥보단 따뜻해서인지 이제야 자라기 시작했다. 이미 겨울이 시작된 줄 모르고 자라는 게 조금은 씁쓸하다. 자라더라도 추위를 견디지는 못할 텐데.
이미 화천에 겨울은 찾아와 버렸고- 겨울을 피할 수 없다면 즐길 수밖에.. 부디 겨울 동안 나도 이 춥고 낯선 곳에서 무사히 살아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