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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꽃 Oct 24. 2024

내가 숨는 계절, 겨울

화천에서의 두 번째 겨울

내가 사는 곳, 강원도 끝자락에 위치한 화천에는 어느덧 겨울이 찾아왔다.
10월인데 유독 빨리 찾아온 추위에 벌써 롱패딩이 없으면 나가지 못할 계절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화천의 겨울은 시리도록 춥고 모든 게 얼어붙어서
나는 이곳에서 두 번째로 맞는 겨울이 너무 두렵다.
날이 추워질수록 나는 흐릴 때마다 첫눈이 내릴까 봐 노심초사했다.
첫눈이 내렸다는 건 더 이상 내가 어디에도 못 간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을이 되자마자 여행을 많이 다녔다.
겨울을 맞이하기 전에 쫓기듯 전국일주를 했다.
겨울 동안 내가 기억하고 싶은 풍경들을 많이 담고 싶었다.



가을동안 곳곳에 우후죽순 열려있던 동네의 감들은 이제는 볼 수 없다.
낙엽이 떨어짐과 동시에 추위를 견디지 못한 건지 감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길었던 여름동안 지독한 폭염에 힘들었는데
겨울은 정말 눈 깜짝할 새에 찾아왔다.



여름 내내 싱그러운 초록을 머금었던 동네 산책길의 나무들은
이제는 가을빛으로 물들어 눈에 띄게 앙상해졌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바짝 마른 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늘 다니던 길에 바닥을 가득 메운 낙엽들을 볼 때마다 내 마음속에도 쓸쓸함이 깃든다.
유독 나는 이곳에서 느끼는 가을의 흔적이 더욱 시리도록 춥고 아프다.



우리 동네는 첩첩산중이어서 길고양이도 별로 없는데
산책길에 유일하게 늘 마주하는 까만 고양이.
근방의 펜션사장님이 먹이를 주는 듯한데
길고양이들은 어떻게 겨울을 날 지 모르겠다.
고양이가 있는 길에 산책을 갈 때면 늘 츄르를 들고 가는데
슬금슬금 와서 경계하는 눈빛으로 내 움직임을 살피며 츄르를 먹고는 잽싸게 도망간다.
항상 몇 걸음 정도, 어느 정도의 거리를 늘 유지한다.
먹이를 주는 펜션 사장님을 봐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걸 보면 아마 아무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을 것 같다.
다른 고양이도 보이지 않는 외진 곳인데 혼자 어떻게 겨울을 날지 벌써 걱정이다.



늘 나를 보면 반겨주는 마을 체육공원 뒤의 강아지도 내겐 정말 소중한 친구이다.
항상 차에서 내리자마자 강아지에게 달려가 안부를 묻고
쓰다듬는다.
강아지도 항상 목줄을 잔뜩 당기면서 내쪽으로 와 열렬히 꼬리를 흔들며 반겨준다.
얌전하고 착한 강아지의 모습에 나도 늘 행복을 느낀다.
외로운 내 삶 속에 시골 곳곳의 강아지들은 내게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위로로 다가왔다.



그러고 보면 겨울이 오는 게 조금은 두렵지 않다.
시골에서도 날 살게 하는 존재들이 곁에 있음에 감사하다.
다시 겨울이 와도 이곳에 사랑은 그대로 일 테니까



여름과 가을 내내 사투를 벌인 다양한 곤충들과도 이제는 안녕이다.
저녁이면 늘 체육공원 산책을 나서는데,
불과 얼마 전엔 매미가 힘을 잃고 트랙 위에 꼼짝 않고 있었는데 이젠 곤충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산책을 할 땐 방아깨비가 한쪽 다리를 잃은 채 트랙 위에서 멈춰있길래, 그대로 두면 밟힐 것 같아서
용기 내 잡아 풀숲으로 보내줬다.
그래도 힘을 잃은 듯 옮겨준 자리에서 미동도하지 않았다.
그때 느껴졌다.
이제 곤충들에게도 마지막 순간이 머지않았다는 게.



모든 식물과 곤충들이 기력을 잃어가는 걸 보면서 나도 점점 힘이 빠진다.
이곳의 겨울이 얼마나 길고 추운지 알고 있기에 힘을 빼고 길고 긴 월동준비를 한다.
겨울엔 나도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온 집안에 암막커튼을 쳐두고 대부분의 시간을 잠을 잔다.
겨울이라는 쓸쓸함으로 점철된 계절에 이 시골에서 홀로 머물기 위해서는 차라리 계절 속에 숨는 편이 쉽다.
이미 이곳에 이른 겨울은 와버렸다.
나는 내가 겨울 안에 무사히 숨어있다가,
다음 계절에 다시 깨어나 초록빛 계절을 열심히 누비고 다닐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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