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보고
나는 한 달에 2,3번씩은 뮤지컬을 관람하러 다니는 '뮤덕'(뮤지컬 덕후)이다. 이제는 한국에 올라오는 어지간한 뮤지컬 작품은 섭렵했다고 자부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인생 첫 뮤지컬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음악 선생님이 틀어주셨던 '노트르담 드 파리' 프랑스 실황 공연 영상을 보았던 순간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1998년 초연된 이 공연 실황은 지금도 레전드로 꼽히는 캐스팅과 퀄리티를 자랑한다. 이런 명작을 아무것도 모르던 10대 여학생이 접했으니 그 충격은 오죽했을까. 프랑스어는 '쥬뗌므'랑 '오~샹젤리제' 밖에 모르는데 '대성당의 시대'와 '벨(아름답다)'의 가사를 들리는 대로 대충 받아 적어서 흥얼거리며 다녔고, 언젠가 프랑스에 가서 저 뮤지컬을 보리라 꼭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고등학교 졸업 후, 바쁜 대학생활과 어마어마한 티켓값 때문에 뮤지컬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2015년이 되어서야 뮤지컬 관람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뮤덕 1년 차에 운 좋게도 '노트르담 드 파리'(노담) 한국어 공연이 블루스퀘어에 올라오게 되었다.
그때 공연에서 느꼈던 숨막힘이란…. 사실 프랑스 뮤지컬은 연출이 난해하고, 서사 진행도 불친절해서 어렵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실황을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아주 쉽게 몰입되었다. 특히 1막은 주옥같은 넘버들이 쏟아지는데, 일단 첫 넘버가 '대성당의 시대'다. 게다가 대극장 앙상블에 환장하는 나에게 최고의 넘버인 '미치광이들의 축제'와 '기적의 궁전'도 1막이고, 노담 타이틀곡 격인 '벨'도 1막 중반 나온다. 브레이커들의 미친듯한 춤사위를 볼 수 있는 '괴로워'에서는 정말 내적 환호를 참기 어렵다. 그렇게 한 장면, 한 넘버에 집중하다 보면 1막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리고 2막은 감정이 폭발하는 넘버가 주를 이룬다. 에스메랄다의 '살리라'와 콰지모도의 '춤추어요 에스메랄다(당스몽)'로 절정에 치닫는다.
한국어 공연을 2016년, 2018년에 거쳐 5회 정도 보았는데, 사실 매번 모든 캐스팅에 만족했던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감격의 첫 공연에도 지뢰 같은 캐스팅이 있긴 했다. 하지만 주조연급 등장인물이 워낙 많고, 한결같이 무대를 채우는 댄서, 브레이커분들 덕분에 매번 대만족 했었다. 노담 is 노담이니까.
그러다 2020년 말 드디어 프렌치 투어가 한국에 왔는데, 하필 코로나로 말썽이었다. 입국한 공연팀 중 몇 명이 확진이라는 말이 나돌았고,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격상으로 인해 예매도 취소와 재예매가 반복되었다. 나도 공연장에 갈 엄두가 안 나고 있었는데, 결국 1월 3일 공연으로 조기 폐막이 결정되었다.
재택근무와 재택근무, 재택근무로 인해 답답한 일상을 보내던 차에, 도저히 못 참겠다 싶어서 결국 인터파크 티켓 어플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래, KF94 마스크랑 장갑 끼고 다녀오자!"
이번 프렌치투어팀에는 98년 원년멤버인 다니엘 라부아(초연 프롤로)도 포함되어 있는데, 총막 공연에는 틀림없이 메인 캐스팅이 나올 테니 라부아의 무대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라부아는 49년생이니, 이번 공연이 내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이 분명했다.
블루스퀘어는 마치 전운이 감도는 전쟁터 같았다. 이번을 끝으로, 언제 다시 무대에 오를 수 있을지 모를 배우들과, 이후 언제 다시 뮤지컬을 볼 수 있을지 모를 관객들의 숨 막히는 집중력. 게다가 이번 프렌치투어팀의 메인 캐스팅의 실력은 '내한-프렌치 투어'라는 타이틀에 어울렸다. 넘버 중간중간 배우들의 어레인지가 나올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실 1막 기적궁 장면이 끝나고 살짝 눈물이 났다. 관절을 아끼지 않는 댄서들과 성대를 아끼지 않는 배우들의 열연과 열정에 압도되었다는 말이 더 맞겠지. 그리고 새삼 내가 뮤지컬을 너무너무 좋아한다는 걸 다시 느꼈다.
주말에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인터파크 어플을 보다가 무턱대고 예매를 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배우들에게 환호를 보낼 수 있던 기절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