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감수성의 계절이다. 어려서부터 유독 감성보다 이성이 우세했던 나에게도 가을은 늘 마음이 촉촉해지는 시기였다. 고등학교 3년을 한강 다리를 건너며 통학을 했는데, 땅거미가 내려앉고 불빛이 반짝이던 하굣길에 느껴졌던 가을 풍경이 지금도 생생하다. 화려한 야경과 대비되는 차가워진 공기 냄새, 바닥을 굴러다니며 서걱서걱 소리내는 낙엽을 바라보면 삭막했던 나에게도 여고생의 감수성이 살아나곤 했다.
그 시절 봤던 영화는 어찌 또 이렇게 기억에 남을까. 시험이 끝나고 선생님이 틀어주셨던 프랑스 영화 ‘코러스’는 지금도 종종 OST를 찾아 듣곤 하는 작품이다. 마치 나에게 10대 후반의 어설프게 설익었던 감성을 심폐소생 시키는 주문과도 같다.
영화는 프랑스의 작은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비인간적 교육 방식을 일삼는 이 학교에 새로운 선생님 ‘마티유’가 부임해온다. 선생님은 문제아 투성이였던 이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합창을 통해 희망을 주고, 마침내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프랑스의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소년 합창단의 포근한 음성과 앙상블이 눈과 귀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영화다.
특별히 가을이라는 계절을 배경으로 하지 않지만, 감수성이 짙어지고 감정의 허기짐을 느껴질 때 나는 이 영화의 음악이 생각난다. 여러 목소리가 포개지며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합창은 일반 가창곡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짙은 감동이 있다. 많은 목소리가 켜켜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마음을 담아 목소리를 내는 것. 한 해가 저물어가는 상실감과 허전함이 밀려올 때, 큰 위로를 주는 음악으로 영화 ‘코러스’를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