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by 산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실수라고 합니다. 실수할 수 있는 자유, 잘못할 수 있는 자유가 인간다움의 핵심입니다.
바른 행동이 찬사를 받는 이유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숱한 가능성 속에서도 그걸 피하고 바른 길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영웅이 영웅으로서 추앙받는 이유도 그들이 숱한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그 자리에 올라섰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때 더욱 값지고 빛나는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삼매로 사는 사람, 곧 시공의 제한을 넘어선 사람은 지금 이 순간을 철저히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삼세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울러 한 공간을 차지하고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온 우주를 넘나들며 살고 있는 것이랍니다. 매 순간순간 삼매에 들어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무상 무아의 춤을 춰봅시다. 나의 결과로 당신이 있고, 당신이 원인이 되어 내가 있습니다. 당신과 나는 원인이며 결과입니다.


<마음 하나에 펼쳐진 우주>를 읽고 있습니다. 조금 알 것 같다가도, 다시 오리무중의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설명은 쉬운이해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더욱 지적 에너지를 자극하는 가 봅니다. 오늘 고전학교 공부는 어떠셨는지요? 재미있었나요? 무슨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글 한 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2006 11.8 산비


밤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윽고 아침이 밤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북반구 어디에 가면 하루 종일 하얀 밤인 백야가 있다고 하더이다 만은 그렇다고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은 붙잡아 둘 수가 없습니다. 이 시간의 흐름에서 변화가 발생합니다. 아무리 내가 그대로라고 주장해도 시간이 일초 흐른 뒤의 나는, 일초만큼 변화된 나입니다. 늙어진 나입니다. 그러나 그 일초 뒤의 나가 또한 나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자기 모습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라던 문구의 진리를 조금 해득하게 됩니다. 어느 것 하나 머묾 없이 변화하는 속에서도 제 모습을 가지고 있으니 변화가 바로 자기 정체성을 지켜주는 동인입니다.


욕망의 끝은 허무입니다. ‘나’가 있는 한, 나를 채우고자 하는 욕망이 끝없이 일어납니다. 답은 ‘나’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빈 마음으로 고요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이 빈 마음을 如意라고 합니다. 걸림 없이 펼쳐지는 온갖 생명들의 향연이 빈 마음자리인 여의에서 뜻대로 나툰 것, 그것이 화엄세계입니다.


진리와 화엄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안타깝기도 합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진리를 터득하기 위해서는 생사를 걸고 한번 매달려보아야 하겠으나 현실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아니 나 자신이 나약하고 비겁하기 때문이겠지요. 해인삼매의 지경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사람을 ‘能人’이라고 한 답니다. 능인이 되고 싶습니다. 이것도 욕망의 하나일까요?


내 나름대로 깨우친 수행의 방법은 이렀습니다. 쉼 없이 일어나는 백만 가지 잡생각을 우선 하나의 생각으로 모읍니다. 이를 위해서 화두가 필요합니다. 온 생각을 일념에 모읍니다. 이 한 가지 생각, 일념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가 일념마저 없애서 무념이 되는 것, 그것이 삼매가 아닐까요? 수도승들의 깨달음의 순간이 그러하고 마라토너들의 무아지경에 이르는 과정이 그러합니다. 그럼, 좋은 밤 되십시오.

2006 11.9 산비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한다. 어쩌면 우리도 헤어질 수 있겠구나. 연애라는 게 그런 거니까. 하지만 미리 두려워하지는 않겠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명백하다. 열심히 케이크를 굽고 열심히 사랑하는 것.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드라마 ‘삼순이’의 마지막 회를 장식했던 대사입니다. 지금 내가 할 일도 명백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책 읽고, 열심히 운동하고 그리고 열심히 사랑하는 것.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That's all.

하루를 삼등분하여 삼분의 일은 나의 미래를 위하여 일을 하고, 삼분의 일은 지금을 즐기기 위하여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명상하고 사유하며 과거를 반추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기. 이렇게 구성하면 하루가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루가 행복하지 못하면, 지금 현재 우울하고 괴로우면 내일도 행복하지 못할 것이고, 결국 평생을 울분과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마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오늘 하루가 행복할 수 있을까요? 앞에서 말한 대로 하루를 보람되고 충실하게 살아야 하며 거기에 더해서 필요한 것이 사랑입니다.


하루를 충실하게 살 수 있게 하는 에너지원이 바로 사랑입니다. 가슴 뛰는 설렘과 열정을 자아내는 원동력이 사랑입니다. 나에게 숨겨진 잠재력을 극대화시켜 뿜어내게 하는 힘이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삶의 의미는 반감됩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배우 안소니 퀸은 죽기 전 자서전에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삶에는 두 가지 비극적 요소가 있을 뿐이다. 인간은 잘못을 저지르는 법이라는 것, 그리고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는 것.”


삶에는 정말 하지 말았어야 할 잘못된 행동, 시작하지 않는 게 더 좋았을 아픈 사랑이 얼마나 많은지요. 하지만 그런 감정의 실수와 행동의 잘못을 모두 다 발라내고 실수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사는 인간에게 어떤 인생의 의미가 남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비극을 극복해내느냐, 좌절하고 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미쳐야 미친다>를 다시 꺼내어 읽어보았습니다. 허균과 매창 계랑의 이야기를 다시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매창이 정분을 나누었던 인물들이 나옵니다. 유희경, 이귀, 윤손 같은 이들.

허균도 그녀를 그리워하고 좋아하였지만 음란한 마음을 품지 않았고 그래서 오래 우정을 지속할 수 있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것이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길임을 다시 한번 새겨봅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2006 11.15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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