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세력을 점점 확장해 가고 있습니다. 해와 달이 힘겨루기의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밤이 힘을 다하는 날, 해는 다시 힘을 회복하고 낮의 길이를 늘려 나가겠지요.
<시와 그림으로 수놓은 소쇄원 사십팔경>을 완독하고 하지현 님의 <관계의 재구성>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정신과 의사답게 글이 논리적입니다. 중간중간 영화의 주인공들을 예로 들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해설해나가는 글이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공감’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글이 특히 재미있습니다. 공감을 한다는 것은 비용이 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남의 마음을 느끼기 위해서는 내 감정의 문을 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보이고 싶지 않은 마지노선 안쪽의 감정까지 노출되는 경우도 있어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는 것이지요.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만의 아픔이 드러나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 문을 될 수 있으면 걸어 잠근 채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내 방의 문을 두드려주기만을 바라며 외로움에 떱니다. 먼저 문을 살짝 열고 옆집 문을 두드려보는 시도, 그것이 공감으로 가는 첫 단계라고 하지현 님은 가르쳐줍니다.
책을 읽다 보면 나를 분석당한 것 같기도 하고,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당황스럽습니다. 아이를 심하게 야단친 뒤, 그것이 미안해 다음 날 장난감을 사주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랍니다. 그것은 아이와의 뒤틀린 관계를 회복하겠다는 의도보다는 자신의 후회스러움을 감추려는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자신은 장난감을 사줘서 마음이 편할지 몰라도 아이가 받은 상처는 그대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거치고 넘어가야 할 일을 건너뛰다 보면 언젠가는 그 일이 내 뒷덜미를 낚아채서 호되게 패대기칠 수 있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슬픈 일을 당했는데도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냥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와 버리는 것은 마음의 건강 측면에서 볼 때 좋지 않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자꾸만 매너리즘에 빠져드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고개를 흔들게 됩니다. 저를 좀 더 강하게 채찍질해주십시오.
2006 11.21 산비
“인간이 책을 멀리하면 정신세계를 찾을 수 없어 완전히 인생의 사막이 되고 만다. 우리는 책을 떠나지 않는 생활을 함으로써 풍요한 삶을 누리고, 올바른 길을 가고, 무언가 인류 사회에 공헌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 사람이 배우지 않는다면 사물의 도리를 깨닫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사람의 갈 길을 모르게 된다./ 안으로 어진 부형이 없고, 밖으로 엄한 사우(師友)가 없이 능히 성취한 자는 드물다.”
모두 명심보감에 나오는 글귀들입니다. 오늘은 버스를 타고 오며 ‘명심보감’ 몇 구절을 읽었습니다. 마음이 산란해지면 책을 읽으라고 합니다. 책 속에 진리가 있으며 독서는 우리를 바른 길로 이끄는 등불이기 때문이겠지요. 엄한 사우가 있어야 성취가 있다고 합니다. 저에게 좀 엄하게 대해 주십시오. 제가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심하게 꾸짖어 주시기 바랍니다. ‘지란지교’ ‘반포지교’의 우의를 나누고 싶습니다.
“당당하고 열정적으로 사랑하라. 사람을 사랑하고, 산을 사랑하고, 학문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저 푸른 나무 저 높은 하늘을 사랑하고, 그대들이 몸담고 있는 일상을 열렬히 사랑하라./ 먼지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재가 되겠다. 무덤덤하고 의미 없는 삶을 사는 것보다는 고통을 수반하더라도 찬란한 섬광 속에서 사랑의 불꽃을 한껏 태우는 삶이 더 나으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장영희
노을은 하루를 태우고 난 재이며, 낙엽은 가을을 불사르고 남은 재라고 합니다. 비록 고통이 따르더라도 의미 없는 먼지가 되기보다는 온몸을 불태우고 재가 되는 것이 더 나은 삶이라고 장영희 님은 말합니다. 현실 삶의 편안함에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취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보람 있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2006 11.22 당신의 사우 산비
하지현의 <관계의 재구성>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총 12 꼭지로 나누어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책의 각론에 해당하는 8장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사랑, 중년, 공감, 후회, 상실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어 더 관심이 갔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아이와 부모를 다룬 1장 ‘유년은 그 사람을 보여준다.’와 아버지와 아들을 다룬 2장 ‘높고 두꺼운 벽을 넘어서’를 오늘 읽었습니다.
책 속에 많은 영화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왔던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는 주인공 프랑크의 성장 과정을 통해 ‘신뢰’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핀치 드렁크 러브>에서는 ‘하얀 거짓말’에 관해서, 그리고 멧 데이먼과 로빈 윌리엄스가 나왔던 <굿 윌 헌팅>에서는 주인공의 정신 치료를 통해 우리가 성장하고 홀로 서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과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It's not your fault.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유명한 대사죠?
사람의 심리라는 것은 참으로 오묘하고 모순적입니다. 특히 어릴 적 상처 받거나 결핍된 사랑은 성장 과정 내내 영향을 끼칩니다. 누군가 자기가 만들어 놓은 철옹성의 틈을 찾아 들어와서 자신을 구출해주기를 바라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더 이상 남을 믿었다가 상처 받고 깨지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기에 결사적으로 항전하는 딜레마에 빠지고 맙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근본적 충동은 쾌락을 좇고 그것에 만족하려는 욕구라고 설명했고, 영국의 정신분석가 페어베언은 ‘인간이란 필요한 대상을 찾으려 노력하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원초적인 불안은 어머니와의 분리 문제에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인간은 믿고 소통할 수 있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것은 거꾸로 커다란 스트레스’라는 말이 흥미롭습니다. 맹인 인도견들의 경우 생후 4주부터 훈련을 받고 평생을 맹인들의 절대 신뢰의 대상이 되어 살아가는데 그들의 평균 수명은 다른 개들에 비해서 10년 이상 짧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다룬 2장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자는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스타 워즈>의 루크 스카이워크와 <해리 포터>를 인용합니다. <스타 워즈>라는 영화 보셨는지요? 1편부터 6편까지 나와 있지요. 사실 저는 SF라는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스타 워즈>는 워낙 유명한 영화였기에 몇 편은 보았는데, 인물관계가 워낙 복잡하고 난해하여 헛갈려하면서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아나킨 스카이워커, 다스베이더, 레이아 공주, 한 솔로, 요다, 파드메 공주 등등의 등장인물이 나와서 스토리를 이끌어갑니다. 하지현 님은 이 영화와 해리포터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아버지와 아들의 얽히고설킨 내면의 관계를 풀어나갑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자기가 왜 이렇게 이 문제에 집착하는지에 대해서 자신의 예를 들며 설명합니다.
전에도 말해드렸지만 그의 아버지가 유명한 영화감독 ‘하명중’씨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나이가 바로 자신이 이 책을 써서 발표한 지금의 나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이지만 우리의 인생사에 우연한 일이란 없다는 프로이트의 말로써 심중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누구나 반드시 아버지로부터 홀로 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나의 정체성이 확실해지면 내 안의 아버지는 나를 삼켜버리고 나를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드는 암적 존재가 아니라, 결국 내 안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일 용기가 생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번은 직면하고 부딪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마음속의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는 하나로 점차 통합되고 그 통합된 결과물은 서서히 내 안의 중요한 부분으로 융화된다. 그게 인간이 커가는 길이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성숙의 길 중 하나다.”
저에게도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엄청나게 미워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와 정면으로 부딪치고 나서 마음의 벽을 허물고 아버지를 내 안의 중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된 과정이 나에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할게요.
2006 11.24 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