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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비 Jan 03. 2019

돌로미테 알타비아 2

트레킹 2일 차 (7월 29일)

             

=> 계획 (18km/8hr) : 페데루 산장 - 파네스 산장(Rif Fanes 5km/2hr) - 점심(도시락) - 라가주오이 산장(Rif Lagazuoi  13km/6hr) 6pm 도착 

=> 실제 : 라가주오이 산장 저녁 7시 도착, 11시간 소요    


우리는 항상 합리성을 내세워 그럴만한 가치가 있고 이유가 있는 행동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때로는 말이 안 되는 일을 무모하게 밀어붙이기도 한다. 목숨을 걸고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삼천 미터의 거벽에 달라붙어 올라가려 안간힘을 쓴다. 왜 그럴까? 두려움과 떨림에 맞서는 강한 의지와 충동.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육체적 한계에 대한 시험. 그것이 우리 가슴을 펄떡이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불굴의 의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걸으려 한다.      

눈을 떴다. 새벽 5시다. 아직 살아있다. 목숨을 걸었다고 했지만, 목숨을 건다는 것은 또 얼마나 허무하고 맹랑한 일인가?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자! 테라스로 나가 상쾌한 새벽 공기를 흠씬 들이마셨다. 첫날의 무리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내 심장은 다행스럽게도 여전히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산 비길리오(San Vigillio) 마을 산책에 나섰다. 날은 밝았지만 마을은 아직 밤의 정적에 잠겨있다. 푸른 초원과 언덕 위에 그림 같은 집들이 늘어 선 전형적인 이탈리아의 산골 마을이다. 마을 광장엔 축제를 홍보하는 포스터가 붙어있고 작은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맛있는 아침 식사를 즐겼다. 빵과 치즈가 어찌나 맛있던지. 과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맛집이다. 미리 주문해 둔 런치 박스를 받아 들고 예약된 밴에 올랐다. 전날 좀 정신이 없었던 탓에 이제야 제대로 돌로미테 트레킹을 시작한다는 기분이 든다. 페데루 산장(Rif. Pederu, 1548m)에서 출발 전 스트레칭 체조를 하고 힘차게 파이팅을 외친 후 오늘의 걷기를 시작했다.    


- 트레킹의 진정한 맛과 멋 -    


오늘의 목적지인 라가주오이 산장(Rif. Lagazuoi, 2752m)까지는 어제에 이어 총 고도를 1700m나 올려야 하는 쉽지 않은 여정이다. 파네스 산장(Rif. Fanes, 2060m)까지는 그런대로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대개 오전의 오르막은 진행에 무리가 없다. 그러나 오후에 태양이 이글거리기 시작하면 지치고 목마르고 힘이 들었다. 다만 구름이 만들어내는 한 줌의 그늘과 한 줄기의 바람이 가끔씩 위안이 되어줄 뿐.     

알타비아 1 코스에는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다. 자전거 뒤에 유아용 트레일러를 달고 열심히 페달을 밟는 아빠의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인다. 일찍 도착한 대원들은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여유로운 모습이다. 두 시간 반 만에 파네스 산장에 도착했다.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였다. 이 회장님은 “트레킹의 진정한 맛과 멋이 바로 이런 거 아닙니까?”하며 연신 맥주 예찬을 늘어놓는다.     

산장을 뒤로하고 다시 오름 짓이 시작되었다. 리모 고개(Passo di Limo)를 넘어서면 작은 호수 하나가 나오고 이후에는 다시 걷기 좋은 길이 이어진다. 임도처럼 잘 다져진 길이 쭉 뻗은 걷기 좋은 구간이다. 돌로미테의 길 위에는 반려견을 동반한 트레커들도 많았다. 주인과 반려견의 호흡이 척척 맞는다. 반려견은 그들에게 이미 한 가족이자 대원이고 동료이다.     

오르막을 지난 후 넓게 펼쳐진 푸른 초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모두 둘러앉아 도시락을 펴니 피크닉 소풍을 나온 듯 색다른 기분이 든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자리를 깔고 누워 달콤한 오후의 휴식을 취했다. 비록 짧은 낮잠이었지만 무척이나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런 게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이 주는 하나의 낭만 같은 것 아닐까?

    

- 돌아오기에는 이미 너무 가버린 -    


이제 본격적인 오후 트레킹을 시작한다. 얼마 안 가 말들이 노니는 너른 초지가 나왔다. 돌로미테는 바위 산악지대이지만 사이사이 초지와 목장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종종 소와 말을 조우하게 된다. 말이 기품이 있고 자세가 늠름하다. 이후 계속되는 오르막 길. 작열하는 태양을 등에 지고 걷는 오후의 트레킹은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고개를 하나 넘을 때마다 자주 쉬는 시간을 가진다. 쉴 때에는 신발과 양말을 벗어 발을 말려주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면 걷는 일이 고통스러워진다.     

타데가 고개(Passo Tadega)를 넘고 갈림길을 지나 라가주오이 호수(Lago di Lagazuoi)가 내려다보이는 라고 고개(Forcella del Lago)에 올라섰다. 여기서 산장까지는 고도를 300m 정도 낮췄다가 다시 600m를 급격하게 올려야 한다. 내려가는 길의 경사도 만만치 않았지만 무엇보다 계곡 너머 저 멀리 언덕 위에 보이는 라가주오이 산장(Rif. Lagazuoi, 2752m)이 까마득해서 얼이 다 빠진다. ‘아! 저기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또 올라가야 한단 말이지...’     

자갈과 토사 때문에 미끄러운 내리막길을 조심조심 엉금엉금 내려온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다행히 호수까지 내려서지 않아도 되는 우회로가 바위 절벽 아래로 나있다. 아슬아슬한 절벽 길을 돌아 산비탈 사면 길을 걷는데 길이 다시 갈라진다. 왼쪽 길은 고도를 유지하며 사면 길을 걷다가 끝에서 합쳐지는(합쳐지는 것처럼 보이는) 길이고, 오른쪽은 널찍하지만 조금 더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가야 하는 길이다. 다른 대원들은 넓은 길을 택하고 주택 씨와 재일 씨는 모험 길로 들어섰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어드벤처 한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라가주오이 산장은 언덕 위에 빤히 보였지만 가도 가도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우보천리라지 않았나.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도착하겠지’ 마음을 다잡고 한 발 한 발 무겁게 발을 내디뎠다. 그러다가 슬슬 계곡 건너편 사면 길을 걷는 대원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쪽 편에서 보니 저쪽 길의 지세가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다. 자꾸만 정상 쪽으로 길이 올라가면서 이쪽과 점점 멀어졌다. 과연 길이 끝에서 이어지기는 한 것인지도 분명치가 않았다. 빨간 티를 꺼내 들어 흔들며 돌아올 것을 목이 터져라 외쳐본다. “돌아와, 돌아와~~” 그러나 돌아오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가버렸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군데군데 돌 위에 마크가 있어서 길이 있을 것만 같았다고 한다. 문제는 중간에 산사태로 길이 끊겨 있었다는 것. 개미를 유인하는 모래지옥처럼 자꾸만 미끄러지는 모래자갈 사면 길을 조심조심 통과해서 겨우 길을 찾아냈다고 한다. 이러다가 미끄러지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를 느꼈다고. 아무튼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다. 합류지점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고 생존의 기쁨을 나누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회상하지만 당시는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었었다.     


- 생애 최고의 풍경 -    


라가주오이 오르는 길에는 바위에 굴을 뚫은 참호들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호기심에 들어 가보니 눈앞에 바라보이는 경치가 장관이다. 건너편으로 친퀘 토리(Cinque Torri : 다섯 바위 봉우리)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그래서 이곳에 굴을 팠나 보다. 세계 1차 대전 당시 이곳 라가주오이 언덕은 오스트리아군이 진지를 구축하고 반대쪽 친퀘 토리에는 이탈리아군이 주둔해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마침내 라가주오이 산장(Rif. Lagazuoi,2752m)에 도착했다. 해발 2750 미터, 백두산보다 더 높은 고지이다. 알타비아 1 트레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산장이다. 산장 앞에는 넓은 전망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데크에서 바라본 산장 앞 풍경이 천하일경이다. 일망무제의 멋진 경치가 펼쳐진다.    

 


방 배정을 받고 3유로 코인으로 3분짜리 샤워를 즐겼다. 3분 만에 될까 싶었는데 비누칠 샤워 다하고도 오히려 시간이 남아돈다.  저녁은 역시나 진수성찬이었다. 따듯한 수프와 파스타, 고기, 감자가 기본으로 나왔다. 양뿐만 아니라 고기의 식감과 질도 우수하다.

식사를 마치고 산장 밖으로 저녁 산책을 나왔다. 이곳 유럽은 서머타임제가 적용되어 일몰이 늦다. 8시 반이 지나서야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사방이 첩첩이 산이다. 멀리 돌로미테의 최고봉, 마르몰라다(Marmoleda, 3343m) 산이 보인다. 근방에서 유일하게 만년설을 이고 있는 산이다. 황금빛 노을이 잦아들며 시나브로 보라색 어둠이 갈마든다.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윤 원장은 자기 생애 최고의 풍경이라며 여행 온 본전은 이제 모두 다 뽑았고 지금부터의 경치는 그냥 덤이고 보너스라고 흡족해한다.

어둠이 내려앉자 별이 뜨기 시작했다. 오늘도 스펙터클 했던 하루였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루하루가 모험의 연속이다. 신밧드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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