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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비 Jan 07. 2019

돌로미테 알타비아 4

트레킹 4일 차 (7월 31일)

=> 계획 (18km/8hr): 9시 출발 - Rif Averau 팀(직등)- Rif Nuvolau - Rif Passo Giau / B팀(우회) - 우회로 - Rif Passo Giau 11시 30분 집결, 점심 - Forcella Ambrizzola - Rif Citta di Fiume 4:30 pm - 스타우란자 산장(Rif Passo Staulanza) 5:30 pm 도착   

=> 실제 : 숙소 저녁 7시 도착, 10시간 소요    


여행을 하면서 며칠간 숙식을 같이 하다 보면 부딪침이 생긴다.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수가 틀리면 큰 싸움이 나기도 한다. 그럴 땐 살짝 피하기도 하고, 때론 웃어넘길 줄도 알아야 한다. 다름을 이해하고 견뎌야 관계가 깊어지고 넓어진다. 서로를 배려하는 희생정신, 그것이 그룹 트레킹의 생존법이다.

        

친퀘 토리(Cinque Torri) 산책에 나섰다. 간밤에 야외에서 시끌벅적하게 밥을 해 먹던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고 있다. 원래 돌로미테 지역에서는 취사와 야영이 금지라고 들었는데 이곳만 허용이 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장엄한 일출을 본다.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이 우리를 축복해주는 듯하다. 

이곳 친퀘 토리 지역에서도 라가주오이처럼 참호와 진지를 비롯한 군사 시설들을 볼 수 있다. 군인 마네킹으로 당시의 현장을 재현해놓았다. 좁은 협곡을 지나 친퀘 토리 뒤편으로 들어서자 두 아가씨가 열심히 바위를 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에서 연습을 한 뒤 바로 옆의 거대한 암벽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참이나 그곳에 머물며 신기한 암벽 타기를 구경했다.     


- 운명의 갈림길 -    


인생은 무수한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인생 A와 인생 B로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어떤 선택을 하던 내 기준에 따라 내 판단으로 결정을 했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은 가질 필요가 없다. 그 상황에서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테니까.      

산장으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출발을 서두른다. 오늘은 전체적으로 내리막이라(그런 줄로만 알았다.) 크게 힘든 구간은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바로 위의 아베라우 산장(Rif. Averau, 2413m)까지는 함께 동행하고 이후 누볼라우(Nuvolau, 2574m) 산 정상을 직등으로 넘어가는 A팀과 우회하는 B팀으로 팀을 나누었다. 각각 기념 촬영을 하고 각자의 길을 간다. 이것이 운명의 갈림길이었음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A팀이 가는 직등코스가 바위를 넘고 철 줄을 타는 다소 험한 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위험한 길인지는 정말로 알지 못했다. 가이드북에는 굵은 실선으로 보란 듯이 ‘알타비아 1’ 정규 코스로 표기되어 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간이 콩알만 해지도록 살벌했다고 한다. 도저히 등산로라고 할 수 없는 길이었다고. 후에 사진을 판독해보니 ‘Chiuso!’ 라고 등산로 폐쇄 표시가 되어 있는 곳이었다. 영어로 Closed라고 쓰여 있지 않고 이태리어로만 쓰여 있으니 알 수가 있나. 그러게 여행 전에 기본 이태리어 정도는 마스터하고 갔어야지. 쯧쯧.               

   

A팀에 댈 것은 아니었지만 B팀의 초반 경로도 만만치 않았다. 상당히 가파른 내리막 바위 길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거 우리가 A팀인 거 아니야?” 이러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하산 중에 프랑스에서 왔다는 예쁜 커플을 만나 기념사진을 남겼다. 그 구간을 통과한 이후에는 꽃길이었다. 산 아래 사면을 따라 예쁜 오솔길이 길게 이어졌다. 유독 반려견을 동반한 트레커들을 많이 만난 구간이기도 했다. “본 조르노” “차우”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여행은 만남이다. 먼 이국의 타인들이 낯선 곳에서 만나 조우의 기쁨을 나누는 행위. 그리하여 누군가를 기억하고 그리워하게 되는 것. 그것이 여행의 선물이고 보람이다. 몇 마디라도 이야기를 나눈 친구들은 가급적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려 노력했다. 훗날 분명 오늘을 추억하며 그리워할 날이 있으리라.    

 

삶은 단계,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초능력을 써서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곳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 온 수많은 도시와 산과 강과 길들. 그리고 앞으로 거쳐 갈 수많은 사람과 관계와 인연들. 그런 과정과 수련과 절차를 통해 삶은 완성된다.      

지아우 산장(Rif. Passo Giau, 2236m)이 저 아래 보이기 시작했다. A팀과 만나서 점심을 같이 먹기로 약속한 산장이다. 처음 생각에는 A팀이 먼저 도착해서 기다릴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폐쇄된 등산로에서 진땀을 뺀  A팀은 B팀이 도착하고도 40분이 더 지나서야 모습을 나타냈다. 주택 씨 왈! “이런 길인 줄 알고 보낸 겨?” “나도 몰랐지.. 하하”    

먼저 도착한 B팀은 우선 맥주부터 한잔씩 하고 전날 세탁 후 덜 마른 젖은 옷가지들을 햇볕에 널어 말렸다. 그 사이 뒤늦게 도착한 A팀 대원들이 볼이 상기된 채 입에 거품을 물고 누볼라우 전투 무용담을 풀어놓는다. 다들 맛이 간 얼굴이다. 점심을 먹은 후에 A팀은 모두 바닥에 드러눕고 말았다. 고생들이 심했던 모양이다.    

    

-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    


밭을 갈던 농부가 급하게 달려오다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은 토끼를 보고, 다음날부터 밭일은 하지 않고 토끼가 와서 죽기만을 기다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자신의 본업은 제쳐두고 요행만을 바라는 어리석음을 탓하는 말이다. 운이 좋아 무엇을 얻었다 해서 그 운이 또 따라주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행운은 내 할 일을 다 한 연후에 ‘진인사대천명’의 마음으로 기다려야 온다.     

기념사진을 남기고 지아우 산장을 떠난다. 길을 걸으며 뒤돌아 본 누볼라우 산의 풍경이 가히 절경이다. 돌로미테 홍보 포스터에 나오는 바로 그 풍광이다. 초반에는 걷기 좋은 길이 한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가이드북 약도대로 길이 계속 내리막이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지아우 고개(Forcella Giau, 2360m)와 암브리졸라 고개(Forcella Ambrizola, 2277m)를 넘을 때는 제법 힘을 써야 했다. 고개 마루에 올라설 때마다 웃옷을 벗은 채 풍욕을 즐기며 휴식을 취했다. 고개 밑에서 불어오는 골바람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코르티나 담페초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암브리졸라 고개를 넘어 계속 전진이다. 한 고개를 넘으면 또 한 고개가 있고 그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고개가 나온다. 저 고개 넘으면 이제 진짜로 하산하는 길이겠지? 기대해보지만 역시나 고갯길이 떡 버티고 있다. 누가 오늘은 내리막뿐일 거라고 했나? 가이드북의 고도표를 확 찢어버리고 싶다.    

서서히 지쳐갈 무렵 드디어 피우메 산장(Rif. Citta di Fiume, 1917m)이 저 아래 구세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피우메 산장이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지점부터는 진짜 오르막이 없다는 사실이 지친 심신에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또 한 번 방심하는 바람에 편한 산길을 놓치고 차들이 씽씽 지나다니는 오르막 도로를 힘겹게 걸어야만 했다. 누굴 탓하랴!      

피우메 산장에는 한 무리의 학생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산장을 지나 내려가면서는 우리와 섞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길을 걸었다. 역시 젊음은 좋은 것이여! 시끌벅적 에너지가 철철 흘러넘친다. 30명쯤 되는 그룹으로 밀라노의 어느 교회에서 온 학생들이라고 한다. 10일간의 일정으로 국토순례를 하고 있다고. 오늘이 벌써 6일 째라고 한다. 아퀼리오 산장(Rif. Aquileia)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서로의 행운을 빌며 우리와 헤어졌다.

    

행운의 약발이 약했던 것일까? 느닷없이 마주친 아스팔트 도로. “여기가 어디여?” 책을 꺼내 약도를 본다. “아이고, 어먼 데로 와 부렀네.” 오늘의 숙소인 스타우란자 산장(Rif. Staulanza, 1766m)까지는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다시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제길 이런 낭패가.     


할 수 없다. 걸을 수밖에. 도로를 걷는다.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지친 상태다. 앞뒤 안 가리고 히치하이킹을 시도해본다. 다행히 이탈리아 노인 두 분이 탄 경차 한 대가 멈춰 섰다. 브라보! 그런데 두 명 밖에 탈 수 없단다. 그나마 체력이 남은 재일 씨와 윤 원장이 어서 먼저 가라며 양보해준다. 땡큐~     

우여곡절 끝에 산장 저녁 테이블에 모두 모여 앉았다. 오늘도 참 스펙터클한 하루였다. 매일매일이 모험이고 도전이다. 하루도 그냥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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