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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비 Jan 09. 2019

돌로미테 알타비아 6

트레킹 6일 차 (8월 2일)

=> 계획 (20km/8hr) : Rif Passo Duran - Rif pramperet 12시 점심 - 폰타나 산장(Rif Pian de Fontana ) 5pm 도착

=> 실제 : 숙소에 저녁 6시 30분 도착, 10시간 30분 소요    


‘오래된 새 길’ 언제나 그곳에 있지만 늘 새로움을 느끼게 하는, 익숙하지만 호기심을 일으키는, 편안하지만 긴장을 잃지 않는, 계속해서 알아가고 싶은, 그런 관계를 위해서는 의식의 소통, 마음의 교류가 필요하다. 경험을 공유하고 감성과 감성이 연결되는 통로, 바로 길 위에 답이 있다.     

   

어제 힘들었던 탓인지 6시가 다 되어 겨우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아침 산책을 생략한다. 아침 먹고 바로 출발이다. 오늘도 족히 10시간은 걸어야 할 것 같다. 40분 정도 내리막길을 걸어 파소 두란(Passo Duran, 1601m)에 도착했다. 일반적인 알타비아 1 트레커들은 이 곳 파소 두란에서 대부분 트레킹을 끝마친다. 산장도 있고 도로가 접해있어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영국의 씨서원(Cicerone) 출판사에서 발행한 가이드북에 제시된 종착점, 라 피사(La Pisa)까지 종주할 계획이다. 원칙적으로는 벨루노(Belluno, 370m) 시까지 산길이 이어지지만 그 구간은 조금 험해서 전문 장비가 있어야 갈 수 있다고 한다.         


- 오늘 안에는 들어가겠지 -    


파소 두란에서는 1km쯤 도로를 따르다가 산길로 연결되었다. 도로 위에서 독일 쾰른에서 왔다는 청년 한 명을 만났다. 나이는 20세. 교육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이다. 혼자 왔다 길래 부모님이 흔쾌히 가라고 하더냐고 물었더니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결국 허락을 해주셨다고 한다. 그것이 이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일 거라고 답해주었다.   

  

다시 오르막이다. 점심을 먹을 프람페렛 산장(Rif. Pramperet, 1857m)까지는 550m 정도 고도를 높여야 한다. 그러려니. 웅장하게 펼쳐지는 암봉과 멋진 초원에도 이제 시큰둥하다. 초장에 워낙 센 경치들을 많이 본 탓에 웬만한 풍경에는 이제 별 감동이 없다. 사실 바위산 자체는 저마다 국가대표 급이다. 자리만 잘 잡았으면 대우받았을 봉우리들인데 어찌 이리 외진 곳에 위치해서 천대를 받나.

    

다가레이 고개(Forcella Dagarei), 라르가 고개(Forcella Larga), 모스케신 고개(Forcella del Moschesin). 고개도 많다. 산 넘고 물 건너 겨우 프람페렛 산장에 도착했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대학 동기인 윤 원장이 옆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점심을 먹고 바로 일어섰다. 오후에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서둘러야 한다. 아니나 산장을 나오자마자 또 알바다. 하마터면 반대쪽으로 갈 뻔했다. 다행히 눈썰미 좋은 백골부대 수색대대 출신 재일 씨의 날카로운 지적으로 제대로 된 길을 찾는다. 오늘의 숙소인 폰타나 산장까지는 여기서 500m를 더 올렸다가 다시 700m 정도를 내려야 한다. ‘오늘 안에는 들어가겠지.’      


- 이 또한 지나가리니 -    


우리는 대개 효율과 결과에만 집중하며 살아간다. 완성되어가는 과정보다는 완성된 결과물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여행을 떠난 순간부터 그 모든 여정들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듯이, 목적은 행위 안에 존재하며, 행위 자체가 그대로 목적이 된다. 사랑도 그렇다. 사랑은 목적이 없으며 사랑하는 행위 그대로가 결과물이다. 비록 사랑이 완성에 다다르지 못하더라도 사랑했으므로 행복한 것이다. 길을 걷는 그 자체로 우리가 행복한 것처럼.    

처음 며칠 어깨를 짓누르던 배낭은 이제 내 몸과 물아일체가 되었다. 더 이상의 거부감이 없다. 그새 수양이 된 덕일까? 마음이 평온하다. 이제 서로 말을 안 해도 서로 간에 호흡이 척척 맞는다. 쉴 곳에서는 함께 쉬고 쉴 만큼 쉰 뒤에는 누구랄 것도 없이 함께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사달은 피아제델 고개(Portela del Piazedel,2097m)를 넘어 지타 수드 고개(Forcella de Zita Sud,2450m) 마루에 올라설 때 일어나고 말았다. 그 파랗던 하늘이 순식간에 먹구름으로 뒤덮이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엄청 참아왔던 돌로미테의 뇌우가 마지막 작별 인사라도 하려는 듯 으르렁거리며 비를 뿌려댔다. 깊이 넣어두었던 레인 코트와 방수 바지를 꺼내 입고 신발 위에 스패츠를 장착했다. ‘결국 써먹게 되는 군.’    

순간적으로 운무에 휩싸이면서 가시거리가 50m도 나오지 않았다. 바로 옆에 있는 재일 씨 외에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흩어지면 안 되는데...’ 이름을 외쳐본다. 주택 씨는 왼편에서 대답하고 성철님 목소리는 오른편에서 들려왔다. ‘헐. 어떻게 된 거지’ “모여서 갑시다.” “흩어지면 위험합니다.”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공허하게 허공을 떠돈다. 급하게 산마루에서 하산했다. 빗줄기가 가늘어지며 드디어 동료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떻게 된 겨? 대장만 두고 그렇게 가버려도 되는 겨?” 성철님 왈 “일단 정상부는 벼락이 내리칠 위험이 있으니 최대한 신속하게 하산하는 게 맞는 거지” “그런다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립니까?”    

비가 그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휴식 시간을 갖는다. 모험적이고 도전적이었던 이번 트레킹도 이제 오늘 밤만 지나면 끝이다. 먼 산을 바라보며 깊은 감회에 젖는다. 터널의 입구가 있으면 출구도 반드시 있는 법.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일일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이 또한 지나가리니.     


- 어제의 일들이 먼 옛날 기억처럼 -    


이후 폰타나 산장까지는 아주 가파른 내리막길이었다. 코스를 거꾸로 해서 길을 걷는다면 무척이나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산장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방을 배정받았다. 이곳 산장은 독특하게 식당 건물과 숙소 건물이 별채로 떨어져 있다. 샤워는 무료이지만 핫 샤워는 안 되고 찬물 샤워만 된단다. 후덜덜. 다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전투적으로 샤워를 끝냈다.     

식당에 모여 돌로미테에서의 마지막 저녁 만찬을 즐겼다. 산장 식구들이 친절해서 아주 정감이 간다. 음식 맛도 일품이다. 맥주와 와인을 기울이며 트레킹을 모두 무사히 마치게 된 것을 서로 축하했다. 물론 하루가 더 남아있기는 했지만.     

식사를 마치고는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소감을 나누었다. 총무와 부대장을 맡아 돈 관리와 실무를 책임진 주택 씨의 노고를 치하했다. 완벽한(?) 예약과 크레이지(?) 플랜을 설계한 대장에게는 찬사와 악담이 함께 쏟아졌다. 기대 이상의 괴력을 보여준 성철님도, 분위기 메이커 재일 씨와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본 의무 반장 윤 원장도 수고가 정말 많았다. 모두 모두 대단한 의지와 열정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야기를 듣다가 눈물이 날 뻔했다.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취기도 오르고. 와인 잔을 들고 식당 밖 야외 테이블로 나왔다. 이태리 하우스 와인을 홀짝홀짝 기울이며 못다 한 무용담을 나누었다. 어제 그제 일들이 벌써 먼 옛날 기억처럼 아스라했다. 한 명이 운을 띄우면 다른 이가 받아치고 여기에 맞서는 반박이 이어졌다. 누군가 치기 어린 흰소리를 할 때마다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유쾌한 밤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우리들의 여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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