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이슬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
언어는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때와 장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의존체라고 합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형식에 따라 때로는 우유가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합니다. 사리를 판단하고, 입장을 분별하여 말을 시의적절하게 구사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유한하고 짧은 인생에서 자극을 줄 수 있고 새로운 가치를 열어 주며,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비춰 보는 거울이 될 수 있는 예술은 좋은 예술이다.”
예술이 없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삭막했을까요? 예술은 삶과 자연이, 우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게 해 줍니다. 우리가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것들을 일깨우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째서 아름다운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표현해줍니다.
아름다움이란 지고의 가치입니다.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자전거, 보도블록, 가로수, 예쁜 차, 들꽃, 지우개, 연필 같은 사소한 것들에도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너무 모르고 그저 덤덤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아름다움을 연구하는 미학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우리 삶은 아름다움을 찾아 방황하는 끝없는 여정이 아닌가 합니다.
2008 1.10 산비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정복한 뉴질랜드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가 며칠 전 향년 88세의 나이로 타계했다는 소식입니다. 그가 추앙받는 이유는 그의 빛나는 업적 때문이 아니라, 그의 겸손하고 이타적인 자세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네팔을 120번 넘게 오가며 그의 정신적 고향인 네팔을 돕는데 일생을 바쳤습니다. ‘히말라얀 트러스트’란 단체를 설립하여 헌신적으로 활동하였고 그의 노력으로 네팔에 많은 학교와 병원, 비행장들이 들어섰다고 합니다. 전에 정희재 님의 책 속에서 힐러리의 이름이 들어간 학교 이야기를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자기가 가진 능력을 나를 위해서만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베푸는 배려의 마음, 자비의 마음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삶은 고독과 갈등의 경전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몸을 받을 때부터 고독의 의복을 입고 태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고독의 정면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고독의 시간이라야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를 만날 수 있고, 그때 참회와 기도가 생겨나게 되지만...”
릴케는 “고독은 비와도 같은 것”이며,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같은 잠자리에서 함께 잠을 이루어야 할 때처럼 흔하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현대인들은 많은 사람들과 혹은 많은 사물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지만, 어느 순간 자기 혼자 내버려진 것 같은 쓸쓸함을 느끼곤 합니다.
고독은 그렇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아와 나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하지만, 고독을 긍정하고 관조의 마음을 갖는 순간, 고독은 자기 성찰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고독은 나를 진정으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며, 너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하는 시간입니다. 고독을 즐깁시다.
2008 1.16 산비
“여백은 형태도 없고, 경계도 없으며, 만지거나, 보거나 쉽게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뿐만 아니라 물질과 정신, 나와 타자, 안과 밖, 중심과 주변과의 관계를 통해서 끊임없이 확장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고 다양하게 작용한다. 여기에서 여백의 공간을 미학적 특성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각자의 내적 경험이나 지식 정보의 수준에 따라 달리 수용된다. 여백은 이러한 상상력의 힘을 자극하고 발전시키고 창조자와 수용자 사이에서 다양한 울림을 던져 준다. 여백은 열린 가능성의 공간이자 관람자가 참여할 수 있는 적극적인 해석과 재창조의 공간인 셈이다.”
노자는 비워야 채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여백이 갖는 미덕입니다. 채우도록 비워두는 것. 여백을 어떻게 해석하고 채울 것인가는 각자의 몫입니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상력입니다. 상상력은 그동안 쌓아 온 체험과 독서의 양에서 비롯됩니다. 축적된 지식과 체험이 상상의 힘을 배가시킵니다. 상상의 힘으로 채워진 여백은 다시 새로운 상상을 자극합니다.
채워진 것은 비워져야 합니다. 새로운 채움을 위해, 지난 것들은 정리되고 축약되어야 합니다. 머릿속에 꾸역꾸역 집어넣어 복잡하게 얽혀있는 지식들. 방만하게 널려있는 지식의 조각들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 원리를 찾아내야 합니다.
깊게 사유하고, 관조하면 어느 순간 번득 모든 것을 통찰하게 됩니다. 관계가 없어 보이던 것들의 인과와 선후가 뚜렷해지고, 지식 조각들은 퍼즐 맞춰지듯 조립이 됩니다. 방만하게 퍼져 뇌를 채우고 있던 지식공간이 한 개의 초소형 칩으로 축약됩니다. 그렇게 정리되는 과정을 거쳐야만 우리는 새로운 것들로 다시 우리 뇌를 채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삶은 결국 비움과 채움의 반복입니다.
2008 1.17 산비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등산 용어 중에 ‘러셀’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눈이 많이 내려 길을 덮어버렸을 때 선두에 선 사람이 눈밭을 헤치며 길을 뚫고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체력적으로도 힘이 드는 일일 뿐만 아니라 길을 잘 모르는 사람이 러셀을 시도했을 경우, 길을 잃고 헤매는 위험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늘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한 사람이 떠났는데, 서울이 텅 비었다.”
문정희 시인의 <기억>이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극명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은 나의 전부와도 같으므로 그 사람이 가고 없는 이곳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는 텅 빈 공간이 되어버립니다. 텅 비었다는 말에는 얼마나 무거운 고독과 외로움과 비참함이 스며있습니까? 한 사람이 떠나가서 텅 빈. 그래서 무거운.
날씨가 풀릴 거라는 데 아직은 추운 날씨입니다.
오늘은 푹 쉬시면서 운기조식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2008 1.19 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