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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비 Mar 15. 2019

허락해서는 안 되는 데 허락하는 것은

                        

건축가 서현의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를 읽었습니다.


건물은 용도에 맞는 얼굴과 동선을 갖추어야 합니다. 백화점을 설계하는 건축가는 뭔가 신나는 일이 있을 것만 같은, 들뜬 시장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건물의 공간을 지나면서 느끼게 될 감정을 고려해야 합니다.


건축가는 작곡가가 음표를 늘어놓듯이, 공간이라는 악보에 크레센도와 디크레센도의 악상 기호를 붙이면서 변화를 줍니다. 서현 님은 움직임에 따른 공간의 전개야말로 건축에서 가장 즐겁고 흥미 있게 음미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강조합니다.    


건물에는 건축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느껴야 하고, 들어야 합니다. 이야기는 직설적으로 드러나 있기도 하고, 은유적으로 숨겨져 있기도 합니다. 빛에 의한 그림자가 생겨야 비로소 의미를 드러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건물과 건물이 모이면 도시가 됩니다. 도시는 정치, 경제 등 사회의 의지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서 모양을 갖춰나갑니다. 길의 형태나 사람들의 이동 동선이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권위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가시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건축이 이용되기도 합니다. 공공건물들이 그렇습니다. 군림하려는 의지들이 건물을 통해 드러나곤 하지요.    


“옷감의 크기와 옷값이, 책의 두께와 책값이 비례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문화로서의 건축이 제대로 자리를 잡는다.”는 말이 날카롭습니다. 단지 돈을 많이 들였다고 해서 좋은 건물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공간은 단지 바라보기 위한 대상이 아니다.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과 생활 그리고 그 사회의 부대낌, 사회가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을 담는 그릇이 된다. 이리하여 건축은 건축가가 공간으로 표현하는 시대정신이 되는 것이다.” 구체적인 삶의 모습과 시대정신이 담긴 건물이 좋은 건물입니다.    


2007 12.12    산비       


 

“21세기의 핵심 가치는 ‘재미’다. 21세기는 지금 행복한 사람이 나중에도 행복하다. 지금 사는 게 재미있는 사람이 나중에도 재미있게 살 수 있다. 노동기반 사회의 핵심원리가 근면, 성실이라면, 지식기반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원리는 재미다. 새로운 지식은 재미있을 때만 생겨난다.” - 김정운    


인간은 재미있게 살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사는 게 재미있고, 일하는 게 재미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기뻐 즐거워 어쩔 줄 모르는 축제적 삶이 우리의 미래를 구원해준다고 합니다. 가슴 벅찬 감동의 예술적 경험이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애이불비哀而不悲  낙이불음樂而不淫

“슬퍼하되 비탄에 빠지지 말고, 즐거워도 도를 넘으면 안 된다.”    


“즐거움은 괴로움에서 나온다. 괴로움은 즐거움의 뿌리다.

괴로움은 즐거움에서 나온다. 즐거움은 괴로움의 씨앗이다.” - 정약용    


늘 의문이 가는 주제입니다. 즐거울 때 웃음이 터져 나오고, 슬플 땐 눈물이 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그 마음을 억압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도를 넘지 말라는 것에서 ‘도’란 과연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일까요?     


즐거울 땐 기꺼이 흥겨워하고, 괴로울 땐 그 괴로움으로 몸서리치게 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즐거운 순간 닥쳐올 괴로움을 대비하고, 괴로움 속에서도 다가올 즐거움을 상상하는 것은 역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 세상 현실 삶에는 순리보다 역리가 더 빛날 때가 있습니다. 순리와 역리가 뒤섞여있습니다. 어떤 게 순리이고, 역리인지 구별이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아! 지혜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요.    


2007 12.14     산비        



“배추는 성질이 오줌을 좋아하고, 마늘은 닭똥을 즐긴다. 벼는 물을 좋아하나, 기장은 마른땅을 기뻐한다. 무릇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얻으면 싹이 트고 우거져서 번성하며 곱다.” - 정약용  

  

사람마다 각자가 좋아하는 기호와 성품이 다릅니다. 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산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물을 좋아하므로 당신도 좋아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산이 좋아서, 참 좋더라고 권할 수는 있지만, 왜 산에 안 가느냐고 화를 낼 수는 없습니다.    


미술에 몰두하는 사람도 있고, 음악에 몰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학문의 길에 천착하는 사람도 있고, 학문과는 담을 쌓은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길이 옳은 길이라고 말할  없습니다. 각자에겐 각자가 걸어가야만 하는 길이 있습니다.    


자신의 길을 걸어갈 때 우리의 삶은 빛이 납니다. 자신이 원하는 길이라면, 어떤 시련과 고통이 따르더라도 기꺼이 인내하고 견뎌낼 수 있습니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지, 내 영혼에 울림을 주는 일은 어떤 것인지, 아무리 힘들어도 나를 지치지 않게 끌어당기는 힘의 원동력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2007 12.15     산비        



“허락해서는 안 되는데 허락하는 것은 잘못이 오히려 내게 있지만, 배척해서는 안 될 때 배척하는 것은 해로움이 장차 남에게 미친다.” - 정약용    


은혜와 원한은 한마디 말 때문에 생기고, 화와 복은 한 글자로 인해 야기된다는 말도 하고 있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삼가 행동해야 함을 뜻하는 것이겠지요.    


허락해야 하는 일과 배척해야 하는 일, 허락해서는 안 되는 일과 배척해서는 안 되는 일을 지혜롭게 구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생각 없이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 말이 누군가에게는 비수로 꽂힐 수가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도 살펴 해됨이 없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말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나를 붙들고 있는 건 슬픔의 색깔이다. 슬픔으로 지금까지의 삶을 그나마 지탱해왔다면 이해가 좀 더 쉬울까. 내 마음은 슬픔의 냄새와 슬픔의 색으로 가득 들어차 있어 뚱뚱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본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슬픔이 맞다. 약 기운 같은 슬픔. 말갛고 탁한, 흰색에 가까운 액체를 뚝뚝 흘려 모으다가 어느 날 그것들을 치우고 그 자리를 말리는 일이 내가 사는 방식이었다면 이해가 쉬울까.”    


“질기고 강렬한 슬픔의 유전자 때문에 모든 사물을 슬프게 읽고 슬프게 받아들이며 겨우겨우 아슬아슬하게나마 슬픔으로 이뤄진 세계를 지키는 것, 그것이 ‘나’라는 사람의 대부분이다. 그 슬픔이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다. 그 슬픔을 받아들인 적 없는데 그 슬픔은 이미 한 사람을 정복하고 있는 것뿐. 슬픔 때문에 난 곤하지 않았고 외롭지도 않았고 유랑할 수 있었다.” - 이병률    


마음의 본성이 슬픔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가만있으면 괜스레 슬퍼집니다. 슬픔이 무겁게 내려앉아 목을 짓누릅니다. 숨이 막히고, 속이 뒤집힙니다. 어쩌면 슬픔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달리고, 산에 오르고, 책에 탐닉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슬픔이 싫고 무섭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슬픔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쳐도 슬픔은 하늘을 선회하며 늘 기회만 엿보고 있다가 어느새 나를 덮쳐 듭니다.     


파이 이야기의 호랑이처럼 어쩌면 우리는 슬픔이 있어 지금까지 쓰러지지 않고 지탱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병률 시인이 끝없이 밀려오는 슬픔을 치우고 말리면서 생을 이어가는 것처럼. 슬픔에 젖어있는 것이 싫어 차라리 유랑을 택합니다. 걷고 있는 동안만큼은 슬픔을 삭일 수 있겠기에.    

 

슬픔을 완전히 삭이면 기쁨이 되기도 합니다. 눈물을 함박 흘리고 나면 마음이 정화되는 것처럼. 마음이 진정되고 평안이 찾아옵니다. 해탈과 관조의 마음이 생깁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더 이상 잃을 것도 고, 무엇을 더 바라지도 않게 됩니다.


나는 이제 슬픔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즐겨보려 합니다. 슬픔이 밀려오면 오는 대로, 밀려가면 가는 대로 그렇게 살아가렵니다.    


2007 12.19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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