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by 산비


“정말 무서운 것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용납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워하면서 다른 사람은 끝도 없이 이상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계속해서 읽었고 월간 잡지 <MOUNTAIN>을 짬짬이 읽었습니다. 잡지에 실린 여러 칼럼 중에서 좋은 문구들을 뽑아서 소개해드립니다.

“언젠가는 마침내 평온에 이르기 위해서 너의 세상을 좁히고, 너의 영혼을 단순화하지 말고, 더욱 많은 세계를, 결국은 이 세계 전체를 너의 고통스럽게 확장된 영혼에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부처를 비롯한 모든 위대한 인간들은 모두 이 길을 걸었다. 어떤 이는 깨닫고서 어떤 이는 깨닫지 못한 채 자기가 갈 수 있는 데까지 걸어갔던 것이다.” -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 중에서


“당신이 선조들에게 가르쳐 준 지혜를 나 또한 배우게 하시고 나뭇잎과 돌 틈에 감춰둔 교훈을 깨닫게 하소서. 다른 형제들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똑바른 눈으로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그리하여 저 노을이 지듯 내 목숨이 다할 때 내 혼이 부끄럼 없이 당신 품 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 주소서.” - 황량한 대지와 더불어 사는 법을 깨우친 마지막 인디언 부족이 자연을 향해 올렸던 기도문 중에서


“나의 성찰에 의해 내 의지로 내가 행한 행위라야 내 삶일 수 있다.” - 이덕호의 <칠순에 이룬 백두대간 종주 산행기> 중에서


산에 대해 써놓은 글과 사진들을 보면서 손과 발에 힘이 들어갑니다. 당장이라도 산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덕호 옹이 말하기를 결국은 본인 스스로 성찰하고 본인의 의지에 의해 직접 한 행위라야 진정한 자신의 삶이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점은 누구보다도 프로네 님이 절절이 터득한 바고, 실천하고 있는 바이지요. 더욱 정진하시기를 바랍니다.


2006 5.19 산비


“생각하는 사람은 사랑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냥 사랑을 한다. / 내 정신은 사태의 주도권을 육체에 이양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내 관심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은 키스 자체가 아니라 키스에 대한 생각이었다. / 자신이 다른 사람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만큼 기쁘면서도 무시무시한 일은 드물다.”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둘 다 똑같은 의존적 요구들을 공유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애초에 우리는 그 요구 때문에 상대에게 끌렸다. 우리 내부에 부족한 것이 없다면 우리는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 사랑은 단순히 방향일 뿐이며, 바라는 것을 붙잡고 나면 그 이상 바랄 수가 없다. 따라서 사랑은 충족이 되면 스스로 타 사라지고, 욕망의 대상을 소유하면 욕망은 꺼진다.”


“성숙한 사랑의 이야기에서는 첫눈에 반하는 일이 없다. 자신이 뛰어드는 물이 얼마나 깊은지 알고 나서야 그 물에 빠진다. / 모든 사랑의 이야기에는 이런 순간들이 있지 않을까? 자신의 생각이 반영되기를 기대하면서 상대의 눈을 찾지만, 결국은 희비극적인 불일치로 끝나버리는 순간.”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기초로 해서만 생길 수 있다.” - 스탕달

“사랑에는 우리를 피해서 달아나는 것을 미친 듯이 쫒아가는 욕망밖에 없다.” - 몽테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있습니다. 남녀 간의 일상적이고 통속적인 사랑이야기를 심리학과 철학자들, 스탕달과 몽테뉴, 마르크스를 거론하며 풀어나가는 솜씨가 일품입니다. 이 책이 알랭 드 보통의 데뷔작이라 하는데, 어떻게 스물다섯의 나이에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토록 깊은 통찰력을 가질 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2006 5.23 산비



“가장 사랑하기 쉬운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상대를 마음대로 살게 해주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요소들이 서로 상응할 때에만 대상이 적절한 균형을 통해서 역동적 고요와 자기 완결성을 지닐 수 있다. / 두 앞니 사이의 틈을 이상적인 배열로부터의 불쾌한 일탈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치아의 완벽성을 독창적으로 그리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재배치한 것으로 보았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본질적인 평범함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 광기를 드러낸다. / 나는 몸 때문에 클로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본질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해 주었기 때문에 그 몸을 사랑했다.”


“우리는 침묵의 시간을 가지는 모험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제 편집증적인 수다쟁이들, 고요가 배신을 낳을까 봐 대화를 중단하기를 꺼리는 수다쟁이들이 아니었다. 우리는 상대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으며...”


서로 친밀해지면 더 이상 상대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눈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한 가식적인 언행을 안 해도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며 결코 예의를 저버리라는 말은 아닙니다.


책이 참 재미있습니다. 그냥 통속적인 소설이 아니라 ‘사랑’에 대해서 ‘관계’에 대해서 해체하고 관조하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사람의 심리 상태를 은밀히 들여다보는 관음적인 재미와 흥미가 있습니다. 다른 곳에 소개된 글을 읽어보니 ‘알랭 드 보통’은 인간 심리를 꿰뚫는 감각적인 문체로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스위스 출신 작가라고 나와 있습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우리는 사랑일까>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과 함께 알랭이 쓴 사랑과 인간관계 시리즈 3부작이라는군요. 빨리 읽고 빌려드릴게요. 그럼.

2006 5.24 산비



“클로이에 대한 내 사랑이 그 순간의 나의 자아의 본질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이 끝난다는 것은 다름 아닌 내 일부의 죽음을 의미한다. /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기 방에 혼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


“상대방에게 무엇 때문에 나를 사랑하게 되었느냐고 묻지 않는 것은 예의에 속한다. 어떤 면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다. 속성이나 특질을 넘어선 존재론적 지위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눈 색깔이나 다리의 길이나 수표책의 두께 때문이 아니라 네 영혼의 깊이 때문이다. / 나는 주어진 이름을 가진 너를 발견했다. 그러나 나는 너에게 새로운 이름을 줌으로써, 너라는 존재가 나에게 주는 의미와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 사이의 차이를 표시하고자 한다.”


“경험이란 무엇인가? 정중한 일상을 부수고 짧은 시간 동안 고양된 감수성으로 새로움, 위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을 목격하는 것이다. / 우리가 함께 했던 것들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어. 사랑을 할 때 중요한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야. 느끼는 것과 하는 일이 모두 강렬해진다는 것이 중요한 거지. / 사랑이 없다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산다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영혼은 낙타의 속도로 움직인다. 우리는 시간표가 꽉 짜인 현재의 무자비한 역학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가지만, 마음의 자리인 영혼은 기억의 무게에 힘겨워하며 느릿느릿 뒤따라온다. / 성숙한 사랑은 절제로 가득하며, 이상화에 저항하며, 질투, 매저키즘, 강박에서 자유로우며, 성적 차원을 갖춘 우정의 한 형태이며, 유쾌하고, 평화롭고, 상호적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 있습니다. 사랑이 절정을 지나 종말로 접어들면서 필연적으로 이별을 맞습니다. 이별을 선고받은 주인공의 처절한 심정을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선택이 없는 곳에는 비난도 없다고 합니다. 당나귀가 노래를 못한다고 해서 당나귀에게 화를 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당나귀는 콧김을 뿜는 것밖에는 할 수 없으므로. 어떤 사람이 사랑을 한다거나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에서 차이는 것은 노래를 못하는 당나귀보다 견기기 힘든 일입니다. 당나귀는 원래부터 노래를 부를 줄 모르지만, 나에게 퇴짜를 놓은 사람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를 사랑한다고 했던 사람이므로...


2006 5.29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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