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릴 수 없는 끌어당

by 산비


“누구든 간구하는 자는 열심히 헌신할지라. 영광은 오늘에 있나니, 지난날 영광은 잊어버려라. 고난을 사랑하기에 어려움이 밀려올수록 난 의기양양하리라. 고난은 나의 친구이기에 기꺼이 맞아들이리라.”


간구할 제목이 있어야 합니다. 꿈이 있어야 합니다.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열정이 생기고 살아가는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간절히 원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열심히 헌신해야 합니다. 피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 필시 어려운 고비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고난이 닥쳐왔을 때 그것을 피하려 하기보다는 고난을 정면으로 상대해야 합니다. 고난을 친구로 맞아들여 사랑해줘야 합니다. 그러면 고난은 고개를 숙이고 우리는 소망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제가 드린 책 두 권중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를 먼저 읽으시고, <마음 밖으로 걸어가라>는 그냥 짬짬이 조금씩 읽어나가십시오.


프로네 님이 주신 <아름다운 기행 산티아고 가는 길>은 거의 다 읽어 갑니다. 여행의 막바지에 작가는 땅을 칩니다. 이 여행의 모티브를 제공했던 낡고 허름한 철 십자가를 보기 위해 그곳까지 왔는데, 와서 보니 번듯한 현대식 십자가로 바뀌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으리라 믿었었는데, 너무 늦어버린 것이지요.


여기서 두 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너무 늦지 않도록 지금 당장 실행하라는 것. 지금 당장 행위하고, 지금 당장 고백하고 지금 바로 사랑하라는 것. “그때 할 걸”하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두 번째는 현상계에 집착하는데서 오는 허망함입니다. ‘철 십자가’가 무어라고. 그것에 그토록 목 멜 필요가 있었을까요? 물론 나름대로 의미가 담긴 물건이긴 하겠지만 결국 너무도 쉽게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슈리 푼자도 말했었죠. 사라지고 떠나버릴 것들에 대해서 매달리지 말라고. 집착하지 말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읍시다.


2006 5.13 산비



“태양은 밤을 보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한밤중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어떠한 밤이나 어둠을 발견할 수 없었다. 빛 속에는 어둠이 있을 수 없다. 한 번만 바라보면 무지가 사라진다!”


태양이 밤을 한 번 바라보는 순간 어둠은 사라집니다. 태양이 바다 위로 떠오르면 환영의 안개는 증발해버립니다.


“나에게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없다. 나는 “당신은 이것과 저것을 해서는 안 된다.”와 같은 것에 속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종교에 속한다. ‘해야 한다.’와 ‘하지 말아야 한다.’들이 종교들이다.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하면서 정상적인 삶을 살아라. 나는 그대에게 죽은 뒤에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죽기 전의 시간을 잘 활용하고 그대가 좋아하는 대로 살고 행동하되, 다만 그대에게 해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하라고 말할 뿐이다.”


제자가 아이스크림과 콜라를 먹는 스승을 비난하며 질문을 하자 슈리 푼자가 하는 답입니다. 아이스크림은 깨달음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한 문답이지만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하면 되고 안 되고는 관념과 인습의 문제입니다. 내 안에서 스스로 자유롭다면 내가 흰옷을 입건 검은 옷을 입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생활에서 많은 부분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대로 살고 행동하지 못합니다.


위 문제에 대해서 프로네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율법이나 윤리의 문제와 배치되는 건 아닌지.


2006 5.16 산비



“사랑을 사랑 속으로 끌어당기는 끊임없고 헤아릴 수 없는 끌어당김이 있다. 참나가 참나 속으로 영원히 확장되는 어떤 저류가 있다. 이것은 내가 텅 빔의 깊이로서 사랑을 경험하는 방식이다. 그대가 헤아릴 수 없는 이것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대는 더욱 끌어당겨지고, 이끌리고, 그 속으로 용해된다. 이 아름다움은 끌어당김이다. 그대가 그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감에 따라 그대는 매 순간 더욱 사랑 속에 있을 것이다. 이 순간은 순수한 사랑이며, 이 사랑은 절대적으로 영원하다. 모든 것이 사랑이며, 모든 것이 이 사랑이다. 피할 곳이 없다! 사랑은 참나이다. 이것은 너무나 완전하여 그것은 이해할 필요조차 없다.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기쁨의 원천이다.”


슈리 푼자의 <그저 고요하라>를 완독 하였습니다. 위의 글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글입니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랑’으로 종결되는 가 봅니다.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합니다.


옛날에 한 성자가 있었습니다. 물을 마시러 강가에 갔다가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는 전갈을 보게 됩니다. 그가 전갈을 구하려 손을 뻗자 전갈이 그의 손을 찌릅니다. 몇 번이나 구하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그때마다 성자는 전갈에게 찔리고 맙니다. 이때 지나던 자가 묻습니다. “전갈이 당신을 계속 찌르는데 왜 자꾸 구해 주려 하는가?” 성자가 답하였습니다.


“이 전갈이 찌르는 습관을 그만두지 못한다고 하여 내가 왜 봉사하는 나의 습관을 버려야 하겠습니까?”


큰 가르침을 주는 글입니다. 상대가 화를 내고, 성을 내고, 비난하더라도 나는 그저 나의 사랑을 베풀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좋은 습관을 유지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찌 보면 하나의 게임과 같다고 슈리 푼자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의 뺨을 때린다면, 그의 손이 상하지나 않았는지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이기도 한 이 ‘원수를 사랑하라’ 게임을 우리도 과연 실천할 수 있을까요? 이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릴라’입니다. 금요일 날 책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책을 받으시면 뒤에 붙은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고 본문을 읽어나가시기 바랍니다. 좋은 배움 있으시기를...


2006 5.18 당신의 도반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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