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자히르

by 산비


“인생은 짧다. 이 책을 읽으면 저 책은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알라” 러스킨의 말입니다.


좋은 책을 선별해서 읽어야 함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이 일을 하면 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중요하고 이로운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어떤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느냐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정말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그 일에 매진합시다.


어떤 사람이 홍농직에 있던 董遇에게 시간이 없어서 독서를 못한다고 말하자 그는 “독서에는 일 년의 나머지( 餘 )인 겨울, 하루의 나머지인 밤, 맑은 날의 나머지인 흐리고 비 오는 날( 陰雨 )의 세 여가(三餘 삼여)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 말고, 책 읽는 여가를 만들어서 독서를 즐깁시다. 나를 점점 발전시키고, 자아를 성장시켜 나가는 지름길은 독서입니다.


책을 통해 옛 성현의 고귀한 가르침을 얻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현자들의 통찰을 어깨너머로 배웁니다. 미처 눈길을 주지 못 했던 새로운 삶과 문화에 눈을 뜹니다. 이미 알고 단정 지었던 사물에 대한 인식의 또 다른 면을 알게 됩니다. 책 속에 진리가 있습니다. 책을 읽읍시다.

6월의 시작입니다. 산도 푸르고 들의 풀들도 무성합니다. 요즘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산에 사는 나무들과 들풀과 야생화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줍니다. 친한 친구는 수많은 군중 속에서도 얼른 알아볼 수 있는 것처럼, 이름을 아는 풀이나 나무는 숲 속에서도 금방 알아보고 어떤 형태로든 우정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저자인 최성현 님은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길가에 나있는 풀들을 유심히 보면서 왔습니다. 그렇게도 다양한 풀들이 있었던 가 새삼 놀랐답니다. 이제 그 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익혀보려 합니다.

2006 유월의 첫날 산비



오늘 아침 안양천 유채꽃밭을 지나오다가 경이로운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 요즘 노란 유채꽃이 만발하여 보기가 참 좋습니다. 늘 지나다니며 바라보기만 하다가 오늘은 직접 사진을 찍어보려고 카메라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처음엔 초점이 꽃이었습니다. 그런데 흰나비 한 마리가 나풀거리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번엔 나비와 꽃을 함께 앵글에 담아보려고 나비를 찾았습니다. 나비가 어디 있나? 이리 와서 가까운 곳에 좀 앉아주렴. 속으로 주문을 외웠지요. 그리고 눈을 들어 꽃밭을 바라본 순간. 아! 자연의 경이로움이여! 수많은 나비와 벌들. 그냥 정적인 꽃밭이 아니었습니다. 수천 마리의 벌과 나비가 날아다니는 동적인 꽃밭이었습니다. 매일 그 길을 지나다니며 매일 바라보았는데 왜 그동안은 그것을 보지 못했을까요?


눈을 들어 눈의 초점을 돌려보니 거기에 또 다른 세상이 있었습니다. 상상해보십시오. 노란 유채꽃 사이사이로 앵앵거리고, 나풀거리며 날아다니고 있는 수많은 벌과 나비들을...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 근시안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 가 반성해봅니다.


오늘 오후엔 코엘료의 소설 <오 자히르>를 읽었습니다. 가슴속에 주워 담은 의미 있는 문구들을 몇 개 옮겨봅니다.


“왜냐하면 그건 내 문제니까. 내 문제는 어머니가 아니라 나 스스로 풀어야만 하니까./ 예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누군가가 떠나면 다른 누군가가 오는 법이다. 나는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될 것이다.”

“자유는 책임의 부재가 아니라, 나에게 최선인 것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능력이다./ 나는 내 꿈을 추구할 가능성을 충분히 갖추었다. 하지만 시도했다가 실패한다면 그 후의 삶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잘못될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기보다는 그저 가슴속에 꿈으로 간직하는 쪽을 택했다.”


“깨어서 준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준비가 되어 있기만 하면 가르침은 언제든 온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두 가지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언제 시작할지를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언제 멈출지를 아는 것이다./ 이제 나는 ‘무엇’이 되려고 꿈꾸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무엇’이었다. 사막을 건너는 양치기였다.”


오늘도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하루가 되셨는지요? 경이로움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삶의 경이로운 모습들을 자주, 많이 발견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06 6.2 산비



“나는 내 독자들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을 보고 내가 쓴 것을 다시 이해하게 된다. 드문 순간이지만, 그들의 눈 속에서 누군가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내 영혼이 혼자가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다.”


<오 자히르>에 나오는 글입니다. 소설이지만 마치 파울로 코엘료의 자서전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실제로 극 중 주인공인 작가도 제목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연금술사>의 내용을 담은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됩니다. 그리고 명예와 금전을 얻게 되지요. 소설 속에 코엘료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녹아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그러나 선뜻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프로네 님이 저의 자히르가 되어 주시면 어떨까요? 저를 격려하고 채찍질해주십시오. 죽기 전에 저의 영혼의 소리를 담은 필생의 역작을 한 권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퇴계는 ‘예술인’이기에 앞서 ‘일상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끊임없이 현실을 논의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가사를 돌보고 편지를 교환하느라 분주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록 자신은 나서지 않더라도 교육을 통해 다음 대를 기약했다는 것이죠. 일상의 모든 짐을 너끈히 감당하면서, 진흙탕 속에 핀 연꽃처럼 높은 이상을 추구했던 인물. 그가 바로 ‘퇴계’였습니다.

우리도 일상의 짐을 너끈히 감당하면서 높은 이상을 추구하며 삽시다. 무엇이 올바르고 최선인지 계속 의문을 가지고 공부하고 체험하며 궤도 수정을 해나가면 언젠가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힘냅시다. 아자!


2006 6.8 산비


코엘료의 <오 자히르>를 읽고 있습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나는 전부를 얻었다.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찾았다. 모욕당했지만 꿋꿋이 내 길을 계속 나아갔을 때, 나는 내 운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다.”


“서로 다른 본성들이 만나 사랑을 탄생시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모순 속에서 더욱 강해집니다. / 우리에겐 우리의 삶이 있습니다. 이렇게 살기까지는 힘든 세월을 거쳐야 했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우리의 삶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어쨌든 함께 살고 있지요. 하지만 뭔가가 부족합니다.”

“어떤 문제에 맞서겠다고 결심한 그 순간 우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고통이 있다면,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오. 존재하지 않는 척한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으니까. 기쁨이 있다면, 역시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야. 언젠가 끝나버릴까 봐 두렵더라도 말이야.”


한 남자나 한 여자의 마음이 한 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을까요? 소설 속의 주인공은 그렇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코엘료는 서로 다른 본성들이 만나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은 모순 속에서 더욱 강해진다고 말합니다.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네요. 종잡을 수 없는 날씨입니다. 지금 내 마음도 그렇습니다. 원래 인간의 마음이란 그런 건가요? 모호함과 망연함으로 번민합니다. 합리성과 모순 사이에서 갈팡질팡합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그렇게 행합니다. 나 자신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통제할 수는 없는 걸까요? 비가 좀 더 시원스럽게 내려주었으면 좋겠네요. 밤새 주룩주룩 내려주었으면...


2006 6.8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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