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고요하라

by 산비


“그대는 자아의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이다. 이제 그대는 나무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래서 그대는 떨어지고 바람은 그대를 어디든지 부는 데로 데려갈 것이다.”

나무에서 낙엽이 떨어질 때 낙엽은 어떤 의도를 가질 수 없습니다. 북쪽으로 가겠다든지, 남쪽으로 가겠다든지. 그저 바람에 날려 은총이 이끄는 데로 날려 갈 뿐입니다. 열린 창문을 따라 솜털 홀씨들이 날려 들어옵니다. 이들은 목적지가 없습니다. 바람에 날려 내려앉는 곳, 그곳에 정착할 뿐입니다. 나무에서 떨어져 나왔으면 이제 나무를 잊어야 합니다. 마음에서 지워야 합니다. 그것에 연연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야속함과 원망이 남을 뿐입니다.


“이제 그대는 그대의 이해력 너머에, 자아 너머에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으로부터 그대의 자아가 일어나며 그것이 모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근원에 머물러 있어라.”


‘그 모든 것이 지고한 힘의 은총에 의해 진행될 것이다.’ 슈리 푼자의 가르침입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절대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면 이제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그에게 맡길 수 있게 됩니다. 두려움 없는 사랑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절대복종할 수 있게 됩니다. ‘복종’ 이란 단어에 막연한 거부감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슈리 푼자는 말합니다. 노력하지 말고, 계획하지 말고, 야망도 갖지 말라고. 그저 고요하라고. 그러면 붓다처럼 깨닫게 된다고 가르쳐줍니다.


‘나’는 늘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반항합니다. 그러나 나 자신의 ‘참나’를 사랑할 때 그 두려움은 없어진다고 합니다. 빛 자체인 ‘참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태양을 바라볼 때는 그림자와 어둠이 나의 뒤에 있지만 내가 빛에 등을 돌리면 그림자가 내 앞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대가 어디에 있든 나는 그대와 함께 있다.”


내가 어디 있든 나와 함께 있는 ‘참존재’를 인지하게 되면 두려움과 미움, 원망은 없어질 것입니다. 사랑 안에 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좋은 밤 보내십시오.


2006 5.8 산비



<그저 고요하라> 슈리 푼자의 가르침을 담은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대에게 오는 삶을 살되 그것에 연루되지는 말라. 삶이 오게 놓아두어라. 거부하지 말라. 아무것도 오지 않거든, 만족한 채로 조용히 앉아라.”


나에게 오는 삶을 거부하지 말고 놓아두라고 합니다. 받아들이지도 말고 거부하지도 말고 연루되지 말고 그냥 그대로 놓아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오지 않거든 그냥 조용히 앉아 있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개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합니다.


“바다는 자신이 파도임을 잊지 않으나 파도는 자신이 바다임을 잊는다. 파도들이 일어날 때도 바다는 잃는 것이 없으며 파도들이 떨어질 때도 바다는 얻는 것이 없다. 삼사라, 환영, 마야, 놀이는 니르바나의 바다 위에 있는 파도들이다.”


파도는 바다와 분리되어 있지 않고 빛은 태양과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아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곧 존재임을 알지 못하고 찾아 헤맵니다.

우리가 상상하고 바라보는 현상계는 마야의 창조에 의한 환영일 뿐이라고 합니다. 이는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에서 카프라가 지적했던 바입니다.

“바다가 바다로 있으면서 파도를 만들듯이 의식은 자신의 본성을 잃지 않고 우주를 창조한다. / 상상은 존재하지 않는 이름과 모습으로 덧씌워진 주체와 객체로 아트만을 감춘다."

"지금 여기에 있지 않은 것은 실재가 아니며 얻으려고 애쓸 가치가 없다. 떠나갈 수 있는 것은 어느 것도 매달릴 필요가 없다. 실재는 늘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어떤 것에도 매달리지 말라.”


어떤 것에도 매달리지 말라하는데 저는 지금 그 어떤 것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지 않은 실재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떠나버릴 무엇을 얻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오늘의 저를 무섭게 꾸짖는 말씀입니다.


2006 5.9 산비



슈리 푼자의 <그저 고요하라>를 계속 읽고 있습니다.


“기차를 타고 갈 때 그대는 짐을 머리 위에 이고 있을 것인가, 발밑에 내려놓을 것인가?”


현명한 사람들은 짐을 내려놓지만 미련한 사람들은 기차 안에서도 짐을 머리에 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 오지도 않았거나 벌써 가 버린 친구들이나 금전이나 일들을 생각하는 것은 짐을 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평화로운 삶과 고통스러운 삶의 차이점이다. 그것은 그대의 짐이 어디 있느냐에 달려 있다.”


아직 오지 않은 일에 대해서 너무 겁을 먹거나 걱정하지 맙시다. 이미 지나간 일을 계속 머리에 두지 맙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로 마음의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계속 짊어지고 있다고 질책합니다.

“그대에게 오는 어떤 것도 피하지 말라! 필요 없는 것에 관심을 두지 말라. 최선을 다하여 상황들에 전념하라. 그리고 그것에 대해 잊어버려라.”


어떤 일이 닥쳤을 때 부득이한 상황에서는 그것을 피하지 말라고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상황을 처리하고 나서는 그것에 대해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옛날에 어린 제자를 둔 구루가 비로 불어난 냇물을 건널 때의 일입니다. 한 창녀가 가까이에 있는데 옷이 젖을까 봐 건너지 못하고 있자, 그 구루가 목말을 타게 하여 냇물을 건네줍니다. 개울을 건넌 뒤 창녀는 갈 길로 갔고, 그들도 길을 떠났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어린 제자가 스승에게 묻습니다. “스승님은 어떤 여자도 보거나 만지지 말라고 가르치시고서는 왜 그 젊은 여인을 만지셨습니까?”

그러자 스승은 말합니다. 자기가 분명 그 여인을 목말을 태워 건네주었다고. 그리고 길을 떠나 10마일을 걸어왔다고. 자기는 10m 남짓 그녀를 날라주고 지금은 모두 끝난 일이고 이미 잊었는데, 너는 왜 아직도 그녀를 기억하며 무려 10마일을 나르고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내일일은 알 수 없고 우리 생은 무척이나 짧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진리를 찾아 묵묵히 걸을 뿐입니다. 마침내 생의 종착점에 이르렀을 때 서로를 바라보며 가볍게 미소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기쁨이었든 고통이었든, 함께 동행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무척 고마웠음을 추억하며...

“시간을 견뎌낸 모든 것들은 갈채받을 만한 자격이 있으니까.”


2006 5.11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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