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은 슬픈 것인지도 모른다. 회한, 모든 후회는 결국 존재의 후회로 귀결된다. 태어났음의 비극은 피조물성 속에 있는 균열 즉 시간과 공간으로 제한된 일정 기간의 생명이 신비한 힘에 의해서 우리의 의식 없이 우리에게 부여되어 있다는 불가지성 속에 있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짧은, 그러나 주관적으로는 지루하게 긴 우리의 생에서 그래도 진주빛 광채를 지닌 기간이 있다면 그것은 유년기 이리라.” -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에서
저도 대학 시절 이 책을 읽고 전혜린이 웅얼거리는 회색빛 뮌헨과 삶의 고독함에 몸서리쳤던 기억이 납니다. 끝없이 자유인이기를 희구했으나 결국 짧은 생을 스스로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지식인의 고뇌, 고독과 연민을 동감하며 전율을 느꼈었습니다. 그리고 ‘슈바빙’에 대한 강렬한 기억. 종로에 ‘슈바빙’이라는 카페가 있었어요. 그 ‘슈바빙’에 찾아가 맥주를 혼자 홀짝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지금보다 더 감성적이었나 봐요. 궁상맞게 카페에 남자 혼자 앉아있었다니... 프로네 님의 글을 읽고 문득 전혜린이 그리워져 몇 자 추억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이대로 죽어도 좋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 만큼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겨울 때가 있다. 그에게 내 모든 것을 다 주고 싶고, 그래도 조금도 아깝지 않고 오히려 기쁠 것만 같은 순간 말이다.”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를 읽고 있습니다. 풀과 나무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곤충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왔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곤충들이지만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요약해서 설명하는 간단한 내용들이지만 알아두면 참으로 요긴한 지식들입니다. 어릴 적 과학 만화에서 보았던 내용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하루살이는 1년에서 3년의 애벌레 기간 동안 30회의 허물 벗기를 거쳐 성충이 되며 하루에서 사흘 정도를 살다가 죽는다고 합니다. 매미는 땅속에서 17년간 애벌레로 살다가 초여름에 땅 밖으로 나와 껍질을 벗고 1주에서 3주 살다가 죽는다고 하네요. 그렇게 오랫동안 땅 속에서 살다가 잠깐 세상 구경하고 죽으려니 ‘억울해서 그렇게 시끄럽게 우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짧은 생애를 참 정열적으로 살다가는구나’하는 생각도 들고요.
책을 읽으며 산에 대한 지식을 얻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무슨 학술서적은 아닙니다. 그냥 산에 대해서, 숲의 구성원들인 나무와 풀과 꽃과 새와 곤충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알아야 할 지식을 풀어놓으니 쉽고 정겹게 읽힙니다. 그리고 그 관점이 철저하게 친환경적이라 더욱 인상 깊습니다.
헌책방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나마 아직 동대문 시장 근처 청계천 변에 10여 개의 중고서점이 남아 있다고 하네요. 나중에 인사동과 연계해서 한번 가보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인터넷 헌책방이 있어 절판된 책들을 운 좋게 구할 수가 있습니다. 한번 이용해 보세요.
2006 6.16 산비
살갗에 닿는 선선한 바람이 마치 초가을을 연상시킵니다.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 잎들과 들풀들이 한가롭습니다. 강변을 유유히 노니는 두루미들의 자태가 고고합니다. 하늘은 푸르고 태양은 밝게 빛납니다. 하늘은 그냥 거기에 있을 뿐인데, 언제는 삭막하고 슬픈 하늘이었다가 지금은 평화롭기 그지없는 하늘이 되었습니다. 가끔씩 내리는 비는 싱그럽고 경쾌하지만 또 어느 날은 슬픔과 절망의 빗줄기가 됩니다. 다 내 마음에서 비롯되는 일입니다.
화엄사상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번뇌는 주관과 객관, 물질과 정신, 생과 사, 나와 너, 안과 밖을 나누어 보는 데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즉 모든 스트레스와 번뇌는 둘이라고 나누어 보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분별해서 보면 반드시 긴장이 따르고 뒷목이 뻣뻣해진답니다. 이 우주 만물이 결국 하나로서의 전체이며 나는 그 하나를 이루는 부분으로 결국 나와 너는 하나라는 인식을 가질 때 우리는 이 우주 만물을 열린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나무 위에서 자던 새들이 아침에 깨어나 지저귀지요. 그런데 그 새들을 깨우는 이가 있답니다. 누군지 아세요? 바로 ‘나무’라고 하네요. 해가 뜨기 시작하는 것을 가장 먼저 아는 이가 나무입니다. 나무는 먼동이 트는 기색이 조금만 있어도 그것을 예민하게 감지해 낸답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가볍게 몸을 떠는데, 해를 향한 나무의 그 떨림이 새를 깨운다고 하네요. 나무의 조심스럽고 고요하고 기쁨에 차있는 떨림이 새에게 전해져 새들은 또 아름다운 목소리로 그 기쁨을 노래한답니다. 재밌죠?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를 읽고 있습니다. 솔직히 책이 매력적이지는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글이 평이하고 덤덤합니다. 새로운 지식들을 얻게 되는 이로움은 있습니다. 재미가 없어도 끝까지 읽어보렵니다.
인터넷 헌책방에서 수확이 있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이윤기 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 EBS 특강에 나와 ‘무심코’ ‘무심콜로지’ 에 대한 생각들을 펼쳐 보이시던 기억이 납니다. 논리보다는 직관을 강조하시더군요. 좋은 책이 있으면 읽고 권해주시기 바랍니다. 주말 잘 보내십시오. 그럼.
2006 6.17 산비
조희봉의 <전작주의자의 꿈>을 읽고 있습니다.
“잘 쓴 글이란 자신의 편견과 아집이 많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한 권의 책을 산다는 행위 역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나 사전 지식에 따라 책이라는 하나의 작은 세계를 자기 세계관의 일부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치열한 자기 선택의 과정이며...”
어떤 책을 한 권 선택해서 산다는 행위도 치열한 자기 선택의 과정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책에 줄을 그어 가며 때론 낙서도 하면서 책 속에 갇힌 자의 자유를 만끽할 것이다. 내 마음의 도서관 속에서.”
멋있는 말입니다. 우리도 열심히 줄을 그읍시다. 책에 줄을 그어 놓으면 나중에 다시 그 책을 보게 될 때 내가 거기에 왜 밑줄을 그었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떨 때는 당시에는 굉장히 중요하고 감동적이라고 생각되었던 글귀가 나중에 다시 보면 ‘내가 여기에 왜 밑줄을 그었을까?’ 의아해질 정도로 별거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이대로 자본주의에 파묻힌 채로 살아가지 않겠다는 나만의 결심, 내 삶의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작은 다짐이 퇴화된 기관의 흔적처럼 여전히 남아...”
언젠가 자본주의의 병폐에 염증을 느껴하시던 프로네 님이 떠올랐습니다. 2류는 세상을 지키고 3류는 세상을 바꾼다는데 우리는 몇 류에 속하는 부류일까요?
“인문학 따위가 없어도, 세상을 굳이 설명할 길 없어도 일상은 잘만 돌아갔다. 생은 지리멸렬해졌다./ 비록 세상은 변했지만 그 상황마다에 담긴 진정성은 변치 않는 법이다. 그렇게 가는 거다./ 지혜로운 노인이란 단순히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혹독한 세월의 두께를 적극적으로 겪어 내고 이겨 내서 현재적으로도 여전히 의미를 지니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도 나중에 ‘지혜로운 노인’이란 말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합니다. 삶에의 진정성을 가슴에 담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그곳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면 우리는 어느새 지혜로운 노인이 되어있을 것을 믿습니다.
“전작주의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들의 작업이 지금 현재성을 가지기 때문이지, 시대도 현실도 떠난 무조건적인 맹종의 대상으로서 의미는 아니다. 그들이 지나 온 전작의 길이 과연 현재와 연관해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끊임없이 묻고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전작주의는 추종, 맹신이 아니라 ‘해석’ 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내면적 세계’가 작품 전체에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비로소 작품 전체에 일관되게 반영되는 작가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전작주의’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코엘료의 책이나 다빈치 코드를 쓴 ‘딘 브라운’의 책들을 이야기하며 왜 전에는 주목받지 못하던 책들이 작가가 유명해지고 나서야 새삼스럽게 다시 조명되는지를 논쟁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작주의를 논할 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작가를 선정할 때 중요한 또 하나의 기준이 ‘당대성’입니다. 그들의 전작이 당대적이어야 한다는 것. 결국 ‘당대성’이 결여된 책들은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그냥 잠시 항간에 회자되다가 묻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책의 글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일 것입니다.
전작주의의 의미를 좀 더 확장시켜 보면, 어느 한 작가의 모든 작품뿐만 아니라 그 작품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다른 작품들까지도 포괄한다고 조희봉 님은 말합니다. 우리의 책 읽기도 그런 방향을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 면에서는 프로네 님이 저보다 한 수 위입니다. 앞장서서 저를 좀 이끌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좋은 밤 되십시오.
2006 6.19 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