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동안 누구에게나 경험, 추억, 사건들, 생각들이 쌓여가는 데, 그것은 어느 순간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은 자신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고 말지요.”
“참된 사랑의 에너지가 당신 영혼 속으로 깊이 스며들게 하려면, 당신 영혼은 갓 태어난 아기와 같아야만 하오. 개인의 역사를 잊어버린다는 건 그 에너지가 언제든 자유롭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당신을 이끌고 원하는 곳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통로들을 깨끗이 비워두는 것을 뜻하오.”
“나는 산티아고의 길을 계속 순례해야 하고, 불필요한 짐들을 내버려야 하고, 하루하루 살기 위해 필요한 것만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사랑의 에너지가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 밖으로 자유롭게 흐르도록 해야 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
코엘료의 <오 자히르>를 계속 읽고 있습니다. 개인의 역사를 잊어버려야 영혼이 갓 태어난 아기처럼 되어 에너지가 자유롭게 흐를 수 있다고 합니다. ‘개인의 역사를 잊어버린다.’는 의미가 단순히 과거를 다 지우고 잊어버려야 한다는 말은 아닌 것 같은 데 명확히 개념이 잡히지가 않습니다. 불필요한 짐들을 내려놓아야 함도 같은 뜻이겠지요. 프로네 님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만약 우리가 산티아고의 길을 걷게 된다면 그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될까요?
2006 6.12 당신의 신실한 벗 산비
“당신은 당신 책에서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모험의 필요성에 대해, 꿈을 위해 투쟁하는 기쁨에 애해 이야기해.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 자기가 쓴 글을 읽지 않는 사람이야.”
한방 얻어맞은 기분입니다. 저도 사랑에 대해, 모험과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글을 쓰지만 저 스스로를 돌아볼 때 부끄러울 뿐입니다.
“당신 말이 맞아. 나는 당신을 보았어. 내가 보고 있는 사람이 당신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실은 나 자신을 보고 있었던 거야. 오늘 밤 나는 온 힘을 다해, 온 믿음을 다해 신께 기도할 거야. 내가 남은 날들을 이렇게 허비하지 않게 해 달라고.”
다른 관점에서 조명해보니 이 소설은 온톤 ‘개인적 역사’가 무엇이고 그것을 왜 잊어버려야 하는지, 우리는 왜 떠나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자히르’라는 말도 이 ‘개인적 역사’와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탄생과 함께 합니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우리의 부모가 우리의 ‘자히르’였을 수 있습니다. 나중엔 사회와 도덕규범이 우리의 ‘자히르’가 됩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신’과 ‘연인’이 그것을 대체합니다.
코엘료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전능한 자히르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탄생과 함께 태어나고, 그가 아이일 동안에 평생 지켜야 할 규칙들을 세움으로써 온전한 힘을 차지하는 듯했다. 그 규칙들은 이렇다.”
그 규칙들, 작가가 장장 세 페이지 이상에 걸쳐 열거하고 있는 삶의 규칙들, 즉 우리는 결혼하고, 아이를 번식시켜야 하고, 싫어하는 일도 해야 하고, 우리는 늘 유쾌해야 하고,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은 최대한 피해야 하고, 배고프지 않더라도 하루 세 번 식사를 해야 하고, 대학 졸업장을 따야 하고, 부모를 슬프게 해서는 안 되고, 음악은 작은 소리로 듣고 조용히 말하고 남들 앞에서 울지 말아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가 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들. 이것들이 바로 ‘개인적 역사’를 이루는 것들입니다.
문득 “‘내 개인적 역사’ 그것은 하나의 장벽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습과 인습, 전통과 관습에 의해 피동적으로 규정된 나. 나는 당연히 우아해야 하고 고상해야 하고 모범적이어야 하고, 거기에 있으면 안 되고 그것을 넘겨봐도 안 되고 생각해도 안 되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어떤 것들.
그리고 “‘내 개인적 역사’는 나 스스로 쌓아 올린 성벽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옳고 내 생각이 맞고, 그러니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거기에 가지 않을 것이고, 나는 깨끗하고 우월하다는 자기 아집과 오만. 그것을 깨부숴야 만이 새로운 것이 들어설 수 있게 된다는 진리. 그래야만 사랑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된다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아코모다도르’ 나는 모든 것을 제법 하는 정도까지는 배울 수 있었지만, 번번이 더는 실력이 늘지 않고 멈춰버리는 순간이 왔다. 왜 그랬을까? 살다 보면 어느 순간인가 한계에 도달하기 마련이라고 사람들이 말하기 때문이었다.”
‘아코모다도르’가 꿈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역사를 잊어버리고, 우리가 수많은 고통과 비극을 겪는 동안에 일깨워진 본능만 남겨야 한다는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주인공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코모다도르’에 사로잡혀 나를 ‘개인적 역사’ 속에 가두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맙시다.
“삶은 축적된 경험의 역사이기를 멈추고, 다시 한번 자신의 내면으로 떠나는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여행이 되었다. 그것은 전설과 모험으로 가득한 탐사의 길이었다.” 좋은 밤 되십시오.
2006 6.13 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