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렌다는 것은

by 산비


“결국 그가 신화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신들의 이야기에 반영된 각 민족이라는 모듬자리를 통해 인간의 꿈과 각 민족 신화 속에 보편적으로 혹은 특수하게 반영되어 있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인 것이다.”


EBS 에 이윤기 님이 나와서 독자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독자가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의 신화 이야기를 읽고 우리는 무엇을 얻어야 합니까?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외설적이고 비윤리적인 이야기까지도 담고 있는 신화의 내용에 대해서 약간은 비판적인 논조를 띠고 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때 이윤기 님은 이런 취지의 대답을 합니다.

“무엇을 얻으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무엇을 찾아내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 그냥 느끼십시오. 책장을 넘기며,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남는 느낌. 당신의 직관을 믿으십시오. 당신이 뭔가 한 가지라도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러면서 직관의 중요성과 우리가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 말, ‘무심코’한 어떤 행위로 인해서 인류 역사에 엄청난 변화가 발생했었음을 역설하셨습니다.

조희봉 씨가 이윤기 님에게 편지를 써서 주례를 부탁하는 대목을 읽으며, 지난번에 ‘죽설헌’을 방문하기 위해서 ‘박태후’ 님에게 편지를 써 보냈던 기억이 떠올라 미소 지었습니다. 며칠 후에 생각지도 않게 박태후 님이 직접 전화를 걸어오셔서 약속을 확약해주셨을 때 얼마나 떨리고 기뻤던지.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조희봉 님의 글을 읽으며 그 심정을 누구보다도 동감하며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설렌다는 것은 누군가가 당신 마음속의, 그러므로 당신 몸속의, 사랑의 버튼을 눌렀다는 뜻이다."

어린 왕자에도 그런 말이 나오지요. 너를 만나기로 약속한 몇 시간 전부터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행복해진다고. 좋은 밤 되십시오.

2006 6.20 산비


비가 내립니다. 드디어 장마가 시작된 모양입니다. 일년 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입니다.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우선은 차분함을 즐기겠습니다. 아마 곧 우울해지거나 싱숭생숭해질 거고 그리고 얼마 후에는 쾌활하고 경쾌해지기도 할 것입니다.

비를 바라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감정의 변화가 생깁니다. 내리는 비의 형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 주룩주룩 내리는 비,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 각각 다른 느낌을 줍니다. 당연한 이야기인가요? 아무튼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해 준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지나온 날들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이 순간에 대해서.

책 밑줄 긋기에 대한 단상들이 재미있습니다. 저도 늘 느끼던 점이니까요. 예전 읽었던 책의 밑줄 그은 부분을 다시 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도대체 이런 헐렁한 구절에 왜 밑줄을 그었을까 싶을 때가 있거든요.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밑줄 긋는 작업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조희봉 씨가 말하듯이

“내 삶에도 과연 그렇게 단정하고 꼼꼼한 주가 달린 밑줄이 그어져 있을까. 아니면 혹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구절에 지저분한 밑줄이 주렁주렁 달린 채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하면서.”

“보아야 보인다고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진리의 말씀입니다. 지난번 유채꽃밭에서의 경험처럼 우리가 관점을 달리하면 전혀 새로운 세상이 보입니다. 같은 책을 다시 읽으며, 같은 영화를 다시 보면서 우리는 처음에 느끼지 못했던, 보지 못했던 무엇을 새롭게 보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고, 시야를 넓혀야 하는 이유, 눈높이를 높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결국 우리는 승리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모든 걸 잃게 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할 뿐입니다.


2006 6.21 비 오는 수요일에 산비


지구의 나이를 365일로 환산하여 만든 달력을 ‘코즈믹 캘린더’라고 합니다. 그 달력에 따르면 인류가 지구 위에 나타난 것은 일 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오후 10시 30분이라고 합니다. 지구의 역사가 40억 년, 공룡들의 전성시대가 1억 년 전, 인류는 기껏해야 300만 년 전에 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옛날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공룡들이 사라져 간 것처럼 인류도 사라져 갈지 모릅니다. 유한한 인생입니다.


“자신의 길을 결코 변경하지 않는다. 평생 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앞을 다투지도 않고 순서를 지키면서 흘러간다. 빈 곳을 채우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앞에 장애가 나타나면 자기 수위를 높여서 장애를 돌파하되 절대 부정한 수단을 쓰지 않는다.”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맞춰보세요.

“우리는 어떤 문제가 있으면 산에 옵니다. 산에 와서 뭘 하냐 하면, 아무 말 없이 산을 오르고 그리고 내려올 뿐입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문제의 해답이 얻어지더군요. 절로 풀어진다고나 할까.”

“만약 당신이 강을 따라 걷는 모험을 할 수 있다면 당신은 거기서 당신의 과거를 만나게 될 것이고, 당신의 현재를 이해하게 될 것이고, 당신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지름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최성현 님의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를 완독 하였습니다. 황대권 님의 <야생초 편지>와 질감이 비슷하게 정장되어 있고, 이야기의 톤도 비슷합니다. 다만 <야생초 편지>가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에세이적 요소가 더 강한데 비해, 이 책은 비록 수필 형식으로 써졌다고는 하지만 진득한 맛이 떨어집니다. 대신 산에 사는 풀과 나무와 새, 벌레, 야생동물, 물고기들에 대한 개괄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2006 6.22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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