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의 편지 1

by 산비


“자신의 삶 어느 한 자락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온 한 사내의 모습을 보며 사랑도 이쯤 되면 사랑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구원이라는...”


‘루쉰과 쉬광핑이 나눈 43편의 편지와 일기’라는 부제가 달린 <루쉰의 편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루쉰과 쉬광핑이 나눈 편지는 <양지서 兩地書 >라는 이름으로 이미 출간된 적이 있다 합니다. 이 책을 엮은 ‘리우푸친’‘양지서’와 ‘노신경송전집’ ‘루쉰 전집’에 실린 편지의 원본 중에서 43편을 간추려 자신의 감상과 해설을 담아냈습니다.


이 책은 단지 두 사람의 밀어를 담은 戀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시 중국의 사회 상황, 인생, 중국인의 정신, 문화적 요소 및 그 두 사람의 개혁의지와 심리적인 변화 과정들이 담겨 있어 시대적 희망과 그들의 사상성, 내면적 성향을 엿볼 수 있다고 합니다.

중국의 위대한 소설가요 사상가였던 루쉰은 관습적 방식에 따라 결혼을 합니다. 그러고는 어떠한 사랑의 감정도 없이 결혼 생활을 해나가다가 젊고 지적이며 역동적이었던 쉬광핑을 만나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됩니다. 그러나 루쉰은 심리적 모순으로 고뇌하게 됩니다. 초기에 아주 조심스러웠던 루쉰은 결국 위대한 사랑의 힘에 어쩔 수 없이 빠져들고 맙니다. 편지를 나누기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열렬한 연애 감정으로 발전하지만 그들의 결합은 2년 후에야 이루어집니다. 이미 유명 인사였던 루쉰의 고민은 두 사람의 결합 방식에 있어서 어떤 방법으로 명분과 정당성을 얻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1925년 3월 11일 ‘루쉰 선생님께’ 하며 편지는 시작됩니다. 당시 쉬광핑은 나이 28세의 늦깎이 대학생이었습니다. 루쉰의 강의를 2년째 듣고 있었으며 맨 앞자리에 앉아서 당돌하고 거침없는 질문을 즐기던 학생이었지요.

그녀는 루쉰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에서 당시 교장 축출과 관련된 학교 사태의 문제점과 부패한 교육 현실에 대해 분개하며 답변을 구합니다. 여기에 루쉰은 2천 자가 넘는 편지를 써서 답을 합니다. 그들의 개인적 감정은 비록 편지의 어느 부분에도 언급되어 있지 지만 이미 어떤 운명적 사랑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열심히 읽어보렵니다.


2006 6.26 산비


<루쉰의 편지>를 읽고 있습니다.


“노인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를 들은 척 만 척 무시해버리지만, 나그네는 만신창이가 된 발을 이끌고 쉬지 않고 앞을 향해 걸어 나갔습니다.”

노인처럼 그 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나그네처럼 발바닥이 피투성이가 되어도 그저 앞을 향해 나아갈 것을 역설합니다.


“현실에 대한 불평은 털어놓되 현실을 비관해서는 안 된다는 것.” “항전을 계속해나가더라도 스스로를 보호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이 두 가지가 젊은이들에게 바라는 것이라고 루쉰은 말합니다.


“인간다운 인간, 개성을 지닌 인간, 주체성이 강하고 창조적이며 활기 넘치는 인간을 길러 사회의 진보를 앞당기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루쉰의 주장입니다. 1920년대에 이미 민주적 교육론이 확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책을 읽어보니 루쉰은 상당히 현실론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싸우더라도 스스로를 보호할 줄 알아야 하며 일단은 위급한 상황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훗날을 도모할 수 있는 길임을 강조합니다. 자로가 ‘군자는 죽어도 의관을 벗지 않는다.’하며 죽어간 것을 헛되다고 비판합니다. 의관을 풀어헤치고라도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전술과 참호전, 즉 참호를 파고, 들어앉아 휴식을 취하다가 적절한 시기에 나가서 싸우는 전술이 합당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또 공자의 교활함에 대해 말하면서 사실 그 교활함의 이면에는 헛된 희생을 막으려는 합리적인 사상이 내재되어 있다고 역설합니다.

편지에 여러 고사와 예제들이 인용되고 있어 재미있고 유익합니다. 그리고 편자인 리우푸친의 해설도 공감이 갑니다.


“편지란 인간과 인간의 영혼을 잇는 다리의 역할을 한다. 상대에 대한 친밀감과 신뢰감을 갖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게 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사상적인 경향, 애틋한 정을 교류하는 데 있어 어떤 장애물도 있을 수 없으며 그와 같은 서신의 교환은 더욱 깊이 있는 교류를 가능하게 만든다.”

그렇습니다. 편지는 말로 나누는 대화보다 더 진정한 마음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막하는 말이 하니라, 정리된 생각을 전할 수 있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하고 나온 진지한 마음을 담을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래서 말로 하는 것보다 이렇게 글로 쓰는 걸 더 좋아합니다. 루쉰도 역시 대화란 것은 아무래도 편지를 쓰는 것만 못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편안한 휴식의 밤이 되시기를...


2006 6.27 산비


“각박한 이론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비판적 담론에 인간의 따뜻한 애정이 융합될 때 진정한 의미의 사상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차가운 머리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보듬는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져야 한다.”

“사람이 일생 동안 하는 여행 가운데 가장 긴 여행이 바로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여정이다.”

<강의>를 쓰신 신영복 교수님이 성공회대학교 정년퇴임을 앞두고 고별 강의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는 세상을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바라볼 것을 수차 강조합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기가 제일 긴 여행이었다고 하니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닌 모양입니다. 형식적으로 가슴 아픈 척하는 것이 아닌, 진정 우러나오는 애정을 세상에 대해서 가져야 하겠습니다.


“나는 인간의 고통은 저주하지만 죽음은 혐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고통은 줄일 수 있지만 죽음은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령 마지막 순간이 온다 해도 비애를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루쉰의 편지>를 계속 읽고 있습니다. 오고 가는 편지를 통해 당시 중국 지식인들의 고뇌와 사회상을 어림짐작할 수 있습니다. 서신 교류가 늘어나면서 둘 사이에 연모하는 마음이 진해져 감을 느낍니다. 직접적인 언급은 한 구절도 없지만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주제와 문체, 서로에 대한 걱정, 고난도의 농을 주고받는 품새를 통해 그 느낌이 전해져 옵니다. 비록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은연중에 전해지는 연모의 마음, 그것을 본받고 싶습니다.


5-6일 간격으로 이어지던 둘 사이의 서신이 10일 정도 끊어지는 일이 생깁니다. 이때 쉬광핑은 ‘거의 미치광이로 변해가는 것 같다.’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합니다. 혹시 중간에 편지가 분실되거나 누군가의 감시를 받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을 느껴 술을 마시고 취하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통신의 일시적인 두절은 사랑의 감정을 더욱 급속하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편자 리우푸친은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 일이 참 묘합니다.

2006 6.28 산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산티아고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