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의 편지 2

by 산비

“서로에게 평등과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실패 없는 사랑의 전제 조건이다./ 사랑과 그리움은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결국 드러나고야 마는 것이다.”


“지고지순한 사랑이란 역시 상대와의 조화로움과 상호 교감에 있으며 서로를 진작시키며 화합을 이루는 과정에서 더욱 아름답게 발전해나간다는 것을 그들의 사랑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연애의 극치란 자신의 결점을 극복하고 보완하며 타고난 소질을 계발하고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데 있다.”


“완전한 사랑이란 자아 성찰의 기회이며 지속적인 자아 성장의 요인이 되어 때로 능력 이상의 역량을 발휘하게 한다./ 루쉰과 쉬광핑의 만남을 위대한 사랑의 승리로 평가하는 이유는 항상 서로를 일깨워주려고 노력했으며 논의와 연구를 통해 사랑을 성숙시켜 공동으로 문화 사업에 헌신했다는 점이다.”


제가 주로 사랑에 관련된 문구들만 뽑아서 위에 나열하였지만, 실제 <루쉰의 편지>는 단순히 낭만적인 사랑을 노래하는 글은 아닙니다. 당시의 교육계의 문제점들과 문화계의 알력, 급변하는 정치 상황에 대한 우려, 국민성 개조를 위한 개혁의 의지 같은 것들을 주를 다룹니다. 프로네 님이 읽어보신다면 더욱 와 닿는 내용이 많을 것입니다.


제가 배우려 하는 것은 사랑하는 연인 사이의 긍정적 관계 모델입니다. 그들은 간혹 서로 상충되고 모순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지만, 그 모두를 솔직 담백하게 표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였고 관계를 발전시켜갔다고 합니다.

세속적인 사랑, 타락한 사랑이 아닌,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서로를 갉아먹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의 발전과 계발을 도모하고 북돋워주는 사랑을 배우고 싶습니다.

2006 6.30 산비


“쇼핑몰에 있는 카트를 끌고 서점의 책을 쓸어 담는 것이 꿈이었던 서연, 1년에 최소 300권의 책을 읽는 28세 여성 서연, 그녀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나 지식인, 혹은 다른 그 무엇이 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의 목적이다.”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하지만 자기 삶이 없는 책 읽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생활의 현장에 적용할 수 없는 책 읽기는 무의미하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살아남아야 하는괴로운 일입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때로는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이 닥쳐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어쨌든 삶은 살아집니다. 바라기는 살아지는 삶, 살아남는 삶보다는 살아가는 삶입니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주도해가는 삶입니다. 꿈과 희망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고자 정진하는 삶입니다.

“나와 약속을 하자. 학교에 오갈 때 뭔가 아름다운 것을 찾아보기로. 냄새나 소리, 산들바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도 좋다. 이 세상의 작은 것들, 우리가 당연시해왔던 것들, 모두 사라질 수 있는 것들, 이런 것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단다.” 남편을 잃은 지 일주일 된 여교사가 수업을 마치기 전에 아이들에게 들려준 말입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오늘 점심시간에 본 것들의 특별한 의미를 느껴보세요. 하고 싶은 것을 해보세요. 우리가 가끔 후회하는 것은 우리가 한 것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하지 않은 때문이잖아요.”

해서 후회하기보다는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일들이 더 많습니다. 마라톤이 너무 힘들다고 내가 왜 그 미친 짓을 했나 후회하지 마세요. 내가 흘린 땀방울 하나하나, 내가 단련시킨 근육 한 올 한 올이 먼 훗날 당신이 노인이 되었을 때 든든한 힘이 되어줄 것을 믿습니다.


2006 7.3 산비


<루쉰의 편지>를 완독 하였습니다. 중국의 위대한 작가이자 사상가였던 루쉰. ‘아Q정전'의 저자. 강철 같은 의지로 중국인의 의식 개혁, 국민성 개조를 꿈꾸었던 투사.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처음엔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스승과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윤리와 관습과 편견도, 나이와 입장 차이도 그들의 사랑을 막지는 못하였습니다. 사회적, 개인적 모순 속에서 루쉰은 고뇌합니다. 그는 자신의 겉과 속이 다름을 스스로 인정합니다. 결국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삶 어느 한 자락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치열하게 삶을 살아갑니다. 자유롭고 강렬한 영혼의 소유자 루쉰. 그는 승리하였습니다.


오후부터는 고전평론가 ‘고미숙’님의 <나비와 전사>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의 서두부터 이어지는 난해한 논리의 전개가 그의 내공을 짐작하게 합니다. ‘마음이 머무름 없이 흐르는 것, 그것이 곧 노마디즘이다.’ ‘코뮌은 힘이다.’ ‘공부란 나를 구성하는 근본적 所與들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가슴을 울리는 경구들의 연속입니다.

동아시아 지성사에는 근대적 코드로 포획할 수 없는 사유의 열정들이 범람한다고 고미숙 님은 말합니다. 그러나 근대는 결코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그 답을 근대 이전 동아시아 지성사의 敎海와 겹치는 순간, 18세기에 주목합니다. “근대, 탈근대, 18세기라는 세 개의 그물망이 교차하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그 답을 구하고자 합니다.


그 과정에서 푸코를 통해 근대성이 얼마나 견고한 요새로 둘러싸여 있는지를 실감했고, 연암을 통해 그 요새를 돌파하는 것이 얼마나 유쾌한 질주인지를 배웠다고 합니다.

“푸코가 고고학적 탐사를 무기로 근대성의 지축을 뒤흔든 전사라면, 연암은 그 위를 사뿐히 날아올라 종횡으로 누비는 나비다!”


593 쪽에 달하는 이 두꺼운 책을 이제부터 열독 하려 합니다. 힘이 되어주십시오.


2006 7.4 당신의 도반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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