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되는 것은 세월이 아니다. 우리가 문득문득 떠올리는 것은 언제나 순간이다. 순간은 도도한 세월 앞에 늘 무릎을 꿇지만 결정적 시점에 되살아나 그 모든 시간을 무화시킨다. 지루한 영원은 폭발하는 찰나를 동경한다.”
어제에 이어 계속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정수일 님의 책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자주 내리는 장마철이라 버스 안에서 오고 가며 독서하는 재미가 제법입니다.
사실 공지영 씨의 책에서 정수일 님에 대한 이야기를 읽기 전에는 그에 대해서 상당히 안 좋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마 당시 뉴스를 접했던 많은 사람들이 대개가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가 상당한 학문적 성취를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의 신분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을 속여 온 것도 사실입니다. 심지어는 자기 부인에게까지. 그래서 그는 간첩 ‘깐수’로 검거되어 영어의 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가면서 많은 부분 오해를 불식시키게 됩니다. 그에 대해 다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의 학문하는 자세에 대해서는 경외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는 파란만장한 생을 살아오면서 12종의 언어를 익혔으며, 불철주야 학문에 정진한 사람입니다. 그가 천착한 학문 분야는 ‘문명 교류학’과 ‘아랍-이슬람학’ 두 분야입니다. 특별히 실크로드의 한반도 연장에 대해서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프로네 님의 관심 분야이기도 하잖아요.
1996년 7월 검거된 그는 ‘사형’을 구형받았다가 1996년 12월 12일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게 됩니다. 일반인들 같으면 좌절하여 자포자기하거나 억울하고 분해서 패인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 안에서도 학문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습니다.
“세상이 실로 무상함을 절감한 나로서는 비록 영어의 몸이지만 최선을 다해 정진할 것이오. 무위도식이나 허송세월은 나를 괴롭힐 뿐이오. 일각을 천금으로 여기고 한순간 한순간을 값있고 뜻있게 보내겠소. 늘 자성 자수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절도 있게 꾸려나가고 시간을 잘 안배하여 효용 하며 건강 유지에도 유념하겠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牛步千里)’ 우리는 이제 충격과 비탄에서의 허둥거림을 그만두고 황소처럼 묵직하고 침착하게 앞만 내다보면서 걸어 나가야 할 것이오. 하나하나를 새로이 출발하고 새로이 쌓아간다는 심정과 자세로 과욕이나 성급함을 버리고 천릿길에 들어선 황소처럼 쉼 없이, 조금도 쉼 없이, 오로지 앞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할 것이오.”
고통과 시련은 어떤 점에서는 사람을 더욱 강하게 분발케 하는 요인이 되는 가 봅니다. 우리도 더욱 힘을 내어 정진합시다. 한순간도 헛되이 흘려보내는 시간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읽어야 할 책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알아야 할 지식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무지몽매한 나 자신이 참으로 가엽습니다. 조금 늦게 그것을 인식하였습니다. 나이 서른아홉에. 이제부터라도 천릿길에 들어선 황소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뿐입니다.
2006 7.13 산비
정수일의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책이 참 재미있고 격조가 높습니다. 오늘 읽은 내용 중에서는 ‘인생은 갈아엎기’라는 대목이 눈길을 끕니다. 봄에 씨앗을 심기 위해 밭을 갈아엎듯이 인생도 땅의 갈아엎기와 흡사한 법칙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늘 구각에서 벗어나 거듭 새로워야 하며 끊임없이 양기를 받아들여 음지에서 화석처럼 둔해진 머리와 마비된 수족을 회생시켜 뿌려놓은 씨앗에서 새싹을 키우고 열매를 거둬들이듯이 사는 것, 그것이 인생의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배움이란 하나의 옥돌이 다듬어져 값진 그릇이 되는 과정과 같다.”
정수일 님의 책 속에는 학문하는 자세에 대한 글이 계속 나옵니다. 뜻이 독실해야 배움이 넓어지고 깊어진다고 강조합니다. 얼마나 깊게 고민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인간 됨됨이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지식인이란 시대와 역사에 대한 소명감에서 오는 충정과 이상을 안고 현실과의 엇갈림으로 인한 갈등과 고민, 번뇌를 겪게 되면서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뜻을 세우고 배움에 정진해서 이 시대가 원하는 지성인의 모습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의 대표작가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인생에서 최고의 행복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내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 그것이 삶의 괴로움을 감내할 수 있게 하고,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게 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고 희망차게 살아가게 합니다.
“'아남 카라' 고대 켈트 어의 '아남 카라'는 영혼의 동반자를 일컫는 말이다. 수많은 생을 거치면서 어느 시간대, 어느 공간대에서나 함께해온 존재, 원래 같은 흙이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 자기 삶의 숨은 비밀을 열어 보일 수 있는 사람, 나아가 영적인 안내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 그가 곧 영혼의 동반자다.” - 존 오도나휴의 <동반자> 중에서
2006 7.15 당신의 아남 카라 산비